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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Apr 04. 2022

실패한 사랑은 없습니다.


감나무의 꽃말은 자애로움과 소박함이었다.

일요일 아침 7시. 일요일이었으나, 눈꺼풀 위로 쏟아지는 하얀 빛을 따라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파란 하늘이 하얀 풍선껌을 불고 있었고, 이내 솜사탕이 되어 세상을 달콤하게 변주하고 있었다. 주말에만 작업을 하다보니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서재 터였지만, 봄의 손길을 따라 나의 몸과 마음은 시골의 향을 향하고 있었다. 축 공사가 어느정도 완료되었기에 다시 찾아온 봄과 갈아입은 서재 터를 맞이하기 위하여, 아이들과 함께 봄을 달려 시골로 향하였다. 달리는 차창으로 봄의 미소가 쏟아져 내렸고, 봄을 닮은 아이들의 수다가 차안 가득 흘렀다. 차창을 흘러가는 만개한 벚꽃들도 언젠가는 흩어져버겠지만, 산화할 것을 알고서 저리도 만개하진 않았을 것이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저들은,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동시에 기뻐하는 것이었다. 비록 나는 이혼을 하였지만, 내가 믿고 의지하는  동지인 전 아내 나이들이 함께 기뻐해줄 것을  알기에, 차 안의 공기는 춤을 추었다. 봄의 왈츠에 맞추어 나와  아내아이들과 글, 서로의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말들은 달큰하게 태어나 다정하게 어울리다, 그렇게 부드러움으로 사라져갔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들이 있어 사랑도, 삶도 깊어져만 가는 오늘이었다.

교사인 전 아내는 교육대학원을 다녔고, 철학과 종교, 심리 등을 두루 탐독하였기에 나와는 다르게 진중한 생각과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108배 참선과 함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그에게 언제나 그래왔듯 난, 깨끗한 존경을 보내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마음은 선배를 향한 존경이었고, 친구를 향한 사랑이었다. 그와의 인연이 한때는 물먹은 솜이 되어, 후회와 슬픔으로 물들이며, 무겁게 가라앉아만 가던 시절도 있었다. 후회가 뒤섞인 불분명하고난해한 질문을 내가 뱉어낼 때면, 그의 옅은 입술의 움직임을 따라 흘러나오는 답변은 언제나 간결하고도, 선명하였다.

'사랑이라는 감정때문에 우리는 결혼한 것이었. 사랑이 쥐약이 되었을지라도 사랑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 , 아닌가? 쥐가 쥐약인지 알고 먹었겠냐. 중요한 건 쥐약을 먹고서도 지금을, 그리고 내일을 어떻게 살아낼 지를 생각하는 일.'이라며, '비록 우린 쥐약을 먹었지만, 다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지금도 행복한데 과거를 놓지 못한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네. 실패한 사랑은 없으니까.'

오늘은 이에 더하여 나에게 희소한 칭찬을 덧붙이는 그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땅을 갈고, 꿈이 있는 지금의 당신이 훌륭하고 놀랍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하지?'하며, 두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유일한 기적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그건 사랑일 거라고 말해주었고, 그는 나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우린 지금도 서로를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이성으로서 사랑하진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쥐약을 다시 먹지는 않을 듯하였다. 대화는 추억을 덧대어 가며,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세상에 산재해 있는 사랑들 중에 실패한 사랑은 없었고 사랑은 모두 성공한 것이었다. 비록 사랑이라는 이름의 환한 빛을 따라 항상 들러 붙어있는 아픔이라는 그림자가 있었지만, 그 아픔들을 치유하면서라도 , 사랑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살아가는 일과 사랑하는 일은 같은 말이었고, 사람은 사랑없이는 살 수 없었다. 

사랑하였으니, 행복하였고, 그것으로 된 것이다.


서재 터를 만드는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서재 터의 어중간한 위치에 감나무 한그루있었고, 마을 어르신들은 열매도 맺지 못하는 휑뎅그렁 감나무에 대하여 말을 옮겼다. 어르신들의 말씀으로는 예전에는 이곳이 모두 감나무들로 빼곡히 있던 곳이었는데, 관리를 하지 않아 감나무들이 사그라진 것이라 하였다. 감나무가 마치 슬픔과 고통, 기다림. 이런 말들이 우리 생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하였기에, 나는 그런  좋았다. 비록 결실을 맺지는 못하더라도 , 그에게서 누군가를 애태우며, 사랑하고 있는 이의 모습을 보았, 결실이 없다하여 그 마음 타의로 잘라낼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사랑은 심장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었다. 다른 감나무들은 기다림에  지쳤거나, 더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서 하나 둘 떠나가 버렸겠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온전히 모진 세월의  상처를 견뎌내었다. 드러난 뿌리와 말라버린 가지의  호흡을 따라, 한 곳만을 응시하던 그에게서 상처 많은  향기가 가장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난, 그와 함께 수신자 없는 시절의 편지를 써내려가게 될 듯 하였다. 기다림과 애틋함에 대한 문장을 말이다. 감나무를 쓰다듬으며, 사랑에 대한 기억을 건져올리 바닥에서 만난 허기진 이들의 간절하고도, 순수한 사랑을 담아낸  '퐁네프의 연인들'이 떠올랐다.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시력을 잃어가는 화가, '미셀'은 거리를 방황하며, 그림을 그렸고, 그녀퐁네프의 다리에서 살아가는 노숙자 '알렉스'를 만나 사랑에 물들어갔다. 비록 노숙자인 그들이었지만,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불러주며, 아름다운 인연의 결을 깊게 새겨넣었다. 그들은 3년 후 크리스마스에 퐁네프의 다리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하며, 헤어졌지만, 결국 그들은 약속을 지켜내었고, 서로를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며, 영화는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비록 그들의 사랑이 미성숙하고, 비정상적으 보일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아니, 오히려 눈이 부시는  특별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퐁네프의 다리에서 노숙 생활을 하며,  격정적이고도, 극단적인 사랑을 나누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훨씬 목마르고 진솔하였으며,  오히려 고귀함마저도 느껴졌다. 알렉스는 언어보다는  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였기에, 발가벗은 몸을  통한 그의 사랑은 더욱 순수하였고, 열정적이었다.  미셀과의 이별 자신의 손가락에 총을 쏘아버리는  극단적인 모습의 알렉스에게서 그녀를 향한 진실된  마음과 간절함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결국 그의  지극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미셀은 자신을 기다리고, 바라봐준 알렉스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알렉스에게 미셀은 누구와대체가 불가능한 미셀, 사랑이라는 언어 그 자체였고, 그것은 절대적이고도, 완전한 마음이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실 죽을 때까지, 나를 포함한  누구도 명징하게 손에 쥐어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사랑에 대한 모습들을 더듬거리며, 그려갈 수 밖에는 없을 듯 하였다. 결실을 맺지 못하는 사랑은 있겠지만, 실패한 사랑은 없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타인을 향한 마음과 행동, 그것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 '로맹가리', '자기 앞의 생', 서문 중 -


사랑은 감성의 영역이었기에, 이성의 틀에서 잉태되어 살아가는 것들로는 수렴될  없는 것이었고, 이성의 시선비춰진 사랑은 미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채찍을 맞고 있던 나귀를 부둥켜 안고서 미쳐가던 니체. 극단적인 사랑의 모습은 상대에 대한 희생과 헌신, 배려로 미치는 것이었다. 사랑은 자신의 마음에 그 사람만한 구멍을 내는 것을 겁 없이도 허락하는 일이었고, 구멍을 되메우는 일은 두려운 것이었다. 사랑은 자신을 부풀려서, 과장하여 상대에 대한 우위를 점하려 애쓰,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또한, 배려로 위장한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랑하는 이의 욕망과 마음을 존중하는 모습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주는 별 것 아닌 사소한 선물들과 행복들을 생의 기쁨으로 받아들일 줄 알고, 똑같은 마음을, 똑같은 기쁨으로 상대에게 줄줄 아는 것일 것이며 이에 대한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눈으로 바라보며, 함께 기쁘고, 함께 슬플줄 아는 영혼의 확장.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랑은 상대에게 맞춰 주려는 의지와 행동이 기쁘고도, 당위적으로 나타나 두팔 벌려 먼저 다가가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정의할 수는 없고, 단지 열거할 수 있을 뿐인 감성의 영역이며, 행동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명사가 아닌 동사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그래서 실천한다.


감나무의 꽃말은 자애로움과 소박함이다. 너그러운 사랑을 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화사한 감꽃을 그려보았다. 자애로움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시'라는 힘을 줄 것이다. 다시 시작해. 다시 해보자. 다시 가보자. 다시 모이자. 다시 보자. 다시 써보자.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려면 사랑이 필요하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다시 스스로를 보살피며, 자신의 행복과 미래를 다시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고, 나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슬픔을 알아볼 수 있사랑이 있다면, 타인을 다시 일으켜 세울지도 모르겠다. 불교에서는 무한한 코스모스에서의 윤회를 끊어내기 위하여 참회하며, 해탈하라는 가름침을 주지만, 난 사랑할 수 있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고, 윤회하고 싶었다. 통증과 슬픔이 있더라도 간절히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를 외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으로 슬픔을 묻으며, 나는 오늘도 사랑하며 살아간다. 아이들과 함께 소담하고 어여쁜 목련을 한그루 심고서 내년에는 좀 더 오랜동안 만나자며, 하얀 목련에게 속살거리고는 돌아왔다. 목련의 꽃말은 고귀함이었고, 가장 고귀한 일은 사랑일 것이다. 소박한 자애로움을 닮고서, 고귀한 마음을 담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밤이었다. 비록 느리고, 소박하지만, 나무들과 야생화들, 그리고 작은 서재로 조금씩 채워질 이 공간을 난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런 나의 모습을 또한 나는 사랑하게 듯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타인들에게 나눌 수 있길 환한 달을 보며 읊조려 보았다. 사랑으로 인해 지금 간에도 자책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조금은 덜 후회하며, 조금은 덜 아파하길 바라였다.

종결된 사랑은 있지만, 실패한 사랑은 없으니까. 요동치는 설렘과 아롱진 기쁨의 손을 놓치 못한 채, 가득찬 달빛에 기대어 잠을 청하였다.

참으로 다정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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