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갑니다. 타실 분 안 계시면 출발합니다. 오라잇!"
신도림역에 멈춰 선 버스에서 안내양인 양희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오라이! 를 외치고 버스 옆구리를 탕탕치며 버스에 올라탄다. 문을 닫으면서도 누군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지 않을까 하여 차창밖을 둘러 보지만 버스는 이미 출발한 상태이다.
양희가 탄 버스는 종점에서 열정거장을 왔다. 버스 안에 승객은 네댓 명이 탔다가 두세 명이 내리고 다시 서너 명이 타서 기사와 양희를 포함하여 10명이 넘은 적 없이 조용히 정류장마다 지나쳐 왔다.
정상에 가까운 운행 이라면 종점인 개봉동에서 10여명이 타고, 개봉동입구에서 2~30명쯤 탔다가 고척동에서 2~30명쯤 내리고 다시 20여 명이 타야 하는 시간대이다.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다가 회차지점인 서울대앞에서 3~40 여명의 학생과 일반인 승객들을 모두 내려주고, 바로 신림동 방향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을 정거장마다 몇명씩 태워서 신림역이 있는 신림 사거리에서 한바탕 내려주어야 잠시 숨을 돌릴수 있는 상황인것이 정상 운행이다. 그런데 기사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출발 전부터 서둘러 대더니 다섯 정거장 만에 10분일찍 출발한 앞차를 따라잡았다. 그것도 앞차를 넘어서지는 않고 앞차가 손님을 가득 태우고 출발할 때를 기다렸다가 정류장에 들어선다. 출근길이 바쁜 사람들은 10분마다 배차되는 뒤차를 기다리지 못하고 넘쳐나는 사람들을 비집고 타고 간 뒤였다.
정류장을 무정차 통과하면 징계를 받는 규칙이 있어 기사는 무정차를 하지는 않는다. 타고 내릴사람이 없어도 버스는 서고, 양희는 문을 열었다 닫으며 30여분을 온 것이다.
또다시 다음 정류장에 천천히 들어왔지만 양희의 차를 탈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기사가 무정차를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안내양도 내리거나 탈 승객이 없다고 문을 열지 않으면 징계를 받는다. 문을 열고 바닥에 내려서서 잠시 둘러보고 차를 출발시킨다. 양희는 승객이 많지 않아서 몸은 편안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이유는 입금액이 적다고 회사의 의심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걱정이 되어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던 양희는 자신이 기사에게 무얼 잘못한것이 있는지 출근시점의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6시 첫출발 차량에 배차된 양희는 기숙사에서 5시30분에 나왔다. 연푸른 색의 상하의 유니폼을 입고 머리에는 핀으로 고정시킨 동그란 모자를 올렸다.
손에는 박카스와. 껌, 칫솔과 생리대가 담긴 빨간 플라스틱 바케스가 들려있다.
사무실에 들러 출근카드를 찍고 시제돈과 요금통을 받았다. 배차받은 버스로 와서 청소를 하고 버스의 와이퍼를 잡고 매달려 앞유리도 깨끗이 닦았다. 그때 운전기사가 왔다.
"안녕하세요?"
양희가 웃으며 인사했고
"어~ 오늘 잘해보자"
기사가 밝게 답하며 운전대로 갔다. 출발준비를 마친 양희는 버스의 문을 열어 기다리던 승객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시작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안내양은 버스승객이 타고 내리도록 문을 열어주고, 요금을 받고, 받은 요금을 회사에 갔다 준다. 회사 종점에 들어오면 곧바로 요금통을 열어 정산을 먼저 한 후에 버스 청소를 하고 운전사가 운행에 불편하지 않도록 버스의 앞유리를 반짝반짝 닦아준다. 기숙사 사감이 짜는 배차표에 따라 버스도 기사도 매일 바뀐다. 안내양이 된 지 이제 3개월 차인 열일곱 살 양희는 기사들이 자기만 타면 승객을 거의 태우지 않고 앞차뒤를 바짝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 10분마다 배차되는 버스는 정류장마다 시간을 맞추어 들어가면 앞차와 균등하게 승객을 태울 수 있는데 이렇게 빨리 달려서 승객이 꽉 찬 앞차를 슬슬 따라가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정해진 노선을 한 바퀴 돌고 와 사무실에 정산을 하러 들어가면 한참 전에 들어왔어야 할 앞차의 안내양이 입금정산을 하고 있다. 슬쩍 보면 입금액이 엄청 많다. 자신이 벌어온 금액보다 서너 배는 되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는 그런 앞차의 안내양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며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하며 농담도 주고받고 한다. 그런데 양희가 정산을 하여 입금을 하면 이게 뭐냐며 놀고 왔냐고 핀잔을 한다.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 양희는 불편하다. 힘써 일하는 것은 자신이 있는데 운전대를 잡은 기사가 협조를 안 해주니 양희는 매번 입금이 꼴찌인 안내양으로 회사에 찍히게 되었다. 한두 달은 초보자여서 그런지 말이 없다가 3개월 차에 들어선 요즘은 아예 대놓고 면박을 준다. 양희도 자신이 탄 차가 승객을 많이 태워 돈을 많이 벌어서 의기양양하게 회사에 입금을 하고 싶다. 그런데 다른 안내양과 일할때는 버스가 미어터지게 승객들을 태우고 다니던 기사들이 왜 자기만 타면 승객을 태우지 않는 건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차창 밖으로 가벼운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바삐 걷는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하려 저리 바삐 걷는 것일까? 공장에서 3년, 안내양으로 3개월을 서울에서 보낸 양희는 서울이라는 곳에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있고 얼마나 다양한 직장이 있는지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우물 안 개구리이다. 지금하고 있는 이 일이 철밥통이라 생각되는 양희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저축하여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앞으로 10년만 해서 많은 돈을 모으고 싶다는 각오를 한지 3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벌써부터 돈을 못 벌어온다고 회사 측의 잔소리를 들으니 얼마 못 가 잘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자리조차 편안하지가 않다.
-에혀, 오늘은 또 몇 번이나 회사 측의 불편한 눈치를 보아야 하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측은히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버스가 영등포 역에 섰다. 여남은 명의 승객들이 거의 내리고 한 사람이 탔다. 차문을 닫으며 출발신호를 하고 둘러보니 차 안에 승객은 두 명뿐이다. 힘이 빠진 양희는 문 앞 첫 번째 자리에 앉아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바라보았다. 승객이 가득 찬 서울여객이 지나가고 1분도 안되어 뒤따르는 같은 노선의 서울여객 차량이 텅텅 빈차로 지나간다. 저 차의 안내양도 정산실에서 잔소리 듣는 것을 면하지는 못하겠다 싶으니 조금 위안이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