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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인데, 겨울.

제2장. 이별.

by 시골서재 강현욱


희야 여름인데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아무런 생각없이 반바지와 민소매 셔츠를 입고 나왔는데 내가 요즘 좀 그래 너와 나의 겨울이니까 지금 그곳에 가면 작은 오두막집이 하나 있을 거야 너가 올 수 있게 꽤나 오래 품을 들인 집이야 자두 나무도 살구 나무도 너와 나에게 여름의 저녁 그늘을 만들어 줄 만큼 키가 자랐어 내가 없어도 불안해 하지는 마 나도 곧 갈테니까 지금 그곳에 가면 너가 좋아하는 맥주를 냉장고에 잔득 채워 두었어 모시옷도 서랍에 개어 두었으니 꺼내 입도록 해 쌀도 씻어 놓았으니 안치기만 하면 될거야 벽 시계는 그해 여름 이후로 멈추어 버렸어 햇빛을 바라봐 햇살을 따라 너의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면 돼 내가 없어도 심심해 하지는 마 나도 곧 갈테니까 너가 좋아할만한 책을 가득 꽂아두었어 강아지들이 찾아오면 가만히 안아주면 돼 노란색 공이 하나 있는데 공을 던져주면 즐거워할 거야 앵두가 빨갛게 여물었을테니 한아름 따서 입에 넣어 봐 동그란 유리창에 가득한 손자국은 너를 기다리다 그렇게 되었어 답답하면 호호불어 닦아보도록 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름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없어도 쓸쓸해 하지는 마 나도 곧 갈테니까 청개구리들이 요란하게 노래를 불러줄 거야 고양이 두 마리가 요즘들어 부쩍 찾아오니 밥을 좀 챙겨주면 좋아할 거야 밥 그릇은 평상 아래에 씻어두었어 과자를 조금 흩뿌려두면 귀여운 산새들이 날아들어 부산스럽기도 해 사진첩은 텅 비어 있어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을 나만 아는 벚나무 아래에 묻어 두었거든 사진첩을 너의 사진들로 다시 채워 보도록 해 지금 나는 달려가고 있는데 미안해 내가 좀 느리잖아 희야 너와 내가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이것만은 꼭 기억해 지금 그곳에 가면 더 이상 차갑지 않은 너와 나의 여름이 있다는 걸 내가 있든 없든 너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는 걸 내가 널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걸 지금 그곳에 가면 반짝이는 나뭇잎들이 일렁이는 여름이야 칠월인데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걸까 끝은 있기나 한 걸까 너와 나의 여름은 여전히 시리기만 한데 너를 만나기 위해 옷깃을 여미며 칠월의 겨울을 달려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덧. 며칠 전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오면서 몇년 전 이국의 설산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한 친한 형이 떠올라 써본 시입니다. 세상에 가득한 수많은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슬픔들이 겨울을 지나 여름을 달리길 바라븝니다.

작가님, 그리고 독자님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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