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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가 답이 아닌 것들이 많다

by 강작


'용서'가 답이 아닌 것들이 많습니다.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용서해야 하느니라"라고 하늘의 신이 아무리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신에게 "아니 이보세요. 이런 사람을 어떻게 용서한답니까?"하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왠지 너무 한 것 같아서 하루는 용서해볼까도 했어요. 하지만 이성적, 논리적, 감성적 모든 적들로 생각해도 그 사람에게 용서는 해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용서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여전히 지금도 용서할 수가 없어요. 인생엔 '용서할 수 없다'가 답인 것들이 많습니다. 왜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대도 그 사람에 관한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와 화가 나는 걸까요? 생각해보니 그건 억울해서였습니다. 그 못된 사람에게 내가 당했던 수모가 떠올라서 그 시간이 너무 억울하고, 당시 화 한 번 내지 못해 억울해서 말이죠. 그런데 말이에요. 만약 그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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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 만난 안채 주인의 억울한 사연


여행을 하다 한옥박물관에서 유유히 부채질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한 50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고운 한복을 입고 있었죠. 처음엔 마네킹인 줄 알았는데 움직여 제게 사진을 몇 장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시더군요. 저는 열성적으로 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그 여인은 고맙다며 저를 그녀의 안채로 초대했지요. 안채라니요? 정말 저는 흥분해서 한복 뒷 꽁무니를 졸졸 따라갔어요. 밖은 엄청 찌는 날씨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웬걸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시원한 안채였습니다. 사극의 현대판 같다랄까. 어쨌든 이런 묘사는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여인은 저를 앉혀두고는 차를 대접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고민이 뭔지 묻고는 그녀의 고민도 자연스레 제게 풀어놓았죠.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날 여인이(자꾸 여인이라고 하니까 조금 웃기지요? 그래도 끝까지 여인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차를 몰고 가는데 어떤 차가 신호를 기다리던 자신의 차를 뒤에서 쿵 박더랍니다. 놀란 여인이 나와서 뒷 차로 가보니 운전석에 교통위반 스티커가 잔뜩 붙어져 있는 차에 한 젊은 아가씨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더래요. 찌그러진 아가씨의 차 빼고는 별 이상이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뒤 경찰서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방문을 하니 그 아가씨와 그녀의 어머니가 화난 얼굴로 여인에게 "당신이 잘 못을 했으니 물어내라"라고 말했다네요. 여인이 잘 못했으니 뒤에 있는 자신의 딸에게 와서 괜찮냐고 물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황당한 경우이지요. 그땐 그 사람들이 정말 미웠지만 인생을 살며 그런 억울한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쭉 듣고는 제가 느낀 바를 이야기해드리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저 또한 억울할 정도로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인생의 시험을 헤쳐 나가고 있으니까요.



나는 20, 너는 내 덕분에 80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자신의 철학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를 하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여인은 현명한 사람이었죠. 오히려 자신은 현재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나이가 어떻든 간에)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진지한 마음에 저는 제 느낀 점을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저의 경우엔 미워하는 사람 때문에 제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죠. 먼저, 그 사람을 겪고 나니 배려심과 이해심이 커졌고 더 깊게는 그 사람같이 되면 안 되겠다는 약속도 하게 됐지요. 그 사람이 생각나서 화가 날 때마다 저를 달래는 것도 스스로에 대한 이해심을 키우는 기회였습니다. 그 덕이 한 20% 정도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80%은요? 저 덕분에 그 사람이 가져간 기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잘못을 여인에게 덮어 씌운 모녀는 만약 이 사건이 종결된 후 조금의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다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하곤, 여인 덕분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자신도 그와 비슷한 억울한 상황에 처해서 여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깨달을 수도 있죠. 그러면 그 모녀는 80%의 기회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여인이 우연이 겪은 불행에서 나온 선행 덕분이지요. 하지만 만약 그 모녀가 한톨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채로 그대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80%의 기회는 얻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런 억울한 상황을 만들다 인생의 80%을 불행으로 만들 겁니다.



저는 인생에 균형의 법칙이 따른다고 믿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있고, 잘생긴 사람을 만나면 그만큼 아픔이 따르는 그런 균등한 논리가 알게 모르게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살다가 언제든 억울하고 슬픈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죠. 기본적으론 그만큼 가치 있는 날들도 있었으니 억울해하진 않되, 억울한 날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며 화를 식히느라 폭식하지 말고.


억울한 상황으로 인해서 여러분이 하게 된 보이지 않은 선행을 상대의 몫으로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몫. 아마 인생이 제자리를 잡아 줄 테니까요.




2018, 푹 자요.

당신의 벗,

강작.



숙제.

자기 전 '오늘 참 좋았다' 이야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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