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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Oct 10. 2022

삶은, 살아지는가, 아니면 사라지는가.


'잘 지내고 있어? 괜찮다. 시골에서 고기나 구워먹자. 그래. 다음 주에. 자고가도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친구 W 와의 통화에서 빈 손인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여섯 문장이었다. 여섯 문장은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내가 에게 전할 수 있는 전부인 듯 하였다. 의 지친 소리가 연무가 되어 사라지고, 남아버린 전화기의 무뚝뚝한 끊김음을 들으며, 나는 까만  하늘에 한숨을 띄웠지만, 심장 한켠에서 눌릴 때로 눌려 찰흙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에 대한 걱정들은 쉬이 뱉어내어 지지가 않았다. 습관처럼 담배 한개비꺼내물고, 를 만나면,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 것이 좋을 지를 고민하였다. 그와 나 사이에 인사라니. 기억나지 않는 얼룩을 닦아내이상하였지만, 그의 무거운 현실에 잠시라도 암막커튼을 내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스꽝스러울 하여, 쓴 웃음이 흘렀지만, 그저 가을의 하늘 빛만큼이나 환하게 웃어주며, 어서와라고 말해주는 거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시간만큼은 부디  현실을 덮어줄, 시골의 가을 바람이 흐르길 바라였다. 이런 저런 잡념들을 목구멍으로 삼키면서, 빠알갛게 타오르는 숯불을 물끄러미 보았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붉은 빛은 일렁거렸, 끝을 알 수 없는 까아만 공간에서 숯불은 아름답게 꿈틀거렸다. 문득 삶이 타들어가는 숯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재가 되어가는 숯인걸까, 빛을 내는 숯인걸까. 삶은 살아내는 , 아니면 사라져 가는 걸까.

그래. 어쩌면 나는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 이곳에서 시간을 꾹꾹 눌러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서글프게 사라져 버리고, 잊혀질까 두려운 나의 순간들을 부여잡으려 숯을 뒤척거렸다. 그럴 때마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모를 불의 춤은 더욱 시뻘겋게 선명해졌고, , 그렇게 타들어갔다.


어느 토요일. 2021년에 새끼 손가락을 걸었던 와의 약속을, 2022년의 가을 하늘 아래에서 지킬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나는 를 맞이하기 위해 가을의 들녘을 뒤로하며, 시골 서재로 달렸다.

가 오기로 한 오후 네시,

난 아침부터 그와의 만남으로 인해 설레임에 기대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언제나 무언가를 기다리며, 몸을 움직이는 일은 살아가고 있음을 명징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황금빛을 품은 가을의 대낮이 삼십 킬로미터의 거리로 내 앞에 늘어져 있었지만, 삼백 로미터의 거리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졌던건, 아마도 만남을 기억해 두라심장의 재촉 때문인 듯 하였다. 아직 한낮이었지만,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었다. 도착하기 전에 우리의 밤을 밝혀줄 장작과 숯, 그리고 우리를 데워줄 과 고기를 준비해 하였다. 그리고.. 음.. 그래. 이불. 지난해 빨아둔 하얀 솜 이불을 꺼내어서는 탁탁털면서, 뽀송뽀송한 이불이  하룻밤을 잠시나마 평안으로 덮어주길 바라였다. 먼지 입자들부서지며, 커튼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실눈으로 살피고 있을, 행복한 표정의 상상해 보았다.

여자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인 나의 벗. W. 볕의 냄새가 가득한 이불을 활짝 펴서 에게 놓아주면, 그가 풀향기맡으며, 풀벌레 소리들으, 그렇게 달빛 아래에서 지친 몸을 말릴 수 있으리라. 오늘 밤만큼은 그가 뽀송뽀송한 하얀 이불이 되어, 그가 가졌었던, 용기와 자신감, 그리고 자신을 복기할 수 있길 소망해 보았다. 반년만에 만나는 얼굴이 사실, 좀처럼 선명하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낙인처럼 새겨져 있는 녹록지 않은  삶들만이 불빛에 잘못 찾아들어 이리저리 창문에 부딪히는 나방모습을 하고서는, 다가올 뿐이었. 비록 안쓰러운 나방이었지만, 부딪혀도 그냥 살아내는 그의 소명은 경이로웠다. 나는 목살과 어묵탕, 사과와 추억의 쫀디기, 그리고 녹색빛이 찰랑거리는 소주들을 집어들며, 그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겨우 소고기 죽과 과자 몇봉지를 장바구니에 집어 넣으며, 상상력의 가난을 괜스레 탓하였다. 그래도 텃밭에 고구마와 호박, 고추와 깻잎, 얼갈이 배추가 있으니 부족하진 않을 것이라며 위안하였다. 살아있는 것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는 시간은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한번 알려주었다.

기다리며. W.


'이야. 너 정말 만들었네.'

'그래. 어서와.'

오랜만에 만난 는 말라버린 모습으로 까만 얼굴을 하고서는 내 앞에 나타났다. 삶이 를 얼마나 지워내었는지, 또 지워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지워져 가는 그가 안쓰러웠지만, 그에게 들킬세라 나는 그저 배고프지, 고기 구워서 밥먹자라는 말로, 눈빛을 숨겨야 하였다. 그가 내민 휴지 선물세트가 납덩어리가 되어 나를 땅으로 침잠시켰고, 휴지 선물세트가 이렇게나 무거운 것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W는 2년 전 직장을 잃었고, 동분서주하며, 가늘어진 일상을 이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반년 전보다는 다행이도 나은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야위어 버린 그의 목은 시려워 보였고, 카라없는 티셔츠는 괜스레 서러웠다. 나아진 건, W의 아내가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하게 되었고, W는 낮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일상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명문대의 정치대학원을 졸업한 그였지만, 사회는 그의 존재를 지우려 하였고, 그는 생각해보지도 않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그의 흔적들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나이 장벽이 없이 공무원으로 갈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어 사회에 고마워하는 듯 하였다. 그는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일까. 예전의 W는 국가와 사회에 날선 비판서슴지 않았다. '칼 마르크스'의 말처럼 정말 물질이 삶을 지배하는 것일까. 흐려져 가는 그가 안쓰러웠지만 나는 지금의 그 또한 응원한다. 그는 나의 벗인 W이기 때문이었고, W라서 그의 마라톤에 박수를 보내며, 서있는 것이다. 뛰어가든, 걸어가든, 아니 기어가더라도 상관없다. 그저 결승점에서 서로에게 고생했어라는 말 한마디 건네고픈 것 뿐이니 말이다.  가늘어진 숨소리와 안경 뒤에 숨어버린 옅어진 눈동자가 무기력해 보였고, 허기진 그의 영혼을 들춰 내는 하여, 그를 빤히 바라볼 수 없었다. 너스레를 떨며, 이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그런데, 조금 속상하였다.


'몸뚱이에 비해 비참할 정도로 가는 수많은 다리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신의 눈 앞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 '프란츠 카프카', '변신' 중 -


다시 만나기 전까지만 하여도, 그를 떠올릴 때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소외와 사회의 부조리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얼마만큼 지워가는지를 보여주는 기괴해 보이지만, 심장에서 슬픔이 흘러내리는 소설.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리'는 벌레로 변신하고 나서야 자신과 가족, 사회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삶을 갈아 만든 공허의 늪에서 결국 죽어갔다. 하지만 다시 만난 그에게서 변신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발품을 팔던 그의 곁에는 든든한 아내가 있었고, 지금 그는 지켜야할 사람들과 희망이 있었기에 곧, 나비로 변신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켜야할 대상과 사랑이 있다면, 그 삶의 하루들은 소중한 것이었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젠 잘 알고 있었다. 그랬다. 살아지는 것이다. 하루들이 쌓여 삶이 되고, 인생이 되는 것이다.


'혼자서 이걸 다했다구? 너 여전하다. 그리고 부럽다.'

'부럽기는 무슨. 이렇게 해놓으면 그저 와서 구경하고 놀다가는 사람들이 더 부러운거야. 넌 그래서 부러운 사람인거고. 친구 잘 둔거지 넌. 고구마나 좀 캐내. 구워먹게.'


그는 고구마를 캐내는 동안 행복해 보였다.

감탄사를 연신 쏘아대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풀멍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는 자연의 흥취를 알게 되었고, 곧 이치를 알게 될 것이다. 평화로움의 이면에 감춰진 강인하고, 역동적인 삶의 모습을 말이다. 자연에서 보내는 그의 오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살아내고, 기억되어지는 하루로 남을 것이다.

괜찮아. 넌, 곧 나비가 될테니.



철판에서 구워지는 고기와 들어가는 장작의 소리, 그와 나의 술잔 부딪히는 소리, 풀벌레 소리만이 가득한 10월의 아름다운 밤이었다. 뜨거운 목욕을 하고 나온 듯, 빨개진 얼굴들이었지만, 삶의 무게 또한 잠시나마 벗겨낸 듯, 우리는 그렇게 웃고 떠들었다. 삶도 불판 위에서 익어 가기도 하고, 때로는 새까맣게 타들어 가기도 하며, 슬픔의 흔적을 한줄 한줄 몸에 새기기도 할 것이다. 고기가 타들어가 사라지지 않게 우린 열심히도 주워 먹었다.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고기가 되지 않으려는 듯 열심히 말이다. 우리가 함께한 이 시간들. 불맛과 술맛, 그리고 사람의 맛과 자연의 맛에 버무려진 고기를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니, 심장에 녹아든 것들은 잊을 수가 다.

온전한 하루는 몸과 마음에 남아 올올이 살아간다.  삶이 뱉어내는 무례하고도, 불확실한 슬픔들을 온 몸이 흠뻑 젖을 때까지 맞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랑의 대상들이 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없다면, 하루가, 한 달이, 그리고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져 가는 것인지도, 아니 어쩌면 스스로가 가볍게 날려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 사라지지 않게 사랑과 아름다운 것들을 단단하게 꼭 붙들어야 하였다. 늘어선 초록빛 소주병들로 그와 나의 시간을 달빛 아래에서 단단히도 묶었다. 비워낸 소주만큼, 우리의 번잡한 마음도 비워내고, 내일은 좀 더 나은 것들로 채울 것이다. 우리들의 공기는 달콤하였고, 달빛 아래에 두사람었다. 그리고 그림자는 하나였다.


'어묵탕이 칼칼해서 좋다.'

'맛있지? 텃밭에 고추 좀 따서 썰어넣었지. 내년에도 같은 품종을 심으려고.'

'내년에는 합격해서 올게.', '그냥 와도 돼. 언제나.'


달이 있었고, 별이 있었고, 마음을 나눈 우리가 있었기에 나는 오늘을 가슴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추억의 쫀디기로 우리의 흥취는 이어졌다.


삶이 언제는 너그럽고, 관대한 적이 있었던가.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고, 손에 쥐어진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평생 삶이라는 녀석의 털끝하나 조차도 우린 만져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삶을 사라지게 방구석 한켠에 방치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나 안쓰러운 나라는 존재가  한번 뿐인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비대하고도, 포악스러운 삶을 살아내는  어쩌면 함께 사랑하고,견뎌내는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면서도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 어쩌면 우리들에게 부여된 단 하나의 고귀한 사명일 것이다.

시골의 차가운 가을 바람이 창을 요란히 두드렸지만, 그가 떠나고 남은 흔적들을 정리하지 않은 채, 봄을 품은 벚꽃을 떠올리며, 기록하였다. 누군가의 체온이 남아있던 여운을 만지며, 쓸어담아 본다. 아무것도 아닌, 변변치 않은 글로 우리가 서로를 보듬으려 했흔적들이 오랜동안 남아서 우리가 살아있던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망해 보았다.

네가 남기고 간 저 달은, 내가 기억해줄게.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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