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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Jan 04. 2022

당신을 만난 건, 아픔을 동반한 기적이었다.

젊은 날. 기억들의 습작.


시간은 영원했고, 우주는 무한하였다.

삶과 죽음은 하나였고, 인연은 이유가 있었으며,

두텁게 껴입은 윤회의 업은 벗을 수 없었다.

낮과 밤이 자리를 바꾸었고, 빛과 어둠은 반복되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들은 해야할 일을 하고 ,

단지 스스로의 존재를 유한성에 가둔건 사람들이었다.

죽음 또한 삶의 일부였고, 자연은 시간의 영원 속에서

그것들을 너그럽게 품어 내었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 때 인간은 살아가면서

 한번, 자연 앞에 고개 숙이고, 겸허하였다.

우주에서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인 인간이 만들어 낸

시계라는 것들만이 째깍거리며, 부지런히 돌고 돌아

어제와 오늘을 갈라놓고 다. 항상 그 자리였다.

시계는 새해의 첫날을 알려주었고, '한살' 이라는 무게를 나의 어깨에 얹어 주었으나, 무게라는 것은 

솜털만큼이나 미미해서, 우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제와 오늘의 태양이 다를리는 없었으나,

우주에서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인 나 또한,

분절된 시간에 의탁한 채 나름의 무지한 의식을

치루고자 하였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어제의 축복이 오늘의 후회가 될 것이고,

오늘의 후회가 내일의 기적이 되리라는 걸

이젠 잘 알면서도, 괜시리 다를 것 없는

새해의 첫날만온전히 기억하고 싶었다.

축복이 되었든, 후회가 되었든, 기쁨이 되었든

서럽게 사라져 가도록 흘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빈약하지만 그것들이 나의 삶이라 울부짖고 있었고,

서럽도록 안타까워서 놓을 수 없는 나였기 때문이다.

나와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또는 구해내길 바라는,

사라져 버릴 기억들과 가난한 문장들 속에서

나는 오늘도 기적을 찾아낼 것이다.


매년 그러하였발길이 가닿는 곳으로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의 하얀 '쌀'이와 함께,

사나겨울밤의 횡포에 쫓기듯 달렸다.

엄마와 아빠의 수다가 한기를 밀어내었지만,

압도적이고도, 거대한 겨울밤의 권위에

새해의 대낮이 구겨져 버릴까 애태우던 밤이었다.

올해의 시작에 대한 기억을 한쪽 구석에 걸어두고,

뽀송뽀송하게 말려두기 위해 우리는 남쪽 바다를 향해

발길을 향했다. 난, 남쪽의 바다가 좋았다.

약 400여년 전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켜낸 바다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동쪽의 바다는 검고 깊었으나, 황량했고 무거웠으며,

서쪽의 바다는 아름다웠으나, 가벼웠고 서러웠다.

남쪽의 바다는 화려하진 않았으나, 화사했 

따듯하였다. 동쪽의 바다는 삶의 무거운 짐을 나눈

가족과 함께 가보고 싶은 곳이었고,

서쪽 바다는 애틋한 연인과 함께 가고 싶은 바다였다.

남쪽의 바다는 위로와 위안을 품고 있었기에

홀로 가닿아도 쓸쓸하지 않아서 좋았다.

비록 혼자는 아니었지만, 남쪽의 바다는 옳았다.

결국 경남 고성의 앞바다에서 태양은 날 비추었다.

작은 섬들은 바다의 헛헛함을 다정하게 안아주었고,

만조와 간조는 미세하게 밀고 당기며, 울었지만

한결같은 마음을 지켜내었.

태양은 붉게 솟아 올랐고, 태양을 품은 바다는

금빛 윤슬을 낳았다. 새해의 대낮은 아름다웠지만,

서럽게 사라져갈 것이기에 주워 담아야 다.

여인의 손길이 된 바람은 부드럽게 쓸어주었고,

짠내가 섞인 공기는 달큰하였다.

갈매기는 파아란 하늘로 비상하였고, 이내 바다에

안착하여, 연약한 파도에 유유히 몸을 맡겼다.

하늘빛과 바다빛은 서로를 구분하지 못한

세상을 넘어왔고, 세상은 푸른빛을 반겼지만,

때론 울면서 삼켜내기도 하였다.

가득차 있던 바다는 자신을 조금씩 버리면서,

살아있는 것들에게 풍요로움내어 주었다.

바다가 뱉어낸 에는 거북손과 이름 모를 조개들, 그리고 해초들이 햇살 아래 반짝이며, 태어났다.

이 시절의 생명은 축복이라 할 수 있었기에

하나도 남김없이 눈에 넣어 담아오고 싶었다.

옅어짐과 선명함을 무수히 반복하며,

시간의 은율을 타는 겨울의 그들에게서 난 운이 좋게도

푸르디 푸른 그들의 축제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을 깎아낸 흙빛 암석들은 품위있 다시 태어나

지긋이 바다를 내려다 보았고,

바다는 수줍게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해녀들의 새해는 웃음 소리로 시작되었다.

온화한 햇살과 잔잔한 파도는 해녀들의 물질과 함께

사분의 삼박자의 왈츠를 추었다.

겨울의 시간은 차갑고 느리게 흘러 갈 뿐이었지만,

어제의 겨울은 매서웠고, 오늘의 겨울은 기적이었다.


일터 옥상에서 바라보는 일상 새해가 되었지만,

어제와 오늘은 아쉬움을 남기는 모습까지 같았다.

날카로운 바람은 공사 현장의 모래와 먼지를

희뿌옇게 뱉어내었고, 사람들은 질끈 눈을 감았다.

앰뷸런스의 다급한 소리는 도시의 찰나를 베어내었고, 빌딩 숲 사이를 길게 늘어진 차량의 행렬들은

초조하게 무료함을 이어붙이고 있었다.

'바벨탑'을 닮은 회색빛 건물의 번쩍거리는 창들과

종종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점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언제나 그러하듯 아찔하게 도시의 일상을 메웠다.

잡을 수도 놓아줄 수도 없는 가련한 말들이 

나를 스치거나, 스치지도 못한 숱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서러운 말들이 만들어낸

곁가지의 슬픔은 또다른 가지를 치고, 우울을 맺었다. 

그것을 응시하며, 먹어야만 했다.

슬픔과 아픔이 주하는 대낮은 쓰라렸지만,

삼켜야 했고, 고독과 외로움이 등을 맞댄

겨울의 밤은 두려웠지만, 견뎌야 했다. 

번쩍 거리는 헤드라이트 소란스러운 경적음만이

선이 되어가며, 짙은 어둠에 잡아먹혔다.

겨울밤의 권위가 나의 창을 다시 세차게 두드렸다.

스탠드 전등 아래 끌려가 펜을 힘주어 들었다.

겨울의 밤은 나의 창을 넘어서지 못 할 것이다.


'날마다 문을 여닫는 당신도 기적의 한 순간을

 지나친다. 기적은 사소함 이에 있다.

 사소해서 흘려보내기 쉬운 것들이 기적이다.

 문도 그렇다. 문이야 말로 누구나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이다.

 당신과 나도 서로의 문을 열었기에 마주서 있다.

 어떤 문을 열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 '정영민', '애틋한 사물들' 중. -


'기적의 문을 열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는

'정영민' 작가님의 말씀처럼,

기적은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들에 널려 있었고,

때론 문을 열어버린 것에 대한 후회가

문 앞에서 버젓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문을 열어낸만큼, 나의 세상과 행동의 크기는

그만큼 넓어졌고, 깊어졌다.

기적은 때로는 엄청난 후회를 동반하기도 하였지만,

희박한 기적들을 위해 문을 열어 젖힌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들의 찰나를

곰살맞매만지는 기술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비록 어제와 같은 오늘일지라도, 후회가 그림자처럼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용기일지라도, 말이다.

후회와 함께 찾아오는 기적일지라도

그것을 위해 난 오늘도 문을 열어 젖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까, 나는 두렵다.


2004년의 봄날이었다.

신림동 고시촌에도 화사한 봄이라는찾아왔고,

다짐을 신은 발걸음들이 묵직하게 오고 갔다.

좁쌀만한 골목길에도 봄의 빛은 공평하게 스며들었고,

어두침침했던 두터운 점퍼들은 사라져갔다.

저 멀리 관악산에서도, 신림동의 거리에서도,

학생들의 얼굴에서도 봄을 담은 색깔들이 펼쳐졌다.

그해 3월의 나는 아직 정리되지 못한 것들과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 사이에 끼인 채,

가장 화려하게 웃고 있던, 불안을 마주한 시절이었다.

어깨 위에 걸터앉아 히죽거리는 불안과 함께

까끌거리는 밥을 먹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그에게 숱한 도전과 절망의 나날들이 이어졌고,

절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난 밥을 먹다 눈을 감았고, 목구멍에 닿은 쌀알들은

내려가지도, 튀어 나오지도 못한 채 입안에 머물렀다.

고시원에서는 그의 탄핵에 대한 말들로 소란스러웠고,

흐릿한 마침표인지, 줄임표인지도 모를 말들이

형태도 없이 나타났다가, 의미없이 사라져 갔다.

제정헌법 60여년만에 등장한 헌정 초유의 사태로 

신림동은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흥분들로

가득차 있었다. 세상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정치, 행정, 경제, 국제 정세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예상문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의 아픔은 그렇게나 옅고, 가벼운 것이었다.

나 또한 딛고있는 현실이 눈물을 쉽게도 닦아주었고, 

그런 내가 경멸스러워 밤을 타고 울었다.

그해 7월에 있었던 5일간의 2차 시험 중

그의 탄핵에 대한 문제는 단 하나도 출제되지 않았다.


아마'노무현' 대통령은 그가 열어낸 문들에 대해 

무엇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자살이라는 선택조차도 참담하고 부조리한 삶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매순간 다정하게 애태우며 시간을 다루었고,

문을 있는 힘껏 밀고 들어가 기적을 쏘아 올렸다. 

기적의 이면에 찾아든 슬픔과 좌절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지만, 그는 다시 기적을 엮어 내었다.

그는 기적을 마주하기 위해 용기를 내었고,

기습적인 슬픔과 좌절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난 그를 존경했고, 닮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아니고, 

그 무엇도 되지 못한 내가 되어버렸다.


그해 난 결국 2차 시험의 벽을 넘어서못하였고,

3학년으로 복학한 후 학업을 병행하며 치룬,

2005년의 2차 시험을 통과하였다. 기적이었다.

3차 면접시험만이 남아 있었으나,

면접시험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길었던 터널의 끝에 가닿았다 생각하였다.

결국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고, 나의 자만이었다.

난, 면접시험에서 불합격하였고, 길을 잃었다.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말은 이어지지 못한 채로

사라져 갔고, 엄마와 아빠는 허공에 눈동자를

걸어두고, 가는 한숨을 길게 었다.

우리를 둘러싼 공기는 옅었지만, 무거웠기에

그것들을 담아내기가 버거웠다.

기대가 묵직했기에 머리채를 잡아끌고 들어가

좌절의 깊이와 속도도 끝을 알 수가 없었다.

깊었고, 어두웠다. 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후회들이 뒤섞여,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토해낸

눈물들은 염분이 진했고, 몇날 며칠을 먹었.

미안함과 죄스러움은 그 시절 당연히 했어야 할

방황 조차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절망과 울분에 짓눌려 길을 잃고 헤매일 때,

전 아내이자, 지금의 류동지가 손을 내밀었다.

'욱아. 해러 가자.'그의 목소리는

새해의 태양만큼이나 거대하였고, 따듯하였다.

가둬 두었던 슬픔이 발악을 하였다.

문을 열었고, 하얗고 가느다란 그의 손을 잡았다.

가느다란 손이 나를 지탱해 주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기적이었고, 운명이었다.

이후 나의 생에 어마어마한 쓰나미를 몰고 올

투명한 그의 손을 그렇게 손에 쥐었다.

기어 변속기를 잡은 그의 손에 나의 손을 가지런히

포개어 얹었다. 그의 푸른 정맥이 유난히도 빛이 났다.

그는 말없이 웃어 주었고,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열어젖힌 문이 시 살아가고, 견뎌내게 하였다.

용기에 날개를 달아, 난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2006년의 붉은 태양을 난 그와 함께 보았고,

혼자가 된 이후로도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곳곳을 찾아 다니며, 기억의 조각들을 주워 담았다.

그는 나를 스쳤고, 나는 끝내 그를 스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날의 기적이 비록 시간이 흘러

아픔을 동반하게 되었지만, 그 시절을 온전히

견뎌낼 수 있  그와의 인연에 지금도 감사한다. 


어쩌면, 지금도 애쓰며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가

서로에겐 간절하고도 애타는 기적일 것이다. 

비록 인연이라는 실타래에 아픔이 꼬리처럼 따라올지라도, 난 아직 기적을 믿는다.

우주에서 먼지만한 우리들이, 시간의 영원 속에서

찰나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기적처럼 일으켜 내

그 특별한 인연들을 말이다.

소중한 ''새해를 맞이해 특별함을 가득 담아

'칼 세이건' '코스모스'전해왔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문은 열릴 것이고, 난 다시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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