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작 Jan 13. 2018

80점 인생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내 행복을 만들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수학 시간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나오면 어린애처럼 소리 없이 펑펑 울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어찌할 바 몰라했고, 결국 부모님이 학원에 오셔야 했다. 엄만 저녁상에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엄마, 선생님이 나 우는 것 때문에 그러는 거지?"하고 물었을 때서야 겨우 "응, 지혜야 네가 공부 욕심이 많아서 그래."라고 한 마디하신 것이 다였다. 내 욕심과 두려움은 그렇게 자라나고 있었다. 


100점을 맞아야 했다.  시력이 안 좋아지는 것도 모르고 미친 듯이 공부했고 집에 와 계산기를 두들기며 행여나 평균이 90점 아래로 내려가면 세상이 떠나갈 듯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이다. 뭐든 "적당히 균형을 맞춰 살아야 한다"라는 지금 내 삶의 원리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위다. 


완벽함에 대한 두려움은 성인이 되어서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신입사원 때 잘 하고 싶어서 밤늦도록 열심히 했지만 꾸중 듣기 일쑤였고 늘 축 처진 어깨로 털썩털썩 퇴근을 했다. 반면 칭찬을 들으면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진심으로 비정상적인 욕심을 만드는 두려움을 없애고 싶었다. 그러니까 칭찬이든 뭐든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기술"을 익혀야만 했다. 


이직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름의 도움이 됐다. 그렇게 긴장하며 열심히 일했던 회사에서 퇴사하고나니 남은 건 '오직 나'였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렇게 내게 말하고 있었다. '회사를 네가 다닌 것이 아니라, 네가 회사를 다니고 있었던 거라고'. 즉 회사는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구의 하나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 나이에 나가서 뭐할래?, 또 이직할 수 있겠니?'라는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마치... 시험지를 받자마자 손을 파르르 떨었던 중학생의 두려움이 '꼭 다 맞춰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직서와 시험지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나 완벽한 직장 구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백점 못 맞을 수도 있지만. 괜찮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내 행복을 만들며 살아가겠어.' 


용기가 두려움을 이기고 있었다. 


지금 나는 여전히 노력한다. 이젠 더이상 두려움을 피하거나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한다. 대신 굳이 점수로 매긴다면 딱 80점까지만. 


완벽한 인간관계를 갖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일처리를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아름답지 않더라도 

나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내 행복은 딱 80점까지. 그것이 좋다. 스스로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잔잔한 미소를 줄 수 있는. 그것이 내 진정한 행복인 것이다. 나머지 20점은 두려움이 만든 행복의 탈을 쓴 허영일 뿐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점수를 매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점수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느끼는 행복의 기준에 따른 점수이니까.

엊그제 직장에서 업체 직원과 작은 마찰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집에 와서 누가 잘 못한 것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며 끙끙 앓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정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다음 주에 잘 풀어보지 뭐. 행여나 잘 풀리지 않더라도 괜찮아. 난 행복해.'하고 생각한다.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 

연애에서도,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인생의 그 어떤 순간에서도 우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니까 

잔잔하게 미소 짓는.



2018. 눈 내리는 아침  

당신의 벗, 

강작 


매거진의 이전글 지나간 사랑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