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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차순이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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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09. 2023

차순이 2

눈물에 젖은 빵을 삼키다.

  예정대로 형편없는 요금통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앞차의 안내양은 막 입금을 마치고 웃으며 나오고 있었다. 양희가 쭈뼛거리며 들어서자 정산실 직원이 웃음기를 싹 지우고 양희가 들고 있는 통을 바라본다. 양희는 요금통을 계수대에 쏟았다. 2시간 30분을 돌아온 요금통에서 천 원짜리 3장, 동전 9천 원, 토큰 120개, 회수권 100장이 나왔다. 시제돈 3천 원을 챙기고 입금하니 현금입금액은 9천 원이다. 그것도 러시아워 시간에...        

  

“야! 55호! 앞차는 현금 입금이 얼만지 아냐? 3만 원이다. 3만 원! 토큰이 250개고, 회수권도 350장여! 넌 나가서 놀다 왔냐? 앞차하고 차이가 나도 어느 정도여야지? 너 삥땅 친 거 아니냐?”     

      

양희는 억울했다. 열심히 해도 기사가 너무 빨리 달리면서 앞차만 따라다니니 우리 차에 사람이 안 탄다고 말해도 믿어주지를 않는다. 아침밥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사무실에 잡혀 한참 잔소리를 듣고 나니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겨우 버스 출발 시간이 되어서야 -나가봐-라는 말이 떨어져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때 뒤차의 안내양이 요금통을 들고 들어왔다. 껌을 딱딱 씹으며 들어오는 뒤차 안내양 얼굴은 환했고 그 안내양을 맞이하는 사무실 직원도 –어서 와, 수고했어, 얼른 입금하고 밥 먹으러가- 하며 친절했다. 양희는 벌써 시동을 걸고 있는 버스운행 준비를 위해서 겨우 화장실만 다녀오고 버스에 탔다.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는 것을 보며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있는 기사가 한마디 한다.          

“야! 청소 좀 하지 뭐 하고 있었냐?”      

   

손님을 안 태워 요금이 적다고 잔소리 듣느라 아침밥도 못 먹은 설움이 북받쳤지만 청소를 안 할 수는 없다. 서서히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흔들리며 대충 청소를 하고 문 앞을 지켰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양희를 골탕 먹인 것이 재미있는지 기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행을 하고 있다. 

-인정 머리도 없는 놈 같으니라구- 양희는 속으로 기사를 욕하며 지나치는 바깥 풍경으로 눈길을 돌렸다.

       

첫 정류장에서 한두 명의 승객들이 탔다. 역시 열정거장을 지났는데도 아직도 버스는 자리가 남아돌았다. 버스의 좌석은 맨 뒷자리에 5인석이 있고 그 앞으로 2인석이 좌우로 8개, 안내양 앞과 옆쪽으로 1인석이 12개가 있다. 33명이 앉을 수 있고 입석으로는 얼마든지 태울 수가 있다. 출퇴근시간에는 콩나물시루만큼 빡빡해진다. 그런 버스 안이 텅 빈 채로 열정거장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앞차는 손님이 너무 많아 안내양이 뒤차 좀 타라고 해서 못 탔는데 이차는 왜 이렇게 텅텅 비었어?" 

      

안그래도 쓰린 속이 아주머니의 그말에 헛구역질이 나오려고 한다. 왜 이렇게 텅텅 비었는지 기사한테 물어보면 좋겠다. 다음 정류장쯤에 앞차가 있을 것이다. 앞차의 안내양은 이번에도 양희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입금할 것이다.  

     

새벽 첫출발 시간이 5시 30분이었다. 한 바퀴를 돌아 8시에 아침을 먹으면 다시 두 바퀴를 더 돌고 1시 30분쯤에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또다시 두 바퀴를 더 돌고 7시경에 저녁을 먹고 한 바퀴를 더 돌아와야 일이 끝난다. 식사시간은 20분 정도 주어지는데 그 20분 안에 식사와 화장실, 버스 청소까지 모두 마쳐야 한다. 빠듯한 시간에 안내양들은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한다. 그런 와중에 사무실의 잔소리를 듣다 보면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식사밖에 없다. 이미 아침을 굶었는데 다시 점심시간까지 시간이 없어 밥을 못 먹으면 문 열 힘이 없을지도 모른다. 힘든 것은 얼마든 참을 수 있으니 제발 잔소리 좀 안 듣게 손님 좀 많이 태워주었으면 좋겠다. 

    

양희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기사를 쳐다보았다. 기사는 껌을 딱딱 씹으며 자기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태평하기만 하다. 버스가 회차하는 마지막 정류장에 왔을 때 앞차가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그 차는 승객이 미어터지게 타고 있었다. 양희차의 기사와 앞차의 기사가 무어라 사인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양희차가 앞차 앞으로 섰다. 앞차를 타려고 매달려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한가하던 양희는 갑자기 몰려드는 승객들을 태우느라 진땀을 뺐다. 버스 안은 금방 꽉 채워졌다. 그리고는 다시 앞차를 보내고 양희차는 천천히 승객만 내려주며 달렸다. 몇 정거장이 지나자 버스 안은 다시 텅 빈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첫 운행 때 보다 수입이 조금 많아 보였다.  

      

사무실에 입금을 하고 너무 배가 고픈 양희는 새벽에 챙겨가지고 나온 빨간 통에서 빵하나를 꺼내어 급히 먹었다. 빨간통은 안내양들이 간단한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뚜껑이 있는 물통이다. 안내양을 하기 위해 맨 먼저 구입하는 필수품이었다. 그 속에 생리대와 껌, 박카스, 수건, 그리고 간식거리를 넣어 안내양 바로 앞 의자 뒤에 싣고 다닌다. 급히 먹느라 목이 메었다. 


눈물 젖은 빵은 진짜 눈물에 젖은 빵이 아니다. 눈물을 눈으로 흘리지 않으려고 목으로 삼킬 때 함께 넘어가는 그 빵이 눈물 젖은 빵이다. 17살 양희는 안내양 3개월 차에 눈물 젖은 빵의 의미를 곱 씹으며 안내양 오기전에 공장에서 밥해주던 할머니와 현미 사모님을 생각했다. 누룽지도 먹고 싶고 라면도 먹고 싶었다. 먹고 사는 일이 이렇게 서러운 것인가 생각하며 뻑뻑한 빵을 눈물과 함께 삼켰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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