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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Nov 13. 2021

남겨진 나날과 남아 있는 나날.

초라하지만, 아름다울 기억들에 대한 습작.


목덜미를 휘어잡는 날카로운 한기를 견뎌가며,

숙직을 해서인지 며칠째 몸의 연결 지점들에서

삐걱삐걱 잡음이 흘러 나왔다. 이런 날은 책을 읽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연무처럼 흩어지다 사라져갔.

텅빈 방에  홀로 앉아 책을  가끔 천정을 보며,

들어주는 이가 없는 말을  때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텅빈 거리를 홀로 걸을 때면,

자꾸만 힐끗힐끗 뒤돌아 보게 되었다. 무엇이 그리

안타까운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나도 알 수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마흔통'을 나도 비껴가지 못 한 건지도

모르겠다. 마흔은 처음이었고, 마흔에 나는,

그렇게 홀로 서성거렸다. 손에 든 고장난 나침반과 

시계 바늘만이 비틀비틀 거리며, 가야할 곳도 모른 채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움직일 뿐이었다.

'니체'  "40대는 모든 것이 정지된 연령이다.

바람은 더 이상 그를 움직일 수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밝은 하늘이 그의 수확을 돕는다. 40대는 한마디로

인생의 가을이라고 볼 수 있다." , 말했다지만,

 아직도 억새처럼 흔들렸고, 뒷덜미를 스쳐가는

바람의 속삭임에도 응답하여만 하였다.

씨앗을 뿌리고 뿌리며, 이 씨앗이 과실보다는

어떤 꽃을 피울지가 더 궁금한 나였다.

대책없는 호기심과 감수성이 나를 어디로 인도할는지,

설레기도 하고, 때론 두렵기도 하였지만,

, 그렇게 마흔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고되게 끓이고, 가져다 준 뽀얀 국물 위로

누런 살코기와 연녹의 대파가 둥둥 떠 있는 곰국을 데웠다. 방안 가득 하얀 김과 구수한 냄새로 채워졌다.

입안 가득 깊은 맛이 마음과 몸을 평온하게 해주었고,

내게 남아 있는 나날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불혹'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니, 국가에서 친절하게도

'생에 전환기 건강검진'받으라며 안내해 주었다.

내 마음을 보살피기에도 힘이 부쳐 왔기에 특별히

내 몸을 아껴준 적은 없었다. 미안해! 나의 몸아!

하루 반갑 이상의 담배, 반복되는 야근의 밤, 사람들의

온기가 좋아서, 사람들의 향기를 쫓아서, 마다 않던

자리들,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의 소화기관들, 

특별한 운동을 지도 않은, 살이 찌지도 않는, 

업그레이드 제로인 나의 . 무엇나 긍정의 결과를

바랄만한 변수를 찾기가 요원하였다.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을 안고서, 난 그렇게 마흔의

의식을 치루기 위하여 병원을 방문하다.

내시경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얼마 후,

의사 선샘님으로부터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병원을 방문해 달라는 통첩을 받았다.

최후 통첩은 아니길 바라며, 초조함에 쌓인 채 달려갔다. 달려가는 길이 벼랑길이라도 되는 듯,

차량들의 섬광과 함께 아득하고도, 천천히 다가왔다. 


초음파 검사에서 갑상선에 2mm혹이 자신의 집인냥

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정밀검사를 받아보는게

좋겠다는 의사의 권유는 버겁기만하였고,

수많은 생각들과  두려움, 그리고 회한이 밀려왔다.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도,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

애쓸 것도 없다 여겨오던 나의 삶이 그제서야 

애틋해져서는 혹시라도 무너져 내릴까봐 심장이

뚝뚝 떨어져 내리 그런 날이었다.

날의 나는, 단지 별탈 없는 몸에, 혼탁하지 않은

한 마음만 나에게 허락되어 준다면, 그 무엇도

바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욕심을 내었었다.

그날은 햇살 아래 놓인 하얀 식탁보 같은 날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이 얼마나 큰 욕심이었는지를,

얼마나 소박하지 않은지를 이젠 잘 알고 있다.

발에 툭툭차며, 함부로 대하던 나의 일상이 무너져 

리거나, 악한 삶에 빼앗길까봐 그제서야

간절해지는, 거대한 불손함과 편협함에 몸서리를 

다. 다행스럽게도 그 혹은 내가 생의 셔터를 닫을 때,

함께 조명을 꺼주면 되는 간판 정도라 하였다.

그러자 일상의 공허함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고, 

감사할 줄 모르는 오만함이 손짓하였다.

마흔이지만, 난 아직 멀었겠다.

부디 내게 허락되어진 남아 있는 나날이 내가 조금 

배우고, 조금은 깨달을 수 있는, 조금은 충분한

시간이길 조심스레 욕심을 내었다. 난. 멀었다.


주말을 앞두고, 뜻밖의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 P가 별일 없으면, 나에게 시간을 빌려주겠다며,

너스레를 부렸다. 그가 내민 뜻밖의 선물에 새삼

일상이 다정하게 다가왔다.  안에 그와의 추억이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나의 남아 있는 나날은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의 따듯함을

부여잡았, 가을의 끝자락을 달려 보았다.

만추를 지난 들녘에 석양의 아름다운 붉은빛이

섬세하게도 스며들었다. 달리는 차안에서 문득,

'가즈오 이시구로'의 황금같은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이 지금의 풍경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달큼한 향기가 차안을 흘렀다.


'남아 있는 나날'은 '달링턴 홀'의 집사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가 그곳을 인수한 새 주인 '러데이'의

배려로 사랑했던 여인인 '켄턴' 양을 만나기 위해

6일간의 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책은 스티븐스가 여행을 하면서, 제1차 및 2차

세계대전의 사이에서 겪었던 자신의 긍지 높은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상황과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스티븐스는 30여년간 '달링턴' 경을 모시며, 위대한

집사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품위를 지키면서 

전문가적인 실존을 증명하듯 살아갔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인간적 실존 또는 품위는 

전문가적 실존을 위해 억제되어 하는 하찮은 무엇에

불과하였다. 흠잡을 데 없는 하녀 둘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해고하라는 주인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였고,

달링턴 홀에서 열린 회담을 위해 아버지의 임종조차 

지키지  않았으며, 동료 켄턴 양과의 사랑의 감정

억누르고,  모른, 못본척해서는, 결국 그녀를

떠나보내었다. 그는 집사들의 모임인 '헤이스

소사이어티' 회원답게 집사로서의 품위에 대하여 

끊임없이 설명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었던

달링턴 경이 세계를 평화와 선으로 인도하는 중심에

있다고 굳게 믿으며, 이를 보필하는 자신 또한

세상의 중심에서 크나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긍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주인은 어리숙하고,

인자하기만, '나치 지지자'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어리숙한 주인이 나치에게 이용당하고 있으니,

집사로써 이를 방관하지 말라는 '커디널'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스티븐스는 맹목적인 충성심으로 이를

묵인하였다. 결국 달링턴 경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고, 미국인 패러데이 경이 일괄 거래에

낀 한 품목으로서 저택과 스티븐스를 인수하게

되었다. 그는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 내지

합리화의 헌정을 통해 현재를 살아갔다.

한편, 스티븐스는 불확실하지만, 사랑의 감정을 

느꼈었던 켄턴 양을 생각하면서,

'그때 내가 그러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회한을 갖고,

그녀와 조우하지만, 함께 일할 동료라는 의미,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은 채, 그녀를 대하게 되었고,

결국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끝나게 되었다.

스티븐스는 여행 마지막 날 황혼녘아래에 앉아

새로운 주인을 위해 부족한 농담 실력을 늘리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듯, 그렇게 여운을 남기며,

이 글은 흐릿한 줄임표를 찍었다.


인생의 황혼녘에서야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알아갈 수 있는 약간의 행운을 

쥐어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티븐스가 젊은 날에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이 비록 허망하고, 처연하게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지만, 남아 있는 나날에는

 더 사랑과 우정이 그의 삶에 스며들거라는 기대를

조금은 가져보았다. 새 주인을 위해 농담을 배우려는

그의 노력은 문가적 품위와 일이 접촉하는

점과 달리 사람과 사람이 이어질 관계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에, 그의 남은 시간이 어쩌면 조금은

따듯하고, 조금은 충만해질 수 있기를 바래보았다.

내가 걸어온 시간들을 스티븐스처럼 돌아보았다.

나의 과보가 무엇인지, 내 윤회의 바퀴가 앞으로

어디를 향해 굴러갈지 선명하진 않지만,

이대로라면, 안식을 구하긴 아무래도 글러먹었겠다.

회한과 아쉬움만이 가득 남아 기억이 소멸하는

순간까지도 자책하며, 스스로를 업수이 여길지도

모르겠다. 내게 남아 있는 나날은 얼마나 될까?

가뭇없이 사라지는 나날들 속에서 생의 포악함과

무료함이 서로의 자리를 넘나드는 현재를 살아내는

일만으로도 늘 혼란스럽고, 힘에 부쳤다.

별탈없이 지낸 하루와 뜻밖의 소소한 행복이 주어지는

일상이 있기에,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하루와

공허함의 쓰나미가 밀려오는 일상을 이겨낼 수 있

용기를 오늘도 내어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동안 숱하게 겪어온 생의 농락과 비웃음에

비추어 보면, 사실 남아 있는 나날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단지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야

그것이 소중했음을 알기에, 내 앞에 놓여진

매 순간순간들이 소중하게 지켜야 할

'남아 있는 나날' 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단지 숨만 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나날 뭘 하고 싶은가 인지도 모르겠다.

난 사랑하고 싶다. 내 삶을, 그리고 나의 생에 새겨진

수많은 타인과의 인연을 말이다. 기억이 점멸하고,

생이 소멸하는 그날까지도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내가 되길 간절히 바래보았다.

'초인을 향해 날아가는 한발의 화살'.

'니체'의 말처럼 말이다.


얼마 내가 스마트 폰으로 틈틈히 글을 쓴다 하니,

친구 L이 '손가락 안 아프나?' 하며, 동그래진 눈에

정적을 가득 담은 적이 있었다. 나의 안쓰러움에 그는

마음이 많이 쓰였나 보다.

'강작가님, 감정이 정화되는 따뜻한 글귀

 마니마니 써주세요.'라며, 직접 그린 예쁜 카드와

정성스레 포장한 휴대용 키보드를 건네 주었고,

나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불가해한 기쁨은 어쩌면 사랑받는 기쁨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겠다. 빈약한 나의 글에,

한심한 나의 쓸모에, 손톱달 같은 눈으로 웃어주며,

노오란 바람개비처럼 손 흔들고, 화답해주는

그들이 있기에, 오늘도 난 꾹꾹 눌러, 마음담아 써본다.

마흔은 처음이었지만, 마음은 넘쳐흘렀다.


창 밖 베어물린 달은 미약하게 넘어오고 있었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선명해져 갈 것이다. 달에게 마음

하나 전해보았고, 그는 반짝이며 향기를 전하였다.

그가 건넨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춤을 추었다.

사분의 삼박자 왈츠에 맞춰 내 심장도 춤을 추었다.

엔터키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좋아서. 아주 많이 좋아서.  그런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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