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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서재 강현욱 Dec 25. 2021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은, 당신의 눈빛이었다.

젊은 날. 기억들의 습작.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출근을 하였다.

곧 크리스마스이지만, 도시가 내뱉은 적막함이

크리스마스를 밀어내고 있었다.

짙어진 겨울의 밤은 옅어진 겨울의 아침을 비웃었다.

희뿌연 아침은 앙상나뭇가지에 걸려,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그렇게 서성거렸다.

거리는 스산했고, 나목들만버거운 일상의 시작을 힘겹게 맞이하고 있었다.

나목들에 걸린 크리스마스 전구들은

빛을 잃고, 바람에 흔들리며, 아침을 어지럽혔다.

중대백로 한마리가 물길 중간에서

점이 되어버린 채, 멈추어 있었고,

겨울의 물길은 그저 까맣게 흘러가는 선이 되어

그를 지워내있었다.


임대적혀 있는 굳게 닫힌 회색빛 셔터들이

며칠 사이에 거리를 더욱 워갔다.

지금의 황량한 시절은 공간들을 점거해 나갔고,

좌절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그곳들들어 앉혔다.

사람들은 이를 꽉 깨물었고, 닫아버린 입 안에서

일상의 곰팡이가 한숨이 되어 피어 올랐다.

희망은 절망이 되었, 의욕은 오욕이 되어가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도 살아보겠다고,

오늘도 꾸역꾸역 출근이라는  있었다.

직장이 있어 행이란 생각이 찰나를 스쳐 지나갔고,

그런 내가 메스꺼웠다. 무심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서 멈춰 버리기라도 한 듯,

멀리서 휠체어를 힘겹게 밀며,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왜소한 모습이 보였다.

차가운 아스팔트는 그의 발걸음을 얼려 잡았고,

하늘은 그를 무표정하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거리는 어느새 좁혀졌고, 훨체어에 앉아 있는 사내를

알아볼 수 었다. 구부정한 모습의 사내는 

할아버지의 아들보였고, 장애가 있었다.

아버지는 마스크를 잠시 벗고는 땀을 닦았고,

서로가 괜찮은지 서로를 살폈다.

그들은 그렇게 한기 속을 뜨겁게 헤치,

서로의 온기에 의지해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었다.

걸을 수 있어 다행이라생각이 나의 머리를

뚫었고, 그런 내가 역겨웠다.

타인의 아픔을 바라보며, 내뱉는 다행은

너무나 경멸스러운 말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또 눈을 감아야 했다.

그들은 함께 다시 나아갔고,

난 홀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들은 둘이었기에 길을 잃지 않을 보였지만,

인생의 어디즈음에서 길을 잃어버린 듯 하였다.

무지개 불빛의 크리스마스는 나를 비껴나 하나된

그들의 그림자를 따스하게 내리 쪼이고 있었다. 애틋한 그들의 일상은 숭고하였다.

그들이 가는 길을 부디 축복하여 주시길 기도했고, 그들이 운명을 욕심내길 바래 보았다.

아침의 햇살은 그렇게 조금씩 환해지고 있었고,

크리스마스가, 그래서 조금은 만져질 수 있었다.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그들의 눈빛이었다.


인사 기간이기에 나의 일터는 분주했고,

친애하는 팀원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다정하게 일을 대하고, 만졌다.

오늘도 타인의 말들을 주워 담아야 했다.

슬픔과 욕망의 말들이 오늘무차별적으로

나를 찾아들었, 그것들을 담아내기에는

한평도 안되는 방 한칸의 마음은 좁고도, 좁았다.

누군가가 놓여진 조건의 처연함들은 숱한 말들을

쏟아내고 사라져 갔지만, 내 안에서 살아남아 갇힌 채, 

그들끼리 부딪히며, 곪아 갔고, 쓰라렸다.

겨울의  밝았으나, 그들의 슬픔과 욕망들을

걸어두고 말리기에는 연약했다.

마음이 쳤거나, 몸이 병든 사람들에게 대낮은

쓸모도 없는 슬픔의 선명함만을 직시하게 하였다.

그들의 슬픔은 무거웠고, 때론 버거웠기에

나의 마음도 나뭇잎이 되어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나의 무기력함과 허접함

거울에 비춰 주었고, 난 독사과라도 먹고 싶었다.

독사과는 아쉬웠지만, 담배 꽁초와 믹스 커피의

잔해만은 오늘도 쌓여갔다.

크리스마스의 무해한 기쁨이 그들의 현실을 잘라내고,

머리맡에 단정하게 놓여지길 희망하였다.


오늘도 겨울의 밤은 어김없이 세상을 지배하였,

크리스마스의 도전은 위태로웠다.

불이 꺼진 도시의 밤은 현실을 견뎌내기에도

힘에 부쳤기에, 크리스마스 이브는 의지가지 없이

허공에 맴돌다 사라지고 있었다.

집에 들어와 얼마 남지않은 발렌타인 17년산을

병째 들이켰고, 찰랑거리는 황금빛 술은

전등빛 아래로 펜을 끌어다 놓고 그를 취조하였다.

18년 전 오늘의 나에게  지냈냐며 말을 걸었다.

그렇다며, 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나에게 대답했다.

이제야 자신을 찾는 이유가 뭐냐고

어둠 속에서 그가 나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라 여겼던 너의 서러웠던 시간이,

이제야 소중하게 여겨져 찾아왔다 말했다.

그리고 덮어두고, 지워버린 나를 용서해 달라 했다.

그는 나를 안아주었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 시절로 나의 시선을 옮겼다.

 삶의 결에 무거운 인연을 각인시켰던 그날에서.

펜이 멈췄고, 문장은 흔들렸다.


18년 전의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신림동에도 크리스마스라는 인류 보편적인

휴식의 날이 었고, 신림동은 멈추었다.

독서실을 빠져나와 신림동의 사거리 한복판에 서

쓸쓸함에게 안녕을 고하고 싶었으나,

그는 나의 이른 작별을 외면하였다.

흐르는 세월을 세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던

고시원 아저씨들도 외출을 했는지, 떠난건지,

적요함만이 고시원의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낡은 고시원은 크리스마스가 아니었던 날보다

훨씬 을씨년스러웠고, 크리스마스 원망스러웠다.

주인장인 원씨 아주머니는 학생은 약속도 없냐며,

나에게 비아냥거렸, 저녁을 내어 주었다.

꽃무늬 내복이 가디건에 가려져 있었지만,

눈에 거슬렸다. 그런 그를 귀찮게 한 듯 ,

초라한 미소를 지으며, 안절부절한 채

미안함을 전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다.

입을 벌려 까끌한 쌀알을 목구멍으로 넘겼으나,

목구멍은 쥐구멍이 되어갔다.

타인에 불과한 그곳을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과자와 사이다움켜쥐고 인근 비디오 방을 찾았다.

비디오 방에는 나처럼 홀로인 자들의 외로움이

닫힌 방마다 스멀스멀 세어 나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드리워진 그림자들의 눈물이

평 남짓한 방에서 흘러 내렸지만,

가게 주인은 모처럼만의 호황인  분주하였고,

싱글벙글 하였다.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라는 영화에 손이 닿았다.

영화 속 '오대수' 는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이유도 모른 , 감금되어 살았.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등에 혀 있던 불안이

히죽거리며, 나를 괴롭혔고,

나의 시간들은 나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며,

꽉 깨문 아랫 입술로 그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광대처럼 변해갔고,

'오대수'는 어느새 내가 되어 있었다.

"웃어라. 모든 사람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18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보게 된 문장은

웃으라는 말이었지만, 결국 울었다.

혼자여서 다행이라 생각하였다.

나의 고된 노력과 운명에 대한 의욕으로 시작된

이 시간들이, 얼룩진 욕망과 영혼의 폐허가 되어 

낙인처럼 남아버릴까 두려웠다.

아름다운 눈밭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살기 위한

처절함을 영화는 끝으로 보여 주었다.

올라가는 글자들이 아련하였다.

'오대수'는 슬펐으며, 기뻤다.

는 마주해 오는 현실의 슬픔과 절망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서 살아가기 보다는,

왜곡된 기억과 허구의 행복일지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내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는 텅빈 입으로 웃었다.

현실은 그를 하얗게 조롱했지만,

그의 삶은 뽀송뽀송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올드보이'는 나의 인생 영화가 되었고,

어느새 거리는 검고도 검은 겨울의 밤이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불안은 나의 어깨에 걸터앉아 이죽거렸고,

두려움은 나의 다리를 붙들고 질척거렸다.


고시원에 돌아오니 갑작스런 택배가 방문하였다.

존경하고, 좋아하던 동아리 선배가 보내온

털 장갑과 목도리가 상자에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경련이 멈추지 않는 손가락과 떨리는 마음을 다듬으며

선배의 전화번호를 힘겹게 눌렀.

전화기 너머에서 가녀렸지만, 따듯한 그의 목소리가

빛이 되어 달려왔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공부하고 있냐며,

건강 잘 챙기고, 항상 응원한다고 하였다.

잔잔하게 번져가는 그의 음성이

단정하게 귓가에 내려 앉았고,

기습 해온 그의 마음은

날아올라 나의 심장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불안과 외로움이 잠시나마 나를 놓아 주었다.

하얀 얼굴에 동그란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리던 그는

어느새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있었다.

그가 보고 싶었고, 그에게로 도망치고 싶었다.

이 시절의 터널을 온전히 뚫고 지나가,

그 끝에서 당당하게 그를 마주할 수 있길 바랬다.

그리고 그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길 기도했다.

텅빈 거리에 남겨져 있던 나의 가난한 크리스마스는

250km의 거리를 날아온 풍요로운 그의 눈빛으

빛을 밝히고 있었다.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달콤하게 채워졌다. 봄을 품은 그를 떠올렸다.

그해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결국 그가 되었다.

신림동 고시촌에도 몸서리치도록 시렸던 겨울은 

그렇게 물러나고 있었,

벚꽃을 품은 봄이 오고 있었다. 2004년의 봄이었다.


난, 어쩌면 '오대수'였을지도 모르겠다.

10년간의 기억을 스스로 감금하다가,

이제서야 놓아주고, 조각난 기억들을

더듬거리며, 맞추고 이어붙이고 있었다.

살아가기 위해 방치하였고, 흘려버렸던,

서러운 기억들이 서글프게도 하얀 밭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체하지도 않은 채, 빨리도 삼켜버린 시간들을

끄집어 내어 뜯어보고, 살펴보았다.

어둡고, 깊숙한 곳에서 건져 올려진 시간들을

소설인지, 수필인지 모르겠을

빈약한 나의 문장들로 다시 응시하였다.

실은 어딘가에서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 삐죽히 솟아나온 진심

누군가는 알아봐 줄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난 한줄기 전등 빛과 함께 그날을 기록한다.


'세상은 쓴 맛이 났다. 인생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극심한 고통이었다.'는 '싯타르타'에서의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크리스마스인 오늘 조차도

수많은 고행자들이 힘겹게 인생의 거친 길을

걷고 있는 중일 것이고, 길을 잃은 이도 있을 것이다.

거친 길이든, 헤매는 길이든,

그곳에는 당신들을 사랑하는 눈빛들이

길을 밝히고 있을테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겠다.

아마도 그 빛은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나와 그 누군가를 글로 구해보려는 욕망을 가져 본다.

내가 쓴 보잘 것 없는 문장들에 기꺼이 웃어주고,

울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용기도 내어 본다.

그 길이 어떻게 생겨먹었든, 나는 그 길을 묵묵하게

걸어 갈 것이지만, 그 길이 조금은  나를 아끼고,

타인들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이 길 기도해 본다.

나의 남아 있는 나날을 위해 오늘도 난

거칠고 조잡한 문장을 갖다 바칠 것이다.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은 당신의 눈빛이었다.'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어 행복한 겨울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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