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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는 착각.

강현욱 산문집.

by 시골서재 강현욱


비가 그치고 제법 키가 자라난 매화 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해맑은 은빛 햇살이 가득하다. 덧없는 삶이 낳은 부산물이라 치부하기에는 그 아름다움에 눈이 시리다. 글을 쓰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배운게 있다면, 삶은 무심히 흘러가는 것 뿐이며, 고통은 인간에게 있어 보편적이고도 필연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고통이나 슬픔과 같은 것들을 삶의 우발적 산물이라 여겨왔으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행복과 기쁨, 믿음과 희망, 아름다움과 깨끗함이 오히러 간혹 만나게 되는 특변한 선물이었음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래서 비록 사소해 보일지라도 기적같은 순간들을 발견하고 기록하며, 소중히 간직해야 함을 이젠 조금 알 것도 같다. 오늘도 연녹빛 마을버스는 어떤 의지들을 파란색 의자에 품고서 좁은 길을 지나간다.


'비너스의 조각보다 이른 아침에 직장에 가는 영이가 더 아름답다.' - '피천득', '인연' 중. -


매일 그 자리에 있으니 보지 못하는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다정함을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가. 나를 사랑한다는 의미가 그를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는가. 이 세계에 나의 소유는 어디에도 없으며,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것들 또한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는가.

무심한 삶이 우발적으로 던져주는 평온과 행복. 그래서 고마워하는 것에 대해 부족함이 없어야 하는지도.


중간고사가 끝나고, 친구들과 지인들이 매주 시골 작업실을 찾아온다. 출간기념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는 그들의 다정한 마음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 자신의 기쁜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타인의 마음은 별빛처럼 아주아주 귀하디 귀한 것이다.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타인들을 만나는 시간. 그리고 잔소리와 홍소(哄笑)로 위장한 그들의 따듯한 체온들. 이들 모두가 생이 나에게 잠시나마 허락해 준 포기할 수 없는 찰나인 것이다.


커피 좀 줄여요. 일찍 잠들고 오래 자려고 애써봐요. 점심 먹고 같이 산책 좀 해요. 탄 건 먹지 좀 마요. 비타민 잘 챙겨 먹어요. 미지근한 물을 많이 마셔요.


이번 주, 나에게 건너온 순간의 아름다운 말들. 인간은 사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워진다. 인간의 근원적 비참함과 소외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삶은 어쩔 수 없는 고(苦)의 연속인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서로가 서로를 힘껏 끌어안을 힘과 아름다움 또한 가득한 것이 삶이다. 그것이 세계가 조금씩 전진하는 이유다.


당연하지 않은 우리들의 대화는,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덧. 매주 한번씩 내려주는 봄비가 반갑고 감사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고마운 일들과 아름다움이 곳곳에 있음에도 우리들은 놓치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님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밥상을 차리다, 당신을 떠올리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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