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으려던 결심은 의지인지, 본능인지 모를 소리로 변했고, 어느 순간 거리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푸르스름한 형상이 윤슬처럼 일렁였다. 양초의 심지처럼 파리하게 덩어리진 빛은, 어딘지 모르게 고통을 질료로 쓰는 것만 같았다. 창백한 빛은 불가해한 말을 남기고서 위태롭게 사그라들다 어느새 파도처럼 쓸려갔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어조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익숙한 누군가의 흐느낌이 희미하게 다가왔다. 그 소리를 따라 당신은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힘겹게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소리의 끝에는 하얀빛이 가물거렸다.
- 아들. 경수야. 제발 눈 좀 떠라. 내 새끼. 아이고, 경수야.
후터분함이 뒤섞인 나프탈렌 냄새가 당신의 코끝을 날카롭게 찔렀다. 눈꺼풀 너머로 명암이 오고갔다. 형광등 불빛이 명멸하다 이내 당신의 안구로 떨어졌다.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파리한 얼굴을 움직이고, 아버지는 의사의 무거운 입술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물이 가득한 어항을 사이에 둔 것처럼, 언어들은 토막나 건너왔다. 당신은 무슨 말들이 오가는지 이해할 순 없었으나, 그건 자신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소리라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살아난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날 당신의 몸과 마음은 바깥을 향해 부풀어 올랐다.
눈두덩과 목소리와 시간이 모두 퉁퉁 부어오르던 한 시절을 아직은 온전히 통과하지 못했다고, 당신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들으며 생각한다. 눈을 슬며시 뜨고 무언가를 확인이라도 하듯 지하철 안을 설핏 살핀다. 눈을 감았거나, 귀에 아이팟을 꽂았거나, 다를 바가 없는 모습들. 당신처럼 비슷한 모양의 사람들이 하루를 지난다. 비슷함이 주는 안도감에 기대어, 편안하게 다시 눈을 감는다.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탄다. 당신 앞에 앉은 노쇠한 아저씨의 머리꼭지를 물끄러미 건너다본다. 당신은 누군가의 정수리를 보면 어떤 기분이 차오르곤 했는데, 그건 안심과 친밀감이었다. 희끗한 정수리가 투박하지만, 다정한 투의 어조로 말을 걸어 오는 것만 같았으니까. 고개를 깊이 숙인 사람들의 정수리에서는 그들의 고단한 인생이 보이는 것도 같았으니까. 버스에서 내려 비탈길과 계단을 오른다. 눈이 얼어붙은 잔해들이 여기저기 산재한다. 누군가가 흩어둔 살굿빛 연탄재들과 오르내린 수많은 발자국들이 친절하게 느껴진다. 내려다보이는 회색빛 빌딩들과 차량의 행렬들에 당신의 가슴은 이유없이 저며온다. 바람은 기척이 없었으나, 점퍼의 목 부분을 손으로 모아 잡는다. 고개를 깊이 수그리고 발끝만 바라보며 계단을 오른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오르다 보면 어느새 집 앞에 닿아있곤 했다.
여느 날처럼 수많은 연립주택을 지나 당신은 어느 허름한 주택에 도착한다. 회사에 입사한 후, 당신의 거처는 원룸에서 오피스텔로, 소형 평수이지만 나름 유명세를 타는 브랜드의 아파트로 변해 갔으나, 부모님의 집은 지금껏 변함이 없었다. 비록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지만, 당신을 유일하게 경계하지 않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조차 형체를 알 수 없는 얼룩이 잔뜩 묻은 당신의 어깨는 언제나 죄인의 과보가 되어 최대치로 자그마해진다. 초라한 어깨는 낡은 현관문을 혼백처럼 통과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외출 중이라는 사실에 당신의 호흡은 조금 가벼워진다.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비로소 허기를 느낀다. 당신은 라면 한 봉지를 찬장에서 꺼낸다. 라면을 끓일 때는 항상 달걀과 파를 넣어 함께 끓여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린다. 레시피라도 되는 듯, 달걀과 파를 냉장고에서 꺼내 양은 냄비 안으로 깨어 넣고, 썰어 넣는다. 예전에는 간식처럼 먹던 라면이 어느새 당신에겐 주식이 되었다. 번지는 하얀 김에 얼굴을 바짝 붙이면 얼어붙은 살갗이 발그스름하게 녹여지고, 적막 속에서 입술로 당겨지는 면발의 소리가 듣기에 좋았으니까.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당신은 설거지까지 마치기를 원한다. 부모님 앞에 선 스스로의 모습을 참담하다 여겼으며, 열에 달구어진 페트병처럼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으니까.
설거지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와 여느 때처럼 노트북을 부팅하고, 구직 사이트를 살핀다. 해고된 사유 때문에 아직까지 기업에 이력서를 넣지는 않았다. 그저 단기 아르바이트를 검색할 뿐이다. 팝업창을 통해 좋은 시선이라는 에세이 잡지사에서 수필을 공모하고 있음을 문득 발견한다. A4 용지 두 페이지 분량에 당선이 되면 오십 만원이 수여 된다는 공지에 호기심이 생긴다. 하지만 달력을 살피고 응모 마감일이 임박한 사실에 이내 창을 닫는다. 그리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지하철역 인근의 편의점에서 평일 야간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공고가 눈에 들어온다. 연락처를 노트에 기록하고 동그라미를 달력에 그려둔다. 왠지 거절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에 심장이 조금 가벼워지기도 한다. 당신은 대출금의 이자라도 제때 납부할 수 있기를 막연하게 희망할 뿐이다. 당신이 바라는 것들은 점차 소박해지고 간결해진다.
부모님이 들어오시는 기척이 들려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거실로 나간다. 못마땅한 표정의 아버지에게 신용카드를 전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아버지는 조금 날이 선 질문을 당신의 등을 향해 던진다.
- 뭐하고 있었냐...
- 일자리도 좀 알아보고... 글도 좀 써보려고...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어요.
당황한 나머지 조금 전 보았던 수필 공모전에 관한 이야기를 얼떨결에 목구멍으로 되돌아 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꺼낸다.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이리저리 귤껍질을 까던 어머니는 동그래진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다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즐거운 둣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 그래. 그러고 보면 너 어릴 때 백일장에서 상도 몇 개나 받고, 청소년 독후감 대회에서도 시장 표창도 받고 그랬었지. 내 생일날 네가 써준 편지 때문에 내가 그날 얼마나 울었던지... 커서도 말솜씨가 좋은 거 보면, 넌 글 쓰면 잘 쓸 거야. 잘 한번 써봐.
딱딱한 의자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려는 당신에게 아버지는 껍질을 깐 귤을 가져가라는 듯 접시를 슬며시 밀어낸다. 당신은 주뼜주뼛하며 귤이 담긴 접시를 집어 들었다. 어렴풋한 책임감과 어슴푸레한 따뜻함을 느끼며 방으로 돌아와 한글 프로그램을 클릭한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기대감과 비록 잠깐일지라도 사라진 듯한 무기력감에 다시 에세이를 공모한다는 광고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키보드에 손가락을 가지런히 올린다. 검지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수도 없이 까딱이지만, 당신은 한 시간 동안, 단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습관처럼 악다문 검푸른 입술에 피멍이 서서히 번져간다. 깜빡이는 커서에 최면이 걸린 듯, 머릿속에서는 온통 지나온 시간만이 반복적으로 밀려오고 다시 쓸려갈 뿐이다. 분노와 체념이 뒤섞여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오던 당신은 큰 숨을 들이쉬고 힘겹게 첫 줄을 두드린다.
- 그는, 처절하게 기어간다.
당신은 적의를 가득 담아 모니터에 각인 된 문장을 노려본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을 따라 어느새 눈가에 물방울이 매달린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서야 눌러 둔 첫 문장의 자음과 모음들을 백스페이스로 서서히 지운다. 텅 비어 있으나 무엇이든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은 새하얀 공간에 당신은 한 획, 또 한 획을 그림을 그리듯, 천천히 다시 입력한다.
- 그는, 사력을 다해 일어선다. 그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또, 어떠한 사유로 인해 넘어져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넘어지는 목적은 단 하나다. 다시 일어나 걷는 것. 그게 전부다.
찬연한 햇살에 비친 하얀 식탁보가 눈이 부시게 반짝인다. 식탁 위에는 잘 닦여진 은빛의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 분명하다. 당신은 오랫동안 느껴온 허기를 모두 채워버리려는 듯, 강렬한 식욕을 토해낸다.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어 음식들을 남김없이 비워나간다. 오랫동안 먹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쉴 새 없이 씹고 맛보며 삼킨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포만감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슬며시 떠올린다. 그러다 당신은 저 멀리서 사람들이 흔들리듯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 턱의 움직임을 멈춘다. 나이프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가고, 이내 꽉 쥔 손은 축축해진다. 당신은 이유도 모르는 채, 본능적으로 나이프를 들고서 그들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질주한다.
- 죽어. 다 죽어!
당신은 미친 짐승처럼 날뛰며 소리를 내지른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칼로 찌르고 베어낼 때마다 스스로가 또렷해짐을 느낀다. 서슬퍼런 칼날에 검붉은 피는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그들은 하나, 둘 무력하게 꼬꾸라진다.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숨을 뿜어내며, 여성으로 보이는 마지막 남은 한 사람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두려움, 슬픔, 배신... 나이프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당신을 잠자코 바라보다 장밋빛 입술의 꼬리를 당겨 올린다.
- 감히 니까짓 게, 나를?
희끄무레하던 그녀가 선명해지고 이내 당신은 그녀를 알아 볼 수 있다. 가장 신뢰하고, 가장 사랑한 사람. 그 순간 당신은 늑골 사이에 움푹 들어간 부분을 왼손으로 부여잡는다.
- 너와 함께할 순 없어. 넌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망가졌으니까.
연인이었던 연수는 얼음송곳으로 당신의 흉곽을 한 번, 두 번, 세 번. 깊이 찌른다. 당신은 꼭 쥐고 있던 나이프를 결국 떨어뜨리고야 만다. 발아래에 고인 선연한 핏물들이 당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초라하게 비춘다. 복부를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송곳의 감각보다, 잔인하리만큼 냉담한 그녀의 눈빛에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분노의 무게로 무너진다. 전류가 흐르는 듯한 손의 떨림을 무기력한 당신은 멈추지 못한 채, 그저 하염없이 그녀를 올려다볼 뿐이다.
짧고 둔탁한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부릅뜬다. 추락할 것만 같은 천장이 눈꺼풀 안에서 명멸하고, 손의 경련으로 꿈과 생시를 구분할 수 없다. 떨리는 손으로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닦으며, 가끔 방문하는 반복적인 이 꿈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던 당신은 미신이나 꿈, 사주팔자 같은 이런 말들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탄탄한 현실을 살아가던 당신의 세계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산산조각 부서져 내렸고, 당신은 실체가 없는 허공을 향해 팔을 뻗어 허우적였다. 그것이 꿈이든, 미신이든, 무엇이 되었든, 그것들의 바짓단에라도 매달려 붙잡고만 싶었으니까. 꿈과 현실을 오가는 불안은 당신을 휴대폰으로 인도한다. 휴대폰을 열어 '사람을 죽이는 꿈 해몽'이라 검색 창에 입력하자, 녹색빛 화면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망설임 없이 답을 알려준다.
-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꿈, 막혔던 일이 해결되는 꿈. 길몽입니다. 그렇지만 죽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꿈으로 해석됩니다.
어깨를 들썩이던 당신은 습관처럼 이를 꽉 깨물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변두리 언덕에 위치한 연립주택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사선으로 접힌 것만 같다. 좁은 골목길도, 전신주 사이를 이어놓은 늘어진 전선과 통신선들도, 아래를 향해 비스듬히 주차된 차량들도. 모든 것이 기울어졌고 스산하기만 하다. 한때는 기울어진 풍경이 당신의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에 목숨을 기울여버리려고도 했다. 하지만 내리막일 수도, 오르막일 수도 있는 소로들은 그저 끝없이 이어진 것뿐이다. 이른 새벽이지만, 소로를 따라 나서는 사람들의 형체와 청소 차량이 그곳에 있었고, 당신은 그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기울어진 길 위에서 사람들은 매번 처음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길 양옆으로는 블럭처럼 켜켜이 쌓인 건물들이 먹빛에 잠겨있다. 자그마한 건물들의 내부도 아직까지는 캄캄하기만 하다. 이윽고 동녘 하늘이 파르스름하게 번져온다. 아무것도 없는 듯한 까만 허공에 실핏줄처럼 빛이 번져갔다. 곧 건물들의 깊숙한 속과 드러난 세상은 하나가 되어 선명해질 것이다. 모든 것들이 드러나는 한낮이 다시 다가오고 있다. 당신은 환하게 밝아오는 매일이 여전히 두렵기도 하지만, 길게 숨을 몰아쉬고 무거운 몸을 침대 밖으로 일으킨다.
당신은 어제 검색해 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위해 오늘 면접을 보아야 한다. 낯선 이의 앞에서 반듯하게 앉아 양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누군가의 턱과 목 사이에 시선을 두고서 밝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야만 한다. 8년 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 조금씩 당신의 무릎을 흔들고 꺾는다. 틀려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질문에 대해 대답해야만 하는 압박감에 붙박이장을 열어 거울 앞에 다가선다. 한참 동안 거울을 보며 몇 번 눈을 깜빡여도 보고, 입술을 벌렸다 오므려 보기도 한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작거나, 또는 크게 웃어보기도 한다. 서너 번을 반복하다 이내 그만두고,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상을 시작한다. 당신이 겪은 치욕스러운 순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붙박이장을 닫는다.
사위가 밝아지고, 조금 주저하다 방문을 열고서 거실로 나간다. 어머니는 면접을 보러 가는 당신을 위해 몇 벌의 셔츠를 꺼내 다림질 중이다. 셔츠를 구매하는 일이 예전의 당신에겐 하나의 취미였으나, 지난 육 개월간 단 한 번도 셔츠를 입은 적이 없었다. 아니, 입을 수가 없었다. 입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던 셔츠였기에 어정쩡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본다.
- 경수야. 이게 좋겠다. 이거 입고 면접 보러 가.
어머니는 검지와 엄지 사이에 고급스러운 셔츠 한 장을 끼워 흔들면서 말한다. 연인이었던 연수가 생일 선물로 주었던 톰브라운 셔츠가 어머니의 손가락 사이에서 하늘거린다. 핑크빛으로 웃던 그녀와 그녀에게 용해되던 그날의 당신. 조금 먼 곳을 보며 명품 조각보다도 나약한 사랑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해 중얼거리듯 대답한다.
- 그냥 단정하고 평범한 흰 셔츠가 좋겠어요.
당신은 운동을 다녀온 아버지와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한다. 북엇국에 쌀밥을 말아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서 수구려 밥을 먹는다. 묵직한 적요 속에서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 젓가락이 식탁에 내려지는 소리, 목구멍을 따라 북엇국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린다. 취득한 조경사 자격증 덕분에 퇴직 후에도 구청에서 기간제 공원 관리 일을 하는 아버지는 당신에게 신용카드를 내밀며, 입안에 밥알을 가득 넣고서 무심한 듯 말을 꺼낸다.
- 이걸로 필요한 책이나, 그런 거 있으면 사서 봐.
- ... 네.
고개를 끄덕이고 신용카드를 집어 현관문을 나선다. 해고된 후 단 한 번도 신어보지 못했던 구두가 얼굴이 비칠 만큼 정성스레 닦여있다. 운동화를 신으려다 잠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자식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마음, 어디서든 당당하길 바라는 마음, 무엇이 되었든 잘되길 바라는 마음. 반짝거리는 구두에서 그 마음들이 비치는 듯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아 아침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잠시 시선을 둔다. 그리고 윤이 나는 구두에 천천히 발을 집어넣는다. 누군가의 마음에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밀물처럼 밀려왔으니까. 당연하고 영원한 건,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당신은 이젠 잘 알고 있으니까.
덧. 작가님들, 독자님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