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어. 엄마.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세요.
- 어쩐 일이긴, 너 잘 지내고 있나 싶어서 와봤지. 그런데 이 애는 누구야?
- 건너편에 사는데 이름은 선희야. 사정이 있어서 당분간 같이 지내기로 했어.
- ... 이건 냉동실에 얼려두고 나눠 먹어. 어제 네 아버지가 우족을 사와서 푹 고았다. 약처럼 남기지 말고 잘 챙겨 먹어. 먹어야 살지.
- 엄마... 나. 잘 살고 있어.
엄마는 아무말 없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주섬주섬 파란색 보자기를 풀어, 가지고 온 반찬 통을 냉장고 안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며, 그저 참으면 다 지나갈 거라고 말하던 엄마가 한때는 무척이나 미웠지만, 아주 가끔은 엄마 말대로 견뎌볼 걸 하며 후회가 스멀스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혼한 후에 엄마는 전남편의 이야기나 결혼을 유지해야 하는 어떤 당위성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이렇게 연락도 없이 찾아올 때면, 그저 지나가는 말을 조금씩 흘리는 게 전부였다.
- 너는 아직 젊어. 사랑받으면서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재미있게 살아. 생각보다 인생은 짧더라...
그럴 때면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오는 따뜻한 무언가가 코끝까지 올라오는 걸 가만히 지켜보곤 했다. 엄마는 구석 테이블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선희에게 말없이 시선을 두다가 나지막하게 입술을 떼었다.
- 애가 눈이 커서 그런가... 참 예쁘네... 아이가 있었다면 너네도 괜찮았으려나... 애가 있어야 어느 집이든 투닥투닥 거리며 사는 것처럼 사는 건데. 그래서 그런가... 네 동생 태어났을 때는 잘 모르겠던데, 너 태어났을 때는 꼬물거리는 네가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때 알겠더라. 사는 것처럼 사는 게 뭔지... 사는 게 뭐 별거 있겠냐. 나는 네가 있어서 잘 살아온 것 같아. 지금도 그렇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내가 별 소리를 다한다. 그만 가야겠다. 밥은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고, 화장도 좀 하고.
엄마는 지갑에서 꺼낸 지폐를 선희에게 몇 장 쥐어주고는 언제나 그렇듯 휑하니 바람처럼 사라졌다.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좀 더 구부정해진 듯한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미안해. 엄마... 남들에겐 별거 아닌 일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 걸까.
꿀 빛 햇살이 저수지의 살갗을 쓰다듬고, 수줍어진 살갗은 물고기의 비늘이 되어 은빛으로 일어섰다. 햇빛은 창가에 앉아 어린왕자를 읽는 선희의 얼굴 절반을 품었다. 토스트를 구워 딸기잼과 함께 아이에게 가져다주었다. 선희는 읽던 책을 덮으며, 반듯하게 앉았다.
- 잘 먹겠습니다.
- 선희야. 오늘은 토요일이라 저녁에 할머니 면회 갈 수 있는데... 이십 분 정도만 허락되지만... 의식은 없으시겠지만... 가볼래?
- 그래도... 목소리는 들리실지도...
- 그래. 들리실 거야. 저녁에 같이 가보자... 어린왕자, 마음에 들어?
- 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라고.
- 나도 그 문장, 너무 좋아하는데. 선희랑 내가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것도 기적인 거야.
선희는 큰 눈을 깜빡이며, 토스트를 양손으로 잡고서 조금씩 베어 물었다. 행여나 빵가루가 떨어질까, 걱정이 되는지, 책을 좀 더 멀리 밀어내었다. 그림자에 얼굴이 반쯤 가려진 선희를 가만히 살피다, 빛이 바랜 아이의 반 팔 보라색 티셔츠와 검은색 운동화가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들어 휴대폰을 꺼내 마트 휴무일을 검색했다. 이틀 후에 있는 선희의 등교를 신경 쓰는 내가 생경하기만 했다. 그런데 낯설기만 한 이 기분이 살아가고 있는 듯한 이 느낌과 왜 이리도 맞닿아 있는 것인가. 견디기만 하던 삶이 비록 잠시일지라도 사는 것처럼 사는 것 같다고 여겨졌다. 천천히 손을 뻗어 선희의 볼우물에 묻은 딸기잼을 닦아주었다. 딸기잼은 부드러웠으며, 달콤했다.
누릿한 냄새와 약품 냄새가 함께 고인 병실은 적막하기만 했다. 선희는 오후 내내 열중해서 그리던 그림을, 눈을 감은 채 고무호스를 끼고 누운 할머니의 머리맡에 가지런히 두었다. 그림에는 하얀색 리트리버 한 마리가 귀퉁이에 앉아 있었다. 중앙에는 할머니와 선희가 손을 잡고 있었고, 이질적인 한 사람이 선희의 다른 한 손을 붙잡고 있었다.
- 그림이 너무 예쁘다. 혹시 이 사람은 어머니셔?
- 아니... 아주머니.
- 나? 나라 하기에는 너무 예쁜데.
선희는 엄청 잘못한 일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미안함이 잔뜩 묻은 표정이 되었다. 선희는 좁은 목구멍 안으로 다시 목소리가 가라앉는 듯했지만, 나의 감탄사에 이내 새하얀 치아를 보이며 활짝 웃었다. 휴대폰을 열어 선희의 그림을 사진으로 남겼다. 구겨진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들어와 병실 밖으로 나를 조용히 불러내었다. 의사는 피곤한 기색을 참으며, 말을 고르고 고르는 듯했다.
- 연세가 있으셔서 회복하시긴 어려울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순간 선희네 할머니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상황보다, 아이의 미래가 먼저 떠오르는 나의 편협한 마음에 얼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고 이기적인 듯한 이 마음을 나는 언젠가 보았었다. 불가해한 사산을 경험하고 난 이후, 남편으로부터 줄기차게 느껴지던 이 감정이 오히려 친숙하게 다가왔다. 고개를 돌려도 집요하게 파고들던 익숙한 감정을 삼키며 병원을 나섰다. 조금 떨어져 걷는 선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선희가 그린 그림처럼 민들레꽃을 닮은 아이의 손을 당겨 붙잡았다. 부드럽고 자그마한 손이 나의 손안에 매달렸다. 아이의 체온이 나를 향해 천천히 건너왔는데, 그것은 따뜻했다.
병원에서 나와 검색해 둔 마트에 들러 선희에게 하얀 블라우스를 입혀도 보고, 파란 블라우스를 입혀도 보았다. 청바지의 단이 길어 청바지를 수선점에 맡겨두고, 식품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새로 출시한 만두를 맛보는 선희의 부풀어 오른 볼을 지그시 바라보다 만두 몇 봉지를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마트 안을 걸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별것 아니라 여겨온 지나온 시간들이 별것이었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삶을 이루는 건, 대부분 이런 소소한 것들에서 위안을 얻어왔음을 이해했다. 블라우스 몇 장과 흰 티셔츠 몇 장, 그리고 청바지와 하얀 스니커즈를 골라 집으로 향했다. 선희는 피곤했는지 조수석에 앉아 어느새 잠이 들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잠을 자는 연습을 해온 것만 같았다. 잠을 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소리가 사라진 것만 같은 아이. 잠든 아이를 깨우고 싶지 않아 선희를 업고 이 층으로 향했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은 모두 다 이렇게 가벼운 것인가. 이가 상할까 조금 걱정도 되었지만, 깨우지 말아야 할 순간이라 여겨졌다. 쓰라리기만 한 삶에서 조금은 해롭더라도 가끔 마주하는 달콤한 것들을 놓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는 거니까. 어쩌면 선희에겐 지금이 그런 순간인지도.
선희와 함께한 시간이 한 주 정도 흐르자 놓치고 싶지 않은 일상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등교 준비를 마친 선희가 여름이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아쉬운 듯 오랫동안 여름이를 붙들고 있는 선희. 불안과 슬픔, 외로움... 이런 말들이 어느 날 나에게 다시 찾아와 수포가 부풀어 오르고 터뜨려야 할 때가 온다면, 유심히 들여다보게 될 사진들. 어떤 날은 나를 웃게도 할, 또 어떤 날은 조금 울게도 할, 그렇게 나를 살아가게 할 사진과 기억으로 남을 일상들. 이런 일상들을 나는 줄곧 애타게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 잘 다녀와. 차 오는 지 잘 살피고, 모르는 어른이든, 아는 어른이든, 어딜 같이 가자 해도 아주머니가 기다린다 하고 곧장 집으로 와야 해.
선희는 친밀한 잔소리를 처음 들어보는 것처럼, 큰 눈을 깜빡이다 그저 네 하고, 학교로 향했다. 연분홍빛 반 팔 블라우스와 하얀 스니커즈를 신고 가볍게 뛰는 아이의 뒷모습이 점이 될 때까지 바라봤다. 애착하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크든, 작든 어떤 시릿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잘 나가는 수석 디자이너였던, 남편. 살면서 단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어서 타인의 삶에 그다지 감응하지 못하던 꼿꼿한 남편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출근하며 급하게 닫히던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압도적인 공허함 속에서 결국 파르스름한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오던 말들...
- 여보... 나... 힘들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지만, 내가 몸이 약해서였을까, 결국 아이는 사산되었다. 남편은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고, 더 이상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남편은 회사 일에 자신을 욱여넣으며, 나를, 아니, 우리를 언제나 미루고 미루었다. 어느 날부터 남편은 함께 살던 집을 하숙집 내지는 기숙사처럼 여기는 듯했다. 매일 늦은 귀가와 출장이란 이름의 외박도 잦았으니까. 그런 그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도 했으나, 나 또한 어느새 회사 일에 몰입하고 있었다. 남편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쳇바퀴 도는 일상이었기에 남편의 행동에 더 이상 특별한 의미를 두진 않았다. 하지만 같으리라 여겨 온 삶의 의미는 그만큼 비례해서 사라지고 있었다. 숨 막히는 진공의 공간에선 어떠한 꽃도 피어날 수 없었다. 나는 우울증과 무기력감에 시달리다 사라진 삶의 의미를 복원하고 싶어 어느 날 헤어질 결심을 했다. 하지만 그도, 나도 아프지가 않았다. 이미 우리는 고통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속은 텅 비어버린 껍데기에 불과했으니까.
선희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 여름이의 반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선희가 아닌 면사무소 복지사와 마을 이장이 하오의 햇살 아래 서 있었다.
- 잘 지냈는가? 거창댁 누님은 좀 어떻대?
- 오셨어요. 연세가 있으셔서 병원에선... 힘들겠다고.
-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 분은 면에서 나오셨는데 선희를 좀 보고 가야 한다고 하시네. 그리고 병원비나, 뭐 이런 것들도 논의할 게 좀 있다고.
- 네... 학교 마치면 곧장 오라고 일러두었으니, 곧 올 거예요.
복지사는 할머니에 대한 국가의 지원제도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꼼꼼하게 읊어주고 안내문도 건네주었다. 그리고 선희에게 있을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설명하고서, 선희 어머니에게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라 덧붙였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잊고 있었던 선희 어머니의 존재를 다시 확인받았다. 마치 감정사가 나를 향해 가짜라고 말하는 듯했기에 조금씩 몸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유리컵을 손끝으로 천천히 문지르며 한참 설명을 듣고 있으니, 선희가 현관문을 열고서 들어왔다. 선희는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꾸벅 인사를 했다. 선희에게 어서 와. 라고 말하면서도 알 수 없는 미안함에 이내 고개를 돌리고 안내문을 내려다봤다. 단, 한 문장도, 단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는 안내문이었다.
- 다녀왔습니다.
- 우리 선희. 잘 지냈어? 오늘따라 우리선희 더 예쁘네.
이장이 너스레를 떨며 선희를 반겼다. 복지사는 선희와 단둘이 할 얘기가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데리고 테라스로 나갔다. 나를 살피는 선희의 눈빛이 왜 이리 아린 것인가. 나의 심장이 거대한 열차처럼 철길을 뭉개며 달리는 것만 같았다.
- 아무튼 자네가 고생 많았네. 선희 엄마에게 연락이 되면 좋겠지만... 연락이 안 되어도 요즘 복지시설이 워낙 잘 되어 있으니까, 할머니랑 있을 때보다 나을지도 몰라.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애써주게.
이장의 서툰 위안의 말에 서운함이 섞인 분노가 왠지 모르게 치밀어 올라,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 둔 양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꽉 깨문 윗니와 아랫니의 묵직함이 잇몸까지 파고들고 관자놀이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침묵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침묵을 강요받는 나는 그저 선희네의 건너편에 사는 사람일 뿐이니까.
복지사와 이장이 돌아가고 선희의 표정을 조심스레 들여다봤다. 두려움과 슬픔이 가득 찬 듯한 표정. 애써 못 본 척, 모른 척 옷 갈아입고 간식 먹자며, 선희를 이 층으로 올려보냈다. 가슴 한 켠에 차가운 바람이 드나드는 것만 같았다. 무더운 여름의 끝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날카로운 한기로 채워진 겨울바람이.
- 숙제는 선생님께 잘 제출했어?
- 다른 건 다 제출했는데, 감상문은... 안 드렸어요.
- ... 우리 소풍도 다녀왔는데... 작가해도 될 만큼 너무 잘 썼던데... 왜... 제출 안 했어?
- 그냥... 갖고 있고 싶어서...
시간이 멈춘 듯 고개를 숙인 선희를 바라봤다. 보여드렸다가 다시 돌려달라 하면 될 것을. 선희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니까. 아니, 누구라도 소중한 것이라면, 갖고 있고 싶은 게 있는 거니까. 나의 가슴에 뚫린 구멍의 근원을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 구멍이 메꿔지는 듯한 기분 또한 알 것도 같았다. 타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만 같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이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이 순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응시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와 눈두덩을 두어 번 눌러야만 했다.
선희와 삼 주 정도의 시간을 보냈을 무렵,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선희와 함께 급히 병원을 향했다. 선희의 할머니가 결국 운명하셨다. 의사가 전해주는 사망진단서가 마치 삶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고 다시 한번 알려주는 듯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음을 이장에게 알리고, 마을 근처 장례식장에서 주민들과 면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장례식을 준비했다. 선희에게 검은 상복을 단정하게 입히고, 머리를 빗기고서 하얀 머리핀을 꽂아주었다. 선희의 파리한 손을 이끌어 향불을 밝히고, 영정 사진 아래에 선희와 내가 나란히 앉았다. 큰 눈도, 입술도, 목소리까지도 모두 검푸르게 멍든 것만 같은 선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보다 혼자 남겨진 선희의 운명에 내 슬픔은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 많지 않던 사람들마저 모두 돌아가 버린 장례식장은 눈을 감는 소리마저도 들릴 것처럼 적막했다. 내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내려다보고, 다시 영정 사진 속 할머니의 깊고 까만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선희와 선희네 가족의 일일 뿐이었지만, 믿기지 않는 삶의 무게감이 밀물처럼 나를 향해 떠밀려 오고 있었다. 몸에 밴 반응처럼 하염없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장이 가득한 회색빛 아침 안에 선희와 나는 갈 곳 없는 사람들처럼 서 있었다. 주저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선희를 붙잡고 하늘로 사라져 가는 할머니의 희뿌연 연기를 멍하게 바라봤다. 굵은 빗방울이 투둑. 투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할머니의 푸념 섞인 부탁이 나직하게 들리는 듯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선희는 결국 크게 몸살을 하고야 말았다. 얼마나 아프고 두려울까. 마음을 준 이가 또다시 사라져버린 선희의 마음을 가늠하려는 시도조차 미안했다. 잔혹한 삶은 아이가 겪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작별을 어느새 세 번째 자행했다. 삶에게 드러난 목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붙잡고 따져 묻고도 싶었지만, 삶은 그저 흘러갈 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삶에 원망 섞인 두려움이 밀려왔다. 소고기를 가득 넣은 소고기 무국을 끓이며 이제 어떻게 삶을 다시 흘려보내야 하나를 생각했다. 아래로, 또 아래로.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선희도 나도 흘러가야만 했다. 우연히라도 건져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장례식을 치르고 한 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 구형 소나타 차량이 책방 앞에서 멈춰 섰다. 차량의 시동이 꺼지고 지난번 만난 복지사가 차에서 내렸다. 뒤이어 중년의 한 여성이 운전석에서 내려 책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을 김미숙이라 소개하고, 복지사는 선희의 엄마라고 말해 주었다. 짙게 바른 붉은 입술, 어울리지 않는 눈가의 색조 화장, 짧은 치마와 찌를 듯한 빨간 구두. 슬금슬금 피어나는 선입견과 명확한 근거도 없는 편견이 하복부를 연신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 선희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면사무소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할머님 일도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 아닙니다. 선희가 착하고 예뻐서 힘든지도 몰랐습니다. 저기... 그런데 지금 사시는 곳은 어디신가요? 혹시... 다른 가족이 있으신 건가요?
커피를 내리다 말고, 나도 모르게 무례한 말투로, 날카로운 언어로 불쑥 김미숙씨를 찌르고야 말았다. 나는 의도적이었고, 공격적이었다고 스스로에게 자백했다. 내가 뱉어놓고도 부끄러웠지만, 다시 주워 담고 싶다는 후회 따위는 없었다. 영혼이 잠시 나간 듯한 김미숙씨의 캄캄한 눈을 응시하며 대답을 요구했다. 함께 온 복지사도 조금 놀란 표정으로 김미숙씨를 흘깃 쳐다봤다.
- 대구에서 남편이랑...
그녀는 크나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말을 맺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사소한 것 하나까지, 내밀한 사생활 하나까지,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만 싶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그녀는 선희의 엄마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자격 없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힘이 센 단 하나의 단어는, 수만 개의 질문들을 그저 나의 목구멍 안으로 쉽게 눌러 내렸다.
- 이 사람은, 선희의 엄마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선희가 현관문을 열었다. 오 년 만에 만나는 엄마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기억이 잘 나질 않아서 그런 건지, 숨기지 못한 어색함과 당혹감을 열린 눈으로 드러내며, 선희는 얼음기둥처럼 어떠한 미동도 없이 입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김미숙씨는 선희에게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선희를 끌어안았다. 선희는 아무 말 없이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아이의 큰 눈이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우물이라도 된 것처럼, 초점없이 나를 멍하게 바라봤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무기력함과 어찌할 수 없는 체념이 뒤섞인 잠깐의 시간이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은 통증이 되어 나의 살갗을 꿰뚫고 있었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물고서 선희의 짐을 싸는 동안, 선희도 입술을 악다문 채로 아무런 말도,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선희의 짐을 챙겨 차에 싣고, 뒷좌석에 앉은 선희에게 과자와 음료를 싸서 건네었다. 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선희는 잡고 있던 고무줄을 놓은 듯, 갑작스레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얼굴이 모두 젖은 선희가 다가와 내 품에 깊이 안겼다. 아이의 머릿결에서 어느새 나의 냄새가 났다.
- 괜찮겠니?
- ...네... 괜찮... 아요.
- ... 그래. 무슨 일 있으면, 그때처럼 아주머니한테 꼭 달려와야 해.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선희를 태운 차량이 점이 되어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는 신작로를 향해 한참동안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선희가 뒤돌아보고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선희가 서운해할지도 모르니까. 선희가 탄 차가 멈추어 설지도 모르니까. 선희가 즐겨 앉던 테이블에 우두커니 앉아 아이의 지문이 묻은 어린왕자를 펼쳤다. 우연히 맞닿은 시간은 별것 아닌 서로를, 서로가 특별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듯했다.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선희가 그리울 때면, 나는 자그마한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될 것이다.
산허리에서부터 청녹빛으로 물들어 가더니 어느새 계절의 온도는 머리까지 닿았다. 언제나 그렇듯 놀이공원에서 선희와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를 바라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벌써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엊그제 만난 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눈이 크던 아이. 부재하지만 부재하지 않은 아이를 마음에서 꺼내 떠올린다. 그건 사랑이었을까. 다만 확실한 건, 선희를 향한 뻐근한 어떤 감정의 흔적이 지금껏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 흔적들과 함께 조금의 슬픔과 조금의 기쁨과 또 조금의 의지를 갖고서 몇 번의 계절을 지나왔다. 여름이는 무지개 마을로 몇 해 전 떠났지만, 새끼 세 마리를 나에게 남겨주어서 조금은 북적북적한 책방이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에세이와 소설집을 한 권씩 출간했으며, 가끔 사인해 달라며 찾아오는 손님들을 만나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무엇도 되지 못했고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소소한 즐거움과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생의 중반을 떳떳하게 지나는 중이다.
여느 때처럼 서가를 닦고 있을 무렵,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현관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첫 손님이라 반가운 마음에 유심히 현관문을 바라봤다. 환한 빛을 등지고 선 연분홍빛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럴 때가 누구에게나 간혹 있다. 어떤 형체가 무정형의 빛처럼 보여질 때가. 그 빛에 반응이라도 하듯 의지와는 상관없이 손은 경련을 일으켰다. 씻고 있던 접시가 미끄러지며 내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 어서오세요...
- ... 아주머니. 잘 지내셨어요?
- 누구... 혹시... 선희니?... 선희야.
- 아주머니 보고싶었어요. 아주 많이... 그때 제가 말을 못 하고 가서...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아서...
- ... 어떤 말?
- 참 고마웠다고...
스무 살이지만 볼살이 빠지지 않은 아이를 중년이 된 내가, 온 힘을 다해 끌어안는다. 여전히 마른 아이의 날개뼈를 가만히 매만진다. 선희에게서 여전히 나의 냄새가 난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기적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던 그해 여름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나 다른 삶을 각자가 살아간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잠시나마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기적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 우린 그걸 사랑이라 부르기도 하며, 습관처럼 그리워한다. 서로 다른 부족한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서, 서로에게 서로의 향기를 나눠 주는 게 어쩌면 삶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선희와 나의 마주 댄 뺨을 타고 맑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짜지 않은 맞닿은 눈물이.
- 선희야. 나도, 고마웠어.
(뜻밖의 여름. 완결.)
덧. 몇 달만에 시골을 찾았습니다. 많은 것들이 쓰러지고 흩어진 모습을 보면서 미안함과 자책이 일어납니다. 다시 정원으로 걸어들어갑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사십대 정원의 일기를 다음 주부터 다시 연재할 수 있을 듯한 기대감이 생깁니다. 봄 기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작가님들, 독자님들.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