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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Dec 30. 2021

나의 이름을 불러준 당신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초라하지만, 아름다울 기억들에 대한 습작.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지난 밤은 요란스럽게

울어 대었고, 반토막 나있던 서러운 달은

별과 함께 검은 밤을 견뎌 내었다.

난, 그런 밤을 마른 침과 함께 삼켜야 했다.

반가웠다. 잠을 떼어내고 길어지는 하품의 끝에서, 마주한 나의 안녕한 몸과 마음이 참으로 반가웠다.

껌뻑거리는 내 눈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단정하게 내려 앉았기에 고마웠고,

줄기를 따라 반짝거리는 책의 입자들이 반가웠다.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겠는 아롱진 기쁨을 입으며

출근 준비를 하였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하얀 쌀을 닮아 '쌀'이라 이름 지어준

나의 차와 함께 출근길에 올랐다.

마알간 아침을 온전히 갖고 싶었다.

운전대 위의 손 등을 비추는 햇살이 애틋하였다.

차 안을 가득 채워주는 '심수봉'

'백만송이 장미' 타고서, ''이와 난 달렸다.

그의 목소리는 늘 애잔하고, 간절하였다.

햇살을 품은 길은 단정하게 흘렀고,

장미를 품은 마음은 다정하게 흥얼거렸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지난 1년의 시간은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하였다.

순간 순간을 사랑한 조각들을 끌어모아,

다가오는 일년도 행복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에게 화살기도를 쏘아 올렸다.


오랜만에 물길로 마실을 나온 차창 밖

청둥오리 가족들 사랑스러웠고,

혼자이백로에게 짝이 생겨 반가웠다.

숨 죽일 줄 모르던 서슬퍼런 한기의 위세는

어느새 꿈치 뒤로 숨어 들었고, 목덜미를 후려치던

매서운 바람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겨울의 대낮은 눈부신 햇살의 품에서

가슴을 열었고, 그의 날숨은 온화하였다.

참으로 반가웠다. 반짝거리며 다가와준

수많은 일상과 세상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고마워서 내 어깨에 내려앉은 햇살을 쓰다듬었다.

하늘은 세상을 파란 빛으로 감싸 안았고,

사람들의 단단한 발걸음에 대지는 견고해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옅은 미소는 화사했고,

온기가  끝을 간지럽히는 파란색 캔 커피는

따스하게 살갗을 타고, 스며 들었다.

편의점 카운터에서 그는 컵 라면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고, 거친 아침 식사인 듯 보였다.

그의 컵 라면은 하얗고 가느다란 김을 렸지만,

그의 시간은 물을 붓고, 기다리는 중인 듯 보였다.

그의 컵 라면이 내년에는 따듯한 밥과 국이 되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부드러운 아침 식사가 되길

바라였다. 캔 커피 하나를 그에게 건네 주었다.


 한해도 시작이 있었기에 끝이 보였다.

삶과 일상의 씨줄과 날줄들을 부지런히 엮어왔,

한해 동안 보라빛 스웨터 한벌은 지어 입었다.

비록 잘 지어진 스웨터는 아닐지라도,

구멍이 숭숭 뚫린 허름것일지라도,

그래도 난 한겹을 더 걸쳤고, 그만큼 더 단단해졌다.

올해가 시작되던 그날, 나는 양산 '통도사' 있었다.

산 언저리는 붉게 물들어 갔고, 태양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선명함은 형태를 압도하였다.

그날의 태양과 오늘의 그것같은 모습이었지만,

1년 전의 그것은 명징뜨거움이 있었으며,

가슴 한켠이 시린 것이었다.

어스름한 새벽녘의 적요함에 몸을 맡긴 채,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탑을 돌고 았다.

탑에는 숱한 욕망과 슬픔들의 흔적이 꿈틀거렸고,

탑은 그것들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닳고, 갈린 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담고 있었으나,

, 나의 허약한 몸과 허기진 영혼에 기도를 하였다.

몸이 아플 때는 내 마음이  견뎌주길,

마음이 쓰라릴 때는 내 몸이 잘 버텨주길, 기도하였다.

그리고 그런 내 몸과 마음이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기를, 쓸모가 다 할 때까지,

온전히 소진할 수 있기를, 탑을 응시하며, 소망하였다.

붉은 태양빛은 흐릿하고, 냉랭하기만 했던 허공을 

서서히 라내었, 하늘을 자신의 빛으로

물들여 갔다. 그건 나의 하늘이었다.

그것은 희망이었고, 반가움과 기대감이었다.

2021년의 장엄한 기대감은 그렇게

한지에 스며드는 물이 되어 번져갔다.

기우뚱거리며 가는 배처럼, 2021년 또한 흔들렸지만, 

나아갔고, 결국 살아 내었다. 그런 내가 고마웠다.


돌이켜보면 2021년은 까마득했던 슬픔과 절망의,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의 부침이

연속되던 나날이었고, 덕분에 나는 깊어져 갔다.

불혹이었지만, 다시금 꿈이라는 매혹을 움켜 쥐었고,

사랑을 배워갔다. 가난하고 거친 문장일지라도

진심을 담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눌러 썼다.

비록 아무것도 아니였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

나였지만, 단 한사람에게 만이라도 가닿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수 있길 욕심내었다.

글은 나를 구하고, 타인을 구하고 싶은

욕망이 되었고, 황량한 영혼에 씨앗을 뿌렸다.

비록 허름한 영혼이었지만 꿈을 꾸었고,

휘청거리며, 기어갈지라도 한발 한발 나아갔다.

'글쓰는 동네책방 할아버지'라는 마흔의 꿈은

길이 어떻게 생겨 먹었든 나를 나아가게 하였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이

그 길에서 결국 나를 살게 하였다.

몇번의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다 '브런치 작가'

허락되어졌고, 내가 누군가에게 받아 들여졌던

그날은 어지럽던 길을 맑게 닦아낸 날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다는 것은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었음을 알게 되는 이었다.

고마움과 설레임달큰한 공기가 나를 물들였고,

내 생에 얼마 안되는 자부심이 대지를 흘렀다.

그날의 난, 일터 옥상에 뛰어 올라가 방방 뛰었었다.

아니, 나는 그 순간 하늘을 날아 먼 곳을 바라보았었다.

택시 기사님이 '혹시 브런치 작가님세요?' 라고

나에게 물어보던 그날은 난 달과 함께 춤을 추었었고,

10월의 달빛 아래를 그렇게 달렸었다.

달은 아름다웠고, 기사님의 목소리는 고마웠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분들의 달필로 태어난 글들과

나의 시선이 자리했던 문장들은

매순간 반짝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글들과 문장들은 나의 심장 한켠을 채워 나갔고, 심장에 날개 하나가 삐죽히 솟아났다.

나의 남아 있는 나날에 갖다바칠

고맙고도 고일이, 그렇게 올해 나를 찾아주었다.


올해 승진이라는 걸 하였고, 지금의 사랑하는

인사팀원들을 생의 결에 새겨 넣었다.

마른 나무토막문장들을 정성스럽게 각인하듯,

그들은 그렇자리하였고, 깊어져 갔다.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일상은 글을 읽는 일 만큼이나

풍요로운 것임을 이젠 잘 알고 있다.

승진이라는 부산물보다 인연이라는 선물이 고마웠다.

그들에게서 태어난 수많은 격려와 응원의 말들은

내 안에 머물며,  커진 용기를 잉태하였다.

무색무취의 일상을 색칠해 주었던

그들의 눈빛과 손길들은 내 뺨을 스치며,

즐거움도, 재미도, 기쁨도 덧칠해 주었다.

날 불러준 그들의 목소리

새삼 세상이 다정하게 다가왔다.

점심먹고, 팀원들과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시시껄렁한 농담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공간에서 달콤하고도 순한 냄새가 맡아졌다. 

그들이 고마웠고, 반가웠다.


겨울밤의 권위가 다시 세상을 집어 삼켰다.

야근을 하고 있었고,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아들. 밥은 먹었나?' 언제나 엄마의 첫 문장은

보잘  없었지만, 묵직한 것이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늙었다는 생각이 찰나를 스쳤다.

무심한 시간의 바람이 그의 목소리를 깍아내고,

닳게 한 듯 하였다. 한기가 다시 세상을 지배하

혼자 사는 아들이 괜시리 안쓰러우신 듯 하였다.

엄마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머리가

굳어 간다고 하였, 돋보기를 코에 얹혀서야

내가 쓴 글을 더듬더듬 읽을 수 있다고 하였다.

마음이 아렸다. 주말에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빛이 사위고 어둠이 그림자를 삼켜버렸다.

겨울의 밤길을 재촉하며, 퇴근을 하였다.

엄마는 다녀갔고, 곳곳에 엄마를 걸어두고 갔다.

엄마는 언제나 고마웠고, 반가운 당신이었다.

나에게 찬을 만들려고 시장에도 다녀왔다더니

냉장고에 시장이 들어 앉았다.

무해한 따스함함께 북적였다.

엄마의 곰국과 김장 김치는 언제나 옳았고,

겨울밤의 스산함을 마알간 곰국이 밀어내었다.

아들이 바쁠까봐, 엄마는 소란스럽게 다녀갔고,

우렁각시 마냥 조용히 사라졌다.

서럽게 잊혀져버린 그와의 기억만큼이나,

만들어 보지도 못한 추억들이 애처롭게 다가왔다.

사는 일은 지금도, 앞으로도 녹록지 않을 것이지만,

늦기전에, 잃어버린 것들에 절망하기 전에,

그와의 시간을 향해야겠다.

추억의 대가에 무거운 값을 치루게 될까 두렵다.

그 추억을 갖지 못한 값을 지불하기엔

너무나도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도 고마운 이름을 가진 자,

엄마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어리숙한 계획을 만들어 왔.

시간이 지나면서  계획이라는 것은

이리저리 오리고, 이어 붙이다 빛이 바래졌고,

결국 쓰레기통 어딘가에서 나뒹굴곤 했었다.

그리고 다시 새해를 맞이하였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삶이 계획한대로,

다짐한대로 살아진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난,  삶의 털 끝 하나 건드릴 수도,

꺾어서 가질 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소중한 매순간을 포착하고, 간직하여야겠다.

하지만 제 멋대로인 삶일지라도

그것을 끌어안고, 살아내는 이들의 목덜미 사이에서는

언제나 숭고한 빛줄기가 비집고 흘러나왔다. 

가련하지만, 소중존재인 우리들이

서로를 불러주고, 서로의 주변을 돌면서 태어난,

삶이 양보해 윤슬 같은 빛이 말이다.


불현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았던

'이해준' 감독의 '김씨 표류기'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카드 빚과 떠나버린 사랑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던

남자 김씨가 한강의 밤섬에서 홀로 살아갔다.

여자 김씨는 자신만세계갖힌 채,

남자 김씨를 관찰하였다.

그는 남자 김씨가 모래사장에 적은 'HELP' 에

화답하였고,  남자 김씨는 'HELLO'가 되었다.

남자 씨는 결국 밤섬에서도 쫒겨나게 되었지만,

여자 김씨가 그를 찾아갔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자와 세상을 버린 자가 만났다.

남자 씨가 타고 있는 버스가 민방위 훈련 사이렌으로

멈추었고, 그 버스에 여자 김씨는 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알아 보았다.

민방위 해제 사이렌이 울리며, 그들이 탄 버스는 

휘청이며, 출발하였고, 그들 둘은 그렇게

서로가 흔들리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영화는 끝이 다.

휘청거리면서 목적지까지 달려가버스처럼

우리의 삶도 수도 없이 흔들리고 아프겠지만,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서로의 마음을 채워 주거나,

마음을 보태어 준다면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넘어져도 일으켜 세워 줄 서로가 있기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겠다. 우주를 통틀어

유일한 존재들인 우리가 서로의 곁에 그렇게 다.


한기와 날 선 바람이 다시 창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겨울의 한기를 기억의 온기가

덮어주는 밤이다. 봄을 품은 벚꽃을 떠올리며,

문장을 오늘도 이어간다.

아무것도 아니고, 변변치 않은 이 글이

우리가 지나왔지만, 잃어버린 흔적들을

검은 바다의 밑바닥에서 데려오길 바래본다.

그것들오랜동안 우리들의 가슴 한켠에 남아

2021년의 행복함으로 기억될 것이고,

다가오는 2022년의 밑천 같은 것이 되길 희망한다.

2021년을 잘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이름을 불러준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2년을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는 ,

또한, 여전히 그들이 그 자리에서 우리를

불러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문장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내가 살아낼 수 있었던 건 당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내었고, 잘 견뎌내었다.

그런데. 왜 눈물이 흐르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짠맛이 나지 않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올해는 이것으로 되었다.

다가오는 2022년도 우리 함께 반갑게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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