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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Apr 08. 2022

무례하였던 당신에게.


밤 11시. 늦은 밤의 퇴근길. 당신의 편지를 떠올리니, 시골에 심어둔 백목련이 보고싶어 까마득하게 이어진 밤길을 달려야 하였습니다. 새까만 밤은 세상을 집어삼켰지만, 의 마음은 붉게 번지며, 눈물을 뿌려야 했지요. 하이얀 손톱달은 산 허리에 걸려 있었고, 별빛들이 쏟아져 내리는 산 아래에서 다행히도, 아주 다행히도 백목련은 활짝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홀로 남아,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을 백목련은 얼마나 두려웠을지 감히 가늠해 볼 수는 없었지만, 떨리는 백목련의 어깨는 에게 닿고 있었지요. 백목련에게 물을 주고서, 그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하늘과 달과 그리고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시선이 닿을 수 없는 저들이지만, 존재하고 있었고, 제가 바라볼 수 없다 하여도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에 마음이라는 시선 통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렇습니다. 보지 못한다 하여도 그 자리에 있어주고, 기다려주는 것들은 마음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당신은 하얀 백지에 무심한 서명하나 새겨서 에게 내미셨고, 그곳에는 사직원이라는 알 수 없는  글자만이 휑뎅그렁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어떠한 이유도, 어떠한 대답도 알게도, 듣게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당신의 뾰족한 의지를 선언이라도 하신 듯 당신은 연락처마저바꾸셨습니다. 없는 번호라며,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어느 기계적인 여성의 말은 싸늘하였고, 얼어붙은 저는 체념 섞인 한숨을 길게도 뱉어내야 하였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티끌만큼의 의미조차도 없을 저에게 당신은 묵직한 자존심을 던지셨지만, 저는 깃털같은 저의 자존심을 입에 물고는 당신을 기다려야 하였지요. 당신께서 근무하시는 부서를 통해 당신상황을 조금은 더듬거릴 수 있었고, 아내분께 닿을 있었습니다. 참으로 무례한 당신이었지만, 당신은 미미한 저를 아주 조금은 존중해 주셨기에 아내분을 아마도 저에게 보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당신의 아내분께서는 벚꽃을 닮으셨더군요. 수줍음과 슬픔이 배어나오는 옅은 미소가 아름다우셨고, 그런 아내를 둔 당신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무례한 당신과 달리 아내분께서는 예의바른 분이셨기에, 당신의 무례함은 이내 저의 머릿속에서 흩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내분의 가느다란 입술에서 조심스레 흘러나오는 말들은 당신이 놓여진 어마어마한 조건의 처연함을 알려주었고, 당신의 무례함은 어느새 저의 공감과 자리를 바꾸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내분옅고도, 부드러운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닌 듯, 저에게 아득하게 다가왔고, 저는 무거운 추를 달고는 의자 깊숙히 심연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야만 하였습니다. 저의 말은 아내분의 말들 속에서 거친 목을 타고 흘러내려가 삼켜야만 하였지요. 흐려져시력으로 버티고 있는 당신이었지만, 어느새 하얀 종이 에 쓰여진 검은 활자는 증발해 고 있었고, 맡겨진 업무는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처럼 쌓여가고 있었기에 더이상 일터에서 버티는 일을 당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타인들에게 짐이 된다 여기셨을테고, 자존감을 넘어선 무례한 자존심이 당신의 귀에 속삭였겠지요. 더이상 도움받지 말고, 폐끼치지 말고 사라져버자며, 자신만의 정의로움을 찾기라도 한듯, 아스팔트의 딱딱하고 거친 다짐을 이불을 뒤집어 쓴 채 혼자 결정하셨겠지요. 아틀라스와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을 혼자 짊어지기라도 하는 듯 말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의 자존심을 받아들여줄 너그러움이 저에게는 없었고, 당신의 사직원을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드릴 있는 업무능력 또한 저는 소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뒤집어 보여줄 수 있는 카드는 무수히 많았지만, 당신의 말을 무조건 따라줄 수 있는 여유는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벚꽃을 닮은 당신의 아내분에게 당신을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며,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서를 발급받아 달라 말씀드렸습니다. 아내분께서는 치료가 지 않는 병이라 어느 시동안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서 발급은 어려울 것이라며,  을 흐리셨고, 벼 이삭처럼 고개를 떨구셨습니다. 괜찮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저에겐 카드가 무수히 많았거든요. 돌봄휴직을 아내분에게 제시하였고, 그제서야 아내분은 활짝 핀 벚꽃을 보여주시며, 고마움의 말씀을 저에게 전하셨습니다. 수술이든, 그 무엇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도무지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우리 다시 생각해보자 말씀드렸습니다.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할 수 없는 일을 미리 재단하여, 당신의 삶을 좁디 공간과 시간 버려두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이들이 당신을 돕기 위하여 순백의 손길을 내미는데, 정작 당신은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고, 손을 거두려 하셨기에, 저의 심장 한켠에서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일상이 버겁고, 현실이 두려워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은폐하려 하셨나요? 당신의  일상이 지켜지길 바라는 숱한 이들의 보석같은 마음은 보이지 않으시던가요? 당신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을 애석하게도 저는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운명을 던지신게 아니라, 사명과 권능을 부여하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소한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견뎌낼 수 있는 신을 당신에게, 그리고 저에게도 부여해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이 신에게 의지하시는 만큼, 당신에게 가느다란 손을 내미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에도 기대어 주시길 바라봅니다. 신이 우리들에게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삶을 부여한 건, 어쩌면 우리들 스스로가 서로에게 온기를 전달하고, 보듬으며 견뎌낼 힘이 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주위를 둘러봐 주시길 바랍니다. 알게, 또는 모르게 당신에 대한 배려를 묵묵히 해오시던 분들, 당신이 방구석에서 울다가도 환한 얼굴로 방문을 열어젖히고, 나와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가끔 어떤 일 빨리 끊어내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적어당신에귀하고 소중한 것이라면, 그리고 당신의 삶에 중요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 그렇게 쉽게 놓아 버리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오늘부로 사직이 아닌 휴직  되셨습니다. 

당신의 소속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저께 밤, 당신은 미안함을 담아 장문의 메세지를 저에게 보내주셨지요. 저는 무덤덤하게 당신께 답장을 이어갔지만, 사실 그 시간 눈물 한방울 떨어뜨리며,  문장, 한 문장을 꾹꾹 누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것만 같은 서러운 당신의 이야기를 저는 힘겹게 주워 담았고, 당신 또한 저의 답장에 결국 울음을 삼키셨다 쏟아내시길 반복하셨다 하셨습니다.

많이 두렵고, 혼란스럽지만,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결심이시라 여겨보려 합니다. 제가 하는 일 때문인지, 사실 저는 아프거나, 슬픈 분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청력을 잃어가고 계신 분, 시력이 남아있을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신 분,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파킨슨병과 투쟁하시는 분, 어느날 면역체계가 붕괴되기 시작하신 분. 세상에는 처음보는 병마들이 많았고, 이름 모를 병마들과 마주하여야 하는 그들을 볼 때면, 삶의 난폭함에 다시 한번 분노하게 되고, 치를 떨게 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군분투하며, 자신일상을 지키려는 노력에 감탄하면서, 응원과 박수를 보내기도

하지요. 당신께서도 일상과 자신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제 멋대로인 삶일지라도 그것을 끌어안고, 살아내는 이들의 목덜미 사이에서는 언제나 숭고한 빛줄기가 비집고 흘러나온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권능을 부여받은 특별한 우리들이 서로를 불러주고, 서로의 주변을 맴돌면서 태어난, 삶이 우리에게 양보해 준, 윤슬 같은 빛을 저는 당신의 아내분에게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카카오스토리에서 저의 글을 읽어보셨다며, 시골 서재가 완성되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하셨습니다.

네. 지어야지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예쁘게 짓고, 가꾸어서 당신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마도 당신과 저는 그곳에서만큼은 서로의 시간을 뛰어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그곳을 아주 소중하게 들여다 보고, 다시는 보지 못하기라도 하는 듯, 유심히 바라봐 주실테니 말입니다. 당신의 눈은 비록 약해지고 있을지라도, 그만큼 당신 마음의 눈은 밝아지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께 주어진 시간이 참으로 불공평하고, 매정하기에, 저의 시간 또한 아껴서 조금은 더 빨리 서재를 완성하여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손 끝에 힘을 주고, 한줄 한줄 끌어 올려보겠습니다. 서재를 만들어야 할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신에게, 그리고 저에게 주어질 시간을 삶이 조금은  양보해주길, 기도합니다. 소중한 매순간을 포착하고, 진주처럼 귀하게, 우리가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깜깜한 밤, 칠흙같이 어두워도 백목련은 그곳에 그대로 자리하며, 기다리듯 말입니다.

다시한번 당신의 일상이 회복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린 우리가 함께 견디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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