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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Oct 19. 2022

마늘, 까는 남자.


가을의 향이 하얀 구름을 타고, 까아만 하늘을 흘러 짙어져가 10월의 밤이었다. 늙은 감나무 가지에는 홍시와 자리를 바꿔 앉은 노오란 달빛이 소담하게 쉬고 있었고, 부서지는 호수의 윤슬들은 낚시꾼들의 장화에 가닿아 살포시 손을 얹고는 그들의 세월을 매만져 주고 있었다. 사람이 만든 빛이 없는 시골의 밤 하늘은 완벽한 밤이 되어 가없이 펼쳐져 있었지만, 누군가가 수놓은 별빛들은 가을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어 지금보다도 반짝거릴 수는 없었다. 제비들은 떠날 채비를 하였고, 기러기들은 하나, . 돌아와 인연의 시작과 맺음의 조화를 그리며, 우주의 순환 알려주고 있었다. 다시 만난 가을의 품에서 물결 속에 일렁이는 나를 돌아보았다. 지난하게도 말이 없던 슬픔들 속에서, 모질스럽게도 잘 버텨낸 한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구석에 박혀 꿈틀거리는 등뼈를 적시던 짠내나는 눈물들도, 나의 얼굴을 향해 직선으로 떨어져 내리던 천장도, 밤새워 요란스럽게 흔들어대던 나의 창들, 이젠 모두 아련하게 사라지고, 이곳에는 고요함만이 남아 꽤나 괜찮은 가을을 그려내있었다.

5월에 심었던 고구마들은 제법 그럴싸하게 자라서 찾아든 손들에게 한 조각의 부드러운 마들렌이 되어 자신의 소명을 여전히 다해주있었다. 고구마를 캐며, 재잘거리고, 새끼 손가락만한 고구마를 집어들고는  세상에 혼자 밖에 없다는 듯, 떠들썩하게 함박 웃음을 던 아이같은 그들의 표정들볼 수 있었으니, 고구마들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고생많았어.' 하고 인사를 전하면서도, 조금씩 비어가는 고구마의 흔적들이 아쉬워 괜스레 텅빈 흙을 삽으로 뒤적거려 보곤 하였다. 감정의 선명함은 떠나가고 남아버린 자리에서 흐르는 여운들로 인해 더욱 농도가 강렬해지는 듯하였다. 여운에 취해, 여운을 이어가려 고개갸우뚱거리며, 고민하다가, 나는 문득 마늘을 떠올렸다.

아마도 마늘이 나를 닮은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은 작물들 중에 하필 매운 마늘이었을까?

마늘이 자양 강장제라서? 아니면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건강식품이라서? 물론, 그런 이유들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나에겐 그저 쵸코케익에 쵸코로 그려진 하트 문양 정도의 의미에 불과하였다. 아마도 마늘을 가꾸는 일이, 어두웠던 터널을 지나오던 나를 돌아보는 듯, 생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연노랑 마늘을 심으려면, 푸석한 통마늘을 집어들고는 껍질을 한겹 한겹 벗겨내고, 낱알로 하나하나 떼어내야 하였. 어릴 때 엄마가 마늘을 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깐마늘과 다져진 마늘이 등장한 이후로는 그 안온한 풍경을 보지 못해 아쉬웠.  이불 속에 들어가 머리만 쏙 빼내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듯한 엄마의 마늘 까는 모습. 그건 사랑과 정성이 만들어 낸 한폭의 그림이었다는 , 삼 요즘에서야 깨닫고 있는 나였다. 별것 아닌 듯, 지나가버린 따듯한 찰나들이 그리운 세월 속에 지금 나는 서있었다. 별것 아닌 마늘이었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분명 애틋하게도 그리워할 순간이기에 다정하게 마늘을 매만졌다. 씨앗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크지만, 낱알들 하나 하나에는 모진 겨울을 견뎌내어 희망들로 가득차 있었다. 마늘을 벗길 아지는 눈물 반복되는 재채기로 몸은 들썩거렸지만, 가득한 희열들이 쏘아주는 축포라 여겨졌다. 잡념이 사라지는 마늘 멍을 지나 마늘 줄기가 꼿꼿이 하늘을 향해 두팔 벌리고 있을 눈부신 봄날의 5월을 상상해 보았. 그걸 환희라고 노트에 적어 두고는, 마늘을 까며 들여다 보던 나는 희망이라 나지막히 조렸다.

바랄 ''와 바랄 ''. 바라고, 바래야만 하는 간절한 일을 희망이라고 한다면, 소박한 희망을 다듬는 일, 아마도 행복이라 불러  것이다. 치유와 재생마늘 껍질을 벗겨내고, 쪽을 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고통과 슬픔의 근원을 마주하면서, 감추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며, 존중해 주는 일이 치유의 시작이자, 완성인 듯 하였다. 물끄러미 낱알의 마늘들바라보았다. 굵고 건강해 보이는 녀석들부터, 잘고 색이 바래버린 녀석들까지, 하지만 그들 모두 마늘이었다. 내가 가진 좋은 부분은 굵고, 건강한 마늘처럼, 땅 속에서 싹을  틔우고, 언젠가는 하늘로 솟아오를 수 있도록  심어서 가꾸어 나가야  것이었고, 부끄럽거나, 상처받은 나의 영혼들, 또한 나의 소중한 일부이니 햇살 속에서 잘 골라내서 씻겨내어, 냉장고에 곱게 넣어두었다가, 내 몸 안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다듬어야 하였다.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그게 소중한 나였고, 사랑해야만 하는 나였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가지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중. -


검은 땅 속에는 빛 한줌 스며들못하기에 낱알의 마늘들에 붙어 있을 세균들이 땅 속에서는 쉽게 번식할 있었다. 그래서 마늘을 파종하기 전에, 마늘 전용 소독약에 낱알의 마늘들을 넣고, 모시빛의 햇살 아래에서 하루 정도 기다려야 하였다.

소독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를 아껴주는 이들의 마음받으며, 그들에게 기대어기도 하면서, 스스로가 어찌할 수 없는 불순물 떼어내는 일이었다. 나 또한 내 삶에 깊숙히 파고들어, 낙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불순물들로 인해 나 스스로를 폄하하며, 자책하고, 자발적 고립을 택하였던, 그런 시간들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빛과 어둠의 반복만큼이나 무수히 만나게 될, 작은 기척도 없이 살금살금 찾아오는 그런 두려운 순간들, 그리고 그로인해 조각 나버린 마음들은 언제든 다시 마주하게 것이고, 언제나 그러하듯 생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생이 점멸하그날까지도 이런 부침은 지루하리만큼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삶의 불순물들을 밝은 곳에 놓아두고 펼쳐보며, 이젠 소독을 할 줄 알게 된 듯 하였다. 아름다운 것들과 사랑스러운 것들 속에 좌절과 자기폄하, 슬픔과 고통... 이런 말들을 접어서 넣었. 살아 숨쉬며, 그 자리에서 항상 묵묵히  기다려주는 나무들과 꽃들은 나의 존재에 가지와  잎사귀를 드리워 불가해한 기쁨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고요해 보이지만, 역동적인 그들의 어깨에 손을 올려두고, 사색하는 은 나를 안아주는 이었고, 그러한 시간들나를 깊어지고, 단단해지게 하였다. 

소독의 과정을 거친 마늘들은 세균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고, 그들은 승리하며, 끝내 햇살에 닿을 것이다. 


'사색을 함으로서, 우리는 건전한 의미의 열광 속에 빠질 수 있다. 마음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행위들과 그 결과들로부터 초연하게 서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만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격류처럼 우리의 옆을 지나치게 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중. -


마늘이 소독 중인 동안, 고구마가 자랐던 흔적들에 거름과 비료를 흩뿌리고는 흙과 잘 섞어서 마늘이 자랄 수 있도록 땅을 갈아주었다. 마늘용 뿌리 강화제를 넣어주고,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줄 비닐로 땅을 덮어주었다. 비닐 위에 10센티미터 간격으로 규칙적인 구멍들을 뚫어 그곳에 소독된 마늘들파종하였고, 흙으로 덮어주었다. 되었다. 이제 마늘만이 스스로의 길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이곳에서 벚꽃 흩날리는 봄을 그들이 맞이하길 바래보았다. 틈틈히 물을 주고, 웃거름을 덮으며, 나 또한 마늘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하이얀 목련과 분홍빛 복숭아 보고 있기를 소망하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고단했던 치유의 시간들이 엉거주춤 하게나마 앞을 향해 흘러갈  있었던 건, 나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이들이  그 길에서 박수를 보내며, 인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하루의 절반을 보내는 일터에서의 친애하는 팀원들, 글과 마음을 나누는 이곳 브런치에서의 글벗들, 그리고 너그러운 자연. 어쩌면 좋은 환경들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나 또한 부단히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이젠 잘 알고 다. 가능성에 미리 벽을 세우지 않고, 사소한 희망이라도 쥐어보려 애쓸 때, 의 환경은 조금씩 넓어지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들도 자주 알아볼 수 있게 되는 듯 하였다.


'미래를 생각할 때, 또 앞으로 가능한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앞쪽 방면으로는 어느정도 느슨하게 선을 그어놓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윤곽을 희미하고 막연한 것으로 남겨두어야 할것이다. 마치 우리의 그림자가 태양을 향해서 눈에 보이지 않게 땀을 흘리  말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중. -


시골서재에서 식물들을 가꾸며, 치유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지 반년 정도가 흘렀다.

사실 아직 치유에 대해 나는 눈꼽만큼도 알지 못한다. 단지, 부단히도 상처받고, 그만큼 치유해 가야 하는 삶의 일부분이라것과 결국 치유의 길 끝에는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처방전놓여있다는 어슴프레게나마 잡아 볼 있을 뿐이었다.

사랑받을 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가 귀하여기게 되고, 사랑할 때,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만들어졌다. 삶, 사람, 사랑, 살림. 나는 어문학자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이들이 비슷하게 생긴 이유가 있을 하다. '자기 앞의 생'에서 '사람은 사랑없이는 살 수 없다.' 하밀 할아버지의 말을 오늘도 음미하며, 씹고, 삼킨다. 철학과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어 야간 대학원을 살펴보고 있다. 마음에 대해 배우고, 타인과 나의 마음을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보며, 그렇게 다정히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싶다. 지금까지의 기록들이 훗날 좀 더 전문적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로 다시 태어나길 바래본다. 기타 좀 쳐보라는 친구말에 순간의 정적과 함께 생각하였다. 기타...있었구나. 한때는 사랑하는 이좋아하는 것이라 배웠었지만, 그가 연무처럼 사라져 버리고, 남아버린 흔적이었던 기타였다. 상흔이 되어 내 몸과 마음에 깊이 패인 기타였기에 이후로 시선을 둘 수 없었지만, 이제는 기타를 다시 배울 수 있을  하였다. 기타는 그저 기타일 뿐이었고, 상처는 나 스스로가 내 몸과 마음에 난도질한 생채기였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타를 다시 배우고, 연습해 보려 한다.


'잘 못해. 그런데 이제는 연습해서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나중에 꼭 들려줄게.'


잠들어 있던 갈색빛 기타를 꺼내어 다시 만져보았다. 매끈한 감촉에 나도 매끈해지는 하였다. 밤이 내려앉은 가을의 중심에서 달빛이 여태 황홀하니 이젠 길을 잃지는 않을 하였다. 아니, 길을 잃더라도 괜찮았다. 나에겐 마늘이 있으니 말이다.

길을 잃은 당신이지만, 사랑받아 마땅하다.


'길을 잃고 나서야, 다시 말하면, 세상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며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관계의 무한한 범위를 깨닫기 시작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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