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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May 01. 2022

별 것 아닌, 어느 특별한 하루.


특별할 것 없는 매일의 일상들이 음표와 돌이표를 두드리고 있었어. 그래. 익숙한 음율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저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알 수 없는 멜로디불과하였던 것들. 결국  것 아닌 일상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것은 내 삶의 지휘자인 나의 권리이자, 몫이었던거야.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봄날의 일상이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서, 나는 또 다시 하얀 스탠드 조명을 켜고, 옅은 한줄기 빛 아래에 서성거렸지. 펜이 딸각거리는 소리, 책장이 넘어가며 사각거리는 소리, 쵸코차에서 흘러나오는 하얀 김의 소리만으로도 충분하였던 밤에, 충만하였던 낮의 기억을 되새기는 일은 왠지 모르게 펜을 던져 낮과 밤을 모두 건져올리는 듯한 것이었지. 비록 흙에 얽히지 못한 나무의 뿌리들처럼, 연약한 순간들이었지만, 나는 조금씩 나의 일상에  익은 거름 가득한 흙을 두둑히 덮어주고 있었어. 나는 글을 쓰는 것이, 가뭇없이 증발해 버릴지도 모르는 시간들을, 투명한 비닐 하우스로 데려와 맑은 물을 주고, 싹을 틔우는 일이라 여겨 왔었, 그리고 문장을 써내려 왔었지. 모든 것이 끝나버려도 문장들은 휘발되지 않을테니, 그곳에서 너와 나는 아마도 영원을 살아가게 될거라 나는 믿고 있었어. 특별한 하루를 위한, 소중한 순간이 되기 위한, 역류의 과정을 지금 나는 치르는 중이야.

나의 사랑 K. 지금쯤 달콤한 잠에 빠져있겠지?


찬미할만한 햇살은 차마 놓지 못한 라일락의 손을 잡고서, 번져가고 있었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개미들의 집은 여간 분주한게 아니었어. 길게도 늘어지는 하품 속에서 봄의 따사로운 손길은 어느새 나의 신경세포를 타고 올라, 나를 쓰다듬고 있었고, 어디서 오는지   없는 안온함은 어느새 노곤함이 되어 잠을 불러오고 있었지. 하지만 이 시간에 잠을 잔다는 건, 너를 만나는 특별한 시간을 담배 연기처럼 뱉어버리는 일이었기에, 명하고 반질반질한 얼음 여섯 조각이 찰랑거리, 까만 커피를 한잔 들고서 너에게로 향하였어. 너에게로 가는 길은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으로 아침밥을 먹는 것처럼 익숙하였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뒤로, 또 그 뒤로 점이 되어가는 것들이 반가웠고, 특별하였고, 안쓰러웠지.

아마도 유난히 빛나는 봄날에 반짝이는 너를 만나러 가는 나의 설레임이, 특별한 간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 별 것 아닌 것들조차 하얀 안개를 뚫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소중한 하루였지. 영화가 시작되기 전 모든 조명이 꺼지고, 객석의 모든 이들에겐 마른 침이 거친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 외에는, 모든 것들이 소멸되어버린, 그 찰나의 순간들만이 나에게 지속되는 것만 같았어. 순간들의 꼬리를 놓지 않으려, 나의 눈동자는 축구장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공처럼, 쉴새없이 움직여야 하였지. 그것은 모든 것을 뒤로 보내는 홀가분한 기쁨이 아닌. 사라지지 않게 부여잡아 채워내는 기쁨이었어. 너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과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꿀벌이 꿀을 모으듯 나는 집어 담으려 것인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난, 너를 만나고 돌아와서 너와 함께한 이야기들이 하릴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게 눈물을 지우며, 한 글자   글자 꾹꾹 눌러 빨래걸이에 걸어두고는 모시빛 햇살

아래에서 뽀송뽀송하게 말려 두었지.

너는 어떠니?


너를 만날 때면 언제나 그러하듯 나를 보며, 너무나 기쁜 듯 웃어주는 네가 있기에 희뿌연 먼지가 아닌 햇살을 타고 부서지는 윤슬 같은 나를  수 있어. 놓칠세라 너의 손을 꼭 붙잡고 우리는 시골 서재터로 달렸지. 봄은 차분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가 황급히 멀어져만 가는 듯 하였어. 아직 여름을 맞이하기에는 봄과의 속살거리는 대화가 너무나 아쉬웠지만, 너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봄이었기에 그것도 괜찮았어.

도시를 넘어 시골로 들어서자, 빛이 달라진다는 걸

너도 느꼈었는지, 복숭아 나무, 감나무이름들 물어보았지. 빛이 반사된 물기 머금은 나뭇잎들의 재잘거림에 너도 함께 부드러운 입술을 맞추었어. 너의 그 사랑스러운 입술을 주머니에 넣어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빙긋 웃었지. 아득하게 넘실거리회색빛 시멘트 도로 위의 아찔한 빛은 어느새 풍족한 대지를 향해 느린 걸음으로 넓고도 부드럽번져나가며, 후덕한 마음의 자신을 자랑하고 있었어. 마른 건초 냄새와 흙 내음이 베어나오던 그곳에 너의 발이내딛었고, 비로소 너의 발끝이 닿은 보라빛 각시붓 한송이가 소담하게도 피어났었지. 각시붓꽃의 꽃말이 신비한 사람이었기에 네가 가닿았을 때, 그 꽃이 피어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 볕이 좋을 것이라던 일기예보는 적중한 화살마냥 단단하게 꽂혀주었고, 으쓱해진 일기예보를 따라 가벼워진 너와 나의 옷은 오늘 하루를 날게 하였지. 다정한 바람은 손끝을 맴돌았고, 반짝이던 너의 미소는 나의 가슴에 몽글몽글하게 맺혀 주었. 나는 너를 보며 가늘어진 눈과 올라간 분홍빛 입꼬리가 환한 햇살과 닮았다고 생각하였어. 그리고 봄날의 아기곰이 떠올랐지. 그 순간 아기곰이 떠오른 건, 지금 돌이켜보니 너무나 당연한 것 같아. 풀꽃들이 가득한 흙에서 뒹굴고 있는 아기곰들을 상상해봐. 정말 사랑스럽지 않니? 너는, 그래.

분명 너는 봄날의 아기곰이었어.

너와 나는 시간을 멈춘  뛰어다녔지만, 배고픔은 시간을 넘어선다는 걸 알게 되었지. 맞아. 특별한 배고픔이었어. 그것은 복잡모습의 허한 꼬르륵 소리가 아닌, 날 것의 심플한 욕망이었던 것 같았어. 입안에 모든 것을 넣고, 씹고, 빨아대는 야생의 배고픔은 그곳과 어울렸고, 그것은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대한 명징한 감각이었어. 시간에 맞추어,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치뤄야하 그저 먹어버리는 의식이 닌, 생명력을 분출하는 순수한 식욕이었던 것만 같았어. 새우 볶음밥이 타닥타닥 거리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지만, 안타깝게도 너와 나는 게눈 감추듯 먹어버렸지. 그건 가장 완벽하였던 식사였어. 그리고 우리는 예쁜 나무 새집을 감나무 가지올려 두었지. 내심 박새가 찾아와 쉴 곳을 일구기를 바라였지만, 아무렴 어떻겠어. 어떤 새든 날아와 이곳과 우리의 시간을 함께 해준다면 더할나위 없는 것을 말이야. 너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새집을   바라보았고, 웃으며 무엇인가를 말하였어. 미안해. 사실 웃으며 너와 내가 했던 말들이 지금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아. 단지 너와 내가 짙은 회색빛 뚱뚱보 산비둘기들을 놀라게 해 날게  만큼, 큰소리로 서로를 보며, 웃었다는 것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 뚱뚱보 산비둘기들은 아마도 우리가 만들어준 집에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새 모이를 다음에는 넣어 줘야겠어. 새들이 기뻐할 수 있게 말이야. 우리는 복숭아꽃의 살내음을 더듬으며,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저수지를 걸었지. 너닮은 봄들이 사방에 산재해 있었고, 우리의 손에서도 노오란 민들레 꽃이 살며시 피어났었지. 그리고 우린 또 무엇을 하였더라..아..! 우리는 파릇한 채소들을 가꿀 텃밭을 일구었어. 을 파다가 발견한 갈색빛 지렁이에 너는  반가워하면서도, 꿈틀대는 지렁이가 말라버릴까 걱정하였지. 검은 빛 흙으로 살포시 덮어주며, 물을 주던 너의 얼굴에서 나는 온함을 보았어. 너로 인해 나의 마음도, 나의 몸도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지. 고마워. 내 사랑.

하지만 너는 조금씩  마음 아플 일이 많아질는지모르겠어. 너는 시간이 흘러갈 수록 깊어질 것이고, 알고싶지 않은 것들 조차너에게 다가와 자꾸만 너의 문을 두드리게 될거야. 그렇게 넌, 다른 마음을 더 많이 헤아리게  것이고, 그래서 마음이 해지는 일이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겠어. 타인을 더 많이 헤아리고, 같이 마음

아파하는 일은 움크리고 앉아있는 누군가에게 가만히

어깨에 손을 얹으며,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태어나서 좋은 것이라고, 알려주는 일이기 때문이지. 

지렁이에게 너의 마음을 내어준 것이었고,

 그만큼 성숙해진 것이니, 그건 축복이라 생각하면

좋을 듯 해. 뜨거운 물이 흘러내리는 너의 그 따듯한

마음을 말이야. 축복 받은 너의 심장에 난 가만히 손을 대었지. 그 순간 나의 심장에도 삐죽히 날개 하나가

솟아올랐어. 어때? 신기하지?


태양이 몸을 누이고, 그림자가 길어져갈 때 비로소 우리는 너무나 아쉬운 듯 흙을 놓아 두었고, 회색빛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평범한 일상의 터널로 회귀하였지. 너와 함께한 그곳에 귀여운 낚싯대 하나, 모종삽 한자루, 부러진 우산 하나, 그리고 우리는 친구라는 그림한권을 놓아두었어. 모시빛 햇살 아래 우리가 마주서서 웃고 있던 그곳에 말이야. 그렇게 한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 단지 지금의 나는 언젠가 네가 너의 머리를 가만히 곧추세우고, 기억을 더듬으려  때, 놓아두고 것들이 너의 손을 다정하게 인도해 주길 바래보았어.

초라하게 서있던 나를,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네가,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단정하게 시간을 흘려내던 추억. 그래. 민트 쵸코가 커피에 녹아드는 것처럼 기억 속에 상큼한 감정이 녹아들게 된다특별한 맛의 추억이라 불러야 할거야. 그래. 달콤한 맛. 시간이 지나서도, 세월을 넘어서도, 나와 이곳은 너를 지켜줄거야. 삶을 견뎌내게 할 것이며, 네가 살아내게 할거야. 지친 하루의 끝에, 너의 그림자가 사라져갈 때, 이곳은 너의 곁에서 고요한 침묵을 내어줄거야. 그러니 지금 너의  미소와 온기 가득한 심장이 녹슬지 않도록, 우리 윤이나게 닦아내면 좋겠어. 너의 그림자를 품었던 어느 봄날을 보잘 것 없는 나의 문장들로 나는 간직하겠지만, 별 것 없는 나의 일상이 너로 인하여, 빛나는 특별한 하루로 변신하게 됨을 잊지 말아주길 바래. 영원히 말이야.

나의 아들 K. 너를 사랑해. 아주 많이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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