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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Mar 20. 2022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며칠 전, 일터 지인들과 소주를 한잔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낯선 이와의  만남을 술과 함께

시작하는 일은 설레임 호기심으로 채워지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세월의 흐름 앞에서 이제는 겁고,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겹겹이 쌓여있는 이해와

공감의 층위를 뛰어넘어, 취기에 뒤섞인 민낯을 

들어내어야 하였기에 두려움이 앞서는 이었다. 

그날의 밤은 낮의 봄을 집어삼켜 버렸고,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미약한 별빛은 밤의 아가리에서

꿈틀거릴 뿐이었고, 냉랭한 바람만이 붉은 눈을

부릅뜨고, 매섭게 나를 노려보았다. 도주할 곳을

찾았지만, 결국 책상 앞 뾰족한 빛줄기의 스탠드로

끌려가 심문을 당하였다. 도망치기 위해 글을 썼으나,

나에게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다며, 문장들은 나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너는 좋은 사람인가?'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쁜 생각도 하고, 욕망의 그늘에서 살아가기도 하며,

단지 표현을 자제하고, 조금의 망설임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단지 데카르트적인 완전한 이성에 의해 구성되어진 

사회적인 규범이나 제도에 의해 규정지어 진다면, 

아마도 나는 이혼을 하였고, 버티며 살아갈 뿐이

나쁜 사람으로 일 수 있겠다섬뜩한 칼날이

나의 목앞까지 드리워졌고, 목젖을 겨누었다.

사랑에 대하여 논할 자격을 말한다면, 데카르트적인

이성의 범위에서 나는 자격이 없는 지도 모르겠다. 

나의 불완전한 감정과 육체는 완벽한 이성을 통해 

통제되어야 할 대상이었고, 그렇게 존재의 이유가

허락되어졌다. 결국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문장에서 등뼈를 드러내며, 나는 도망쳐야 하였다.

니체를 나의 곁에 가까이 두는 이유는 어쩌면 그의

의지에 관한 철학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감성

영역이었기에, 이성의 프레임에서 잉태되어, 태어난

것들로는 감성이 살아가는 공간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랑에 대한 의지, 삶에 대한 의지를 

'영원회귀'전제하면서까지, 쫓아다니던 니체.

채찍을 맞고 있던 나귀를 부둥켜 안고서 미쳐가던

니체. 그런 니체를 나는 좋아하였고, 곁에 두었다.

감정에 대한 거리유지에 애쓰다 보니, 정서적 반응은

깜빡 거리는 형광등처럼 언제나 느린 편이었고, 

그것은 언제나 혼자있을 때 찾아와 나를 시하였다.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서 바등거리는 너저분한 마음과

슬픔들 깨물고서 걷다가 고여 있던 눈물의 제방이

나도 모르게 터지고야 말았다. 항상 뒤늦게 찾아온

눈물은 슬픔을 추적추적 부여잡았기에 마음이 스스로

고요해지기만을 하릴없이 기다려야만 하였다.

감정과 상흔을 오가던 담뱃불은 번뜩거렸고,

긴 수염같은 하얀 연기를 새까만 밤은 냉큼 삼켰다. 

좋은 사람이 아닌, 그렇지만 나쁜 사람도 아닌 나는 

술에 취한 채, 불을 끄고 누워서는 존재의 이유에 대해 서성거렸고, 짙고 어두운 천정은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에밀 아자르''자기 앞의 생'을

나는 다시 펼쳐야만 하였고, 힘을 주어 쥐었다.

자기 앞의 생은 빈약하고, 허접 내 생의 파편들이

시간의 무심함 앞에서 무참하게 흘러가던 시절, 

소중한 인연 '김'이 선물해주었고, 참으로 따듯하였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어둠 속에서 한줄기  별빛처럼 

다가와 내려 앉았었고, 두려움은 스스로 물러갔다.


나에게 놓여진 고행의 길, 내가 짊어져야 하는 나의

생은 무엇일까?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어지럽게

흩어진 발자국들과 먼지가 부셔져 내려앉은 책들만이

나의 시간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무엇하나 이룬것도

그 무엇도 되지 못한 나였지만, 이 책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그 무엇도 태생적으로 가진 것이 없었다.

이 책의 주인공 '모모'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이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라며, 물어보았다.

우리에게 던져주는 아니, 우리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는 여전히 나의 심장을 움켜

잡았다. 주인공인 열네살 모모는 창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예전에는 창녀였지만, 지금은 창녀의

아이들을 키우는 유태인 '로자' 아주머니와 함께 살아갔다. 이성의 시야로 들어오는 그들의 생은

비이성적인 것이었고, 비정상적인 형체를 하였다.

사회는 그들을 통제 내지는 최소한 소외라는 방식으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어린 모모의 유리알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지만,

모모는 순수하게 자신이 처한 조건에 대해 물기없이

이야기해 나갔다. 슬픔을 말하지 않았지만 슬펐고,

비정상을 말하였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어린 모모는 삶의 무거움과 난폭함 너무나 일찍

깨달아 버렸고, 눈물을 쌓아 만들어낸, 냉소를 통해서

무거움을 덜어내며, 하루 하루를 살아내었다.

비록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고, 배척당하며,

초라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였지만, 그들은 서로의 온기가 닿을 수 있음에 행복해 하며, 자기 앞에 놓인 생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갔다. 비록 모모는 엄마의 사랑도,

자신의 나이조차도 모르지만, 로자 아주머니로부터

사랑의 모습을 보고, 더듬으며 성장해 나갔다.


어느날 모모를 돌봐주던 로자 아주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를 보살피며,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자 애썼다. 아무리 나이가 들고, 병이

들어도 행복은 필요하다는 그의 믿음에 공감되었다.

그럼에도 포악한 생끝내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고, 결국 로자 아주머니는 모모 곁을 떠나게

되었다. 모모는 자신을 사랑해 준 로자 아주머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기에, 화장품으로

아주머니의 얼굴에 화장을 시키고, 그의 곁을 맴도는

기괴한 행동을 하였다. 소름이 돋을만큼 가슴 아픈

마지막 장면이, 나는 결코 불편하거나 공포스럽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고 싶은 한 인간의

간절함과 약한 자들의 처절함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모모는 외로움과 고독, 상실이라는 문을 열기에는 

너무나 순수하였고, 받아들이기에는 두려웠을 것이다.

간단하고 선명하게 보여지는 이야기지만, 결코 간단하지가 않았다. 어린 모모의 눈과 마음을 통한 이야기의 흐름은 간단함이 아닌 먹먹함을 우리에게 던져주며, 슬픈 결말로 우리를 안내하였지만,

그 끝엔 행복과 충만함이라는 미세한 빛으로

인도하였다. 어둠이 짙어질 수록 빛은 선명하였다.


내 앞에 놓인 소란스러운 에서 이 책은 내가 무엇을

향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사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의 사랑과 의지가 남아있는

이 곳에서, 작아 보이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은

그들로부터 서로를 살아가게 할 전지전능함을

나는 보았다. 누구에게나 자신 안에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밀어내 줄, 아니 최소한 함께 해 줄 그런 힘들

있었고, 나와 당신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어느날 식료품 가게 아주머니가 모모에게

달결을 하나 주었다. 모모에겐 달걀 하나가 살아갈

힘이 되었고, 삶이 되었다. 누구에겐 별것 아니고

사소한 것들 다른 이에겐 생을 바꿔버리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명징한 언어가 될 수 있었다. 달걀이라 읽고, 사랑이라 썼다.

'여섯 살인 모모는 자신의 생이 모두 달걀 하나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겨우 달걀 하나뿐이지만.'


로자 아주머니는 쓰러져 병상에 누워 있었고, 모모는

과자 한 조각도 먹지 않은 채, 꼼짝 않고 그녀 곁에

앉아 그녀를 지켰다. 모모에게 그녀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외로이 누워있지 않았음을 알게 되어서,

그녀가 안도와 평화를 얻길 바라였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자신의 고통과 슬픔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자신의 영혼을 확장하는 일일 것이다. 타인을 

사랑하기에 타인의 마음이 되어 보고,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 그걸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볼 수 

 있도록, 나는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우리를 갈라놓는 그 푸짐한 살 위에서도 심장이

 뛰는게 느껴졌다.'

'나는 달려가서 그녀를 껴안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똥오줌을 쌌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녀를 더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신 때문에 구역질 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그 사람이 멋지고, 훌륭해서가

아니었고, 오직 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름을 심장 한켠에 내어주고, 불러줄 때, 그 사람은

특별해지는 것이었고, 그 누구와도 대체가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랑에는 조건이라는 변수가

자리할 공간은 없었고, 계산이 개입되는 순간, 사랑은

거래로 치환되어 형태는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역겨운 냄새를 입고 있는 로자 아주머니를

아랑곳하지 않고, 끌어 안을 수 있는 모모의 힘에서 이성으로부터는 발현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만질 수

있었다. 이성으로 재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면,

생이 점멸하는 순간에도 후회없이, 행복하였다고

읊조릴 수 있을 듯 하였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기웃거리지 않고 곧장 로자 아줌마에게로 향했다.

 내게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로자 아줌마 곁에 앉아

 있고 싶다는 것. 적어도 그녀와 나는 같은 부류의

 똥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비록 사회로부터 멸시와 조롱, 배제의 대상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고, 체온을 나누며,

그렇게 각자 중요하고,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갔다.

슬픔과 좌절은 서로에게 기대어 극복의 대상이

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똥같은

들이었지만, 서로에게 그들은 빛나는 보석이었다.

삶은 그래도 살아볼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살아갈 힘과 사랑할 힘은 아무래도 같은 말인 듯 하다.

'이름을 불러준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

타인을 더욱 세밀하게 묘사하고, 섬세하게 기억하여 

타인이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게 끊임없이 일깨워 주고,

그를 그 답게 살아가게 해줄 수 있는 것.

그건 재력도, 명예도, 외모도, 아닌 타인으로부터 보게 

되는 자신에 대해 쏟아지는 관심과 따듯함일 것이다.


는 지금 가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핍과 상처를 동반한

몸부림으로 내가 가진 것을 은폐하며,

이해와 공감이라는 눈빛을 타인에게 더 많이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았고,

나 자신도 원망하지 않는다.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시도 속에서 결국엔 나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수 있음알고 있었다. 비록 사는 건

엉망이더라도,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끊임없이

시도하며, 도달하고 싶다. 나는 비록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온전히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며,

살아내고, 견딜 것이며, 나의 흠결은 그냥 그 자리에

둘 것이다. 그에 대한 날선 말들과 비난들은 거친

목구멍으로 삼켜내며, 소화시켜 버릴 것이다.

진심과 진실은 이성이 아닌 감성에서 자라날 것이고,

이해받지 못하는 일보다, 나의 감정을 잃어버리는

일이 두렵기에, 난 나의 감정을 존중할 것이다. 

이성의 눈을 빌려 조금은 머뭇거릴 줄도 알고,

못 본척하며 손을 거두는 일들도 있겠지만,

사랑과 신념에 대한 말들을 지켜나가고 싶다.

비록 좋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길을 잃어버렸을지라도

심연에 침잠해 있는 서럽거나 슬프거나, 아픈 것들을

끄집어 올려 볼품없는 문장으로 남겨둘 것이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는가?'

'사람은 사랑없이는 살 수 없다.' 감정은 모두가 다르기에 사랑은 다양모양으로 나타나 각자에게

자리할 것이다. 그 모습이 어떠하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보태는 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다양한 모습들의 사랑에 대하여 인정하고, 이해하고 싶다. 비록 이혼은 하였지만, 난 전 아내를 지금도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다. 사랑할 수 있어 행복하였고,

앞으로도 사랑하며, 살아낼 것이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만큼이나 나의 상실과 고통 또한 나의 문장으로

써내려 갈 것이다. 내가 알고있는 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하여 언제든 심장 한조각 내어줄 수 있도록

마음담아 쓰고,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을 키워야겠다.

덩어리가 되어 슬금슬금 기어온 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방문을 두드렸고, 겨울의 흔적을

온전히 지우지 못한 한기와 날선 바람은 다시 나의

창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대낮봄날다시금 

맞이하여야 기에, 그것들을 들이기에는 나의 방은 

분주하였고, 천정은 밝아지고 있었다.

겨울은 지루하였고, 봄은 더딘 듯하였지만,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고, 중심은 나였다.

난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나쁜 사람도 아니었지만,

조금 더 타인의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일 뿐이다.

죽어버린 로자 아주머니를 예쁘게 화장시키고, 곁에서

살아가던 모모를 단지 나는 안아주며 함께 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난, 괜찮은 사람이다.

 먹은 달빛에 기대어 잠을 청해본다. 이젠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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