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 하루키처럼 야구를 보다가 신내림(?) 같은 걸 받진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과정 안에서 '나 이거 꽤 잘 하네?'라는 오해를 품은 재능을 만난다. 나의 경우 그것은 글이었다. 내면의 깊숙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 매일 밤 글을 썼고 사람들이 하나둘 눈길을 주면서 '나 이거 꽤 잘 하네?'라는 긍정의 오해를 품었다. 그리고 출판사, 광고기획사, 잡지사에서 기획하고 글 쓰는 직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잡지사에 다니던 나는 어느 날 공무원이었던 친구의 전화를 받고 솔깃한 제안을 듣게 된다.
'강작, 시간제 공무원 해보는 거 어때? 월급은 적지만 글 쓸 시간은 많아.'
당시 작가로서의 삶에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친구의 말이 찰떡같이 귀에 들어왔고 회사까지 퇴사하며 공무원 시험 공부에 돌입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시험 삼아 치러보았던 국가직 시험에서 주요 과목들이 꽤 높은 점수를 찍어 가능성이 있다며 안도했다. 학생 시절에도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던 터라 암기과목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악몽은 시작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번 낙방했고 점수는 계속 하락하여 10개월 차에 이른 어느 날 맹장과 함께 시험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떼어버렸다. 여러 가지 실패 이유가 있겠지만 장기의 시험을 단기에 합격하려고 밀어붙였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하여간 '장/기/의/시/험'이라는 것이 다섯 글자밖에 안되지만 나에겐 굉장히 괴로운 말이다. 즉 좋아하지 않는 것을 오랫동안 한다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틀에 박힌 생활 속에서 자유 없이!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났을 때는 '이건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분명 글을 쓰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단기간에 합격하려고 하니 글은 도무지 못 쓰고 있었으니.
오랜만에 노트북을 켜고 흰 바탕을 바라보았다. 깜빡이는 커서 위에 나는 무언의 글을 쓰고 있었다.
'응, 부끄러워 참.'
고백하자면 2년 전 시험을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글의 잠재력'을 믿지 못하고(정확히 말하면 '내가 가진 글의 잠재력') 공무원 시험이라는 안전띠를 매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시간제 공무원을 하면 비교적 시간이 많아지고 직장에 대한 걱정도 없으니 자유로운 내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였던 것이다.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내 꿈에, 내 삶에 당당해질 것'
시험을 포기한 진짜 이유. 1년, 2년 어쩌면 10년을 시험에 도전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내 꿈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었다. 꿈은 여러 가지 안전띠를 맨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 바라보고 전력 질주하는 하는 사람에게 주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이 어디 있으랴. 10개월의 흔들림 끝에 나는 안전띠 같은 것은 다 떼고 정직하게 다시 무대에 올랐다. 지금은 다시 글을 쓰는 일에 종사하며 즐겁게 보내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전보다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여전히 내게 안전띠는 없다. 그래서 꿈을 이룰, 이뤄야 하는 가능성이 더 커졌다.
어느 날 친구가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녀의 마음에도 꿈의 불씨가 있었고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것뿐이었다.
있잖아,
꿈의 불씨가 살아있다면 두 손 모아 호호 불어보자.
다른 대피처로 가는 차가운 길목에서 쓰러지지 않고
이곳의 작은 불씨를 정성껏 돌보면
우리, 따뜻할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꿈 앞에 용기 내어 본다.
2018. 춥지만 그래서 더 따뜻한 날
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