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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Feb 28. 2018

편지를 쓰는 이유

기다리던 반가운 손님이 어제, 똑'똑'하고 우편함을 두드렸다. 나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체 샛노란 한라봉 청이 담긴 차를 가지고 서둘러 침대 위에 앉았다. 한 달 남짓 기다리던 손님. 편지가 도착해서였다.


작년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문자나 메신저, 메일로 이어지는 가볍고 전형적인 대화에 마음을 오롯이 담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잉크, 삐뚤삐뚤한 글씨체, 옅은 이편의 바람 냄새까지 담아야 서툰 마음이 오해 없이 전해질 것 같았다. 


지금 시대에 가장 좋아하는 소통 매체가 '우편으로 보내는 편지'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여 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작년 가을, 나는 그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깊게 몰아 들어온 외로움의 이유가 진심을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딘가 나처럼 아날로그 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부족한 삶을 채워줄 느긋함을 지니고 있어줄 거라 생각했다.


작년 가을 무렵, 아날로그 롤링 레터를 시작했다. Analog rolling letter는... 영원히 끝나지 않은 무시무시한 편지다. 계절별로 주제를 정해 여러 사람과 편지를 나누는 형식인데, 처음엔 한 분 한 분과 각각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여러 분과 함께한다면 더 풍성해질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되었다. 이 이름 모를 편지는 그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았고 바다를 건너 제주까지 여행을 다녔다. 가을을 지나, 겨울, 그리고 올봄까지. 기적처럼 사라지지 않고 따뜻한 온기를 담아 이어지고 있다.   



편지를 읽다 보면 머릿속에 이런 장면이 펼쳐진다. 둥그런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삶을 들어주고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실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했더라면 어려웠을 수도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글들이 종이 위에 써져 있다. 체면상의 자랑도, 거북한 위로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었다. 나같이 서툰 사람들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에게 '이런 것까지?'라고 할 만 이야기를 모두 털어냈고 그러고 나면 외로움과 두려움, 부담감이 한결 가벼워졌다.


누군가 내게 '편지를 왜 쓰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편지 덕분에 서툰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어. 그래서 나, 점점 살아갈 용기가 생겨'라고.


우연히 눈이 마주친 반대편 지하철의 여자도, 같이 탄 엘리베이터의 묵묵한 남자도 어쩌면 이 생이 다하기 전까지 다신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왠지 나는 편지 덕분에 함께라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저 여자가 우리 편지 속의 그녀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우리가 다 연결된 그런 안도감. 그래서 편지가 참 좋다. 




2018. 아쉬운 2월의 끝자락, 곧 꽃 피나리! 

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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