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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Apr 19. 2022

Dear Moon.


봄비가 살포시 찾아온다 하였습니다.

당신도 잘 아시겠지만, 이유없이  먼곳에달려오는 비는 없었습니다. 만물에는 인연의 실타래가 엮여 있었고, 이음매에는 필연이 있었지요. 필연을 저는 준비하여야 했습니다. 어젯밤 당신의 주변을 옅게 물들여  하얀 달무리개미들은 바삐 움직였고, 새순들은 소곤소곤 기쁨의 소리를 서로에게 전하였습니다. 기나긴 어둠을 뚫고 달려온 당신의 빛이 까만 밤을 밀어 내었기에, 저는 당신을 따라 순한 밤을 달렸습니다. 적막함이 아닌 고요함이 저를 이끌어 주었고, 고독함 아닌 평안함저를 밀어 주었습니다. 당신의 충만한 빛은 밤을 고서 그렇게 차안을 가득 채워 나고,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History' 당신의  따라 흘렀요. 순간의 제가, 저의 역사를 엮어나가는 것이었기에, 오늘도 저는 퇴근 후 나무와 꽃들을 만나기 위하여 밤이 내려앉은 시골을 향하였습니다. 비가 다가온 하였기에 너무나 반가웠고, 살아오면서 비의 방문에 이리도 기뻐한 적은 없었지요. 저는 꽃과 나무들에게 거름을 흩뿌려 주고, 흙을 조금 더 두둑히 덮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알고 계셨나요? 저의 인연이 광활한 우주를 돌고 돌아 이렇게 흘러가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꽃을 피워내고, 나무를 심어가다 보면, 아주 조금은 저의 속뜰에꽃이 피어나고, 나무를 배워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어진 저의 인연과 부여된 저의 사명에 감사한 오늘이었고, 뽀송뽀송한 밤의 향기가 참으로 다정하게 코끝을 간지럽혔습니다.



황량하였던 지난 겨울에 망설임 없이 훨훨 옷을 벗어 버렸던 나목들에게서 저는 오히려 완전함을 볼 수 있었고, 무엇하나 단절되지 않은 그들의 체온에서 안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해주는 침묵의 향기에서 창조와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었지요. 그들에게서는 피워낼 봄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며, 준비하고 있내면의 힘이, 딱딱한 껍질을 비집고 새어 나왔었습니다. 봄의 빛을 타고 연녹의 향연을 고요하게 연주하는그들의 오케스트라는 신비롭고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배어 나오는 고요함은 어쩌면 강건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렇게나 모진 겨울을 장엄한 나이테를 남기며, 생을 준비해 가던 그들의 고요함은 분명, 강건함과 단단함이었습니다. 

당신은 소리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밤을 밝혀 주고, 지켜주셨겠지요? 낮의 소란스러운 꼬리들을 잘라내며, 쉼을 주고, 품어주는 당신이 있기에 기적은 싹틔울수 있었습니다. , 당신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다행이라는 언어는 당신의 존재에 대한 기쁨과 존경 담은 명징한 저의 진심이며, 당신의 마음이 빛이 되어 저에게 전해지고 있음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지요. 까만 밤의 붉은 눈은 온화한 당신의 품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기에 더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당신의 손길을 따라 가닿은 서재터에는 흙 내음과 풀 향기로 가득하였고, 한지에 물이 스며들 , 저의 몸 곳곳으로 맑게 번져 나갔었습니다. 한 밤의 뻐꾸기들은 당신의 몸짓을 따라 노래하고 있었고, 산비둘기들은  능선곡선타고서 껑충 뛰어 올랐지요. 산나무들은 투명한 바람에 기대어 춤을 추고 있었고, 들풀들은 사각사각 정겨운 대화 나누고 있습니다. 산책을 나선 고라니 가족은 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는지 황급히 달아나 버렸기에 저는 미안한 마음을 품어야 했지만, 우리가 겹겹이 쌓아갈 시간을 함께 지나서, 언젠가는 웃으며 서로의 앞에 마주설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라니는 예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나운 울음소리를 가졌지만, 그 또한 자연이 주는 필연이고, 조화이겠지요? 겨울철 그 녀석이 먹을 수 있도록 고구마도, 감자도 조금은 남겨두려 합니다. 물론 산새들도 빼놓으면 안되겠지요. 겨울은 본디 함께 견디어 나가는 계절이니 말입니다. 저 또한 당신 덕분에 빈약하고, 거칠었던 지난 울을 잘 지나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니, 부디 자리에서 한결같이 그렇게 있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서재 터의 건너편 호수당신을 따라 부서지는 윤슬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고, 물고기들의 뛰어오르는 기척만이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점이 된 하얀 전등빛 아래에서 물고기를 낚는 것인지, 세월을 낚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어느 촌부의 시간은 그곳에서 멈춰버린 듯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을 만나는 순간은 아마도 시간을 벗어나 시간의 밖에서 이루어질  밖엔 없을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냉정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는 자연의 여백 고요한 평화를 느낄 수는 없을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적요한 풍경을 드리우는 당신의 밤을 기다리고,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그의 줄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속뜰에 물이 흐르도록 해주는 네가 있어  좋다고 속살거렸지요. 구름을 벗어난 당신은 감나무의 손길을 놓지 않은 채, 밤을 지우며, 우리를 비춰주셨습니다. 지금은 비록 가느다란 모습의 자작나무들과 벚나무들, 몽글몽글 하였던 작은 목련들과 팝콘을 닮은 앙증맞은 조팝나무들이지만, 그들을 품에 한아름 안아볼 수 있을 저의 소담스럽기만한, 남아있는 나날이 기다려지는 오늘이었습니다.

무해하고도, 순한 향과 함께 말입니다.


 하늘을 수놓은 수만개의 벚꽃들은 일제히 반짝이며, 우리들의 인연을 감싸안아 주었고, 살랑이던 맑은 바람은 우리들을 파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이런 우리들에게 말없이 따듯한 시선을 두셨지요. 자연알려주는 특별하고도 귀한 인연들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말해주는 소리없는 소리에서 창조와 생명의 숨을 발견하였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묶여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였던 저는, 어쩌면 저의 얼굴을 지워버리며,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명을 존재케 하고, 살아내게 하는 일에서 불가해한 기쁨과 겸허한 충만의 손짓을 보았고, 저는 이제서야 그 길을 따라보려니다. 여러 생에 깃들여진 인연의 흔적들이 쌓여 우주는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리들이 만들어  인연의 기적에서 풋풋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날개달린 심장이 있음에 감사한 오늘이었습니다.

'빅토르 위고''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깊고 깜깜한 밤을 닦아내며, 우리를 비춰주는 당신에게서 제가 사랑받고 있음이 온전히 전해집니다. 비록 가닿을 수 없는 당신이지만, 물리적 거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과 나의 시선이 서로를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당신을 그리워하며, 저의 하루를 고요히 닫아보려 합니다.

달. 그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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