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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Dec 29. 2020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근자감같은 게 생긴 건지

2020年 12月 29日


강작>다인>수연>광복>다음은? 



첫 번째 편지

강작


잘 지내고 계신가요? <친애하는 오늘에게> 다음 편지도 텀이 길어서 자주 안부를 묻지 못했네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겨울다운 계절이 되고 있어요. 비록 눈은 오지 않지만- 겨울이라면 단연! 해야 한다는 것들을 찾게 돼요. 갈색 옷들을 겹쳐 입고, 우유와 코코아를 타서 난로가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일 같은 것들. 여전히 삶에 삐걱 거리는 일들이 많지만, 하루하루 행복한 순간은 놓치고 싶지 않아요. 


지난주엔 편지 친구 수연이 성수에 연 비건 케이크집에 다녀왔습니다. 저보다 먼저 광복님이 소윤이와 함께 다녀가셨더라고요! 큐트한 글씨체로 쓴 브레이니아를 보고 알았답니다(웃음). 환경을 지키는 대표 소녀가 가져온 꽃나무이니 수연의 가게에서도 잘 자라줄 거예요. 수연이 가게를 냈다는 소식은 참 신기하고 신이 났습니다. 오랫동안 편지를 해오면서 그녀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당차고 강하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그것이 표면으로 보이는 것 같았어요. 뭐든 진심으로 자신을 찾아가는 수연을 늘 응원하고 싶습니다.


성수 구수하당

저는요? 그동안 쥐 죽은 듯- <친애하는 오늘에게> 겨울 편으로 보낼 소설만 쓰고 별일 하지 않고 지냈는데, 참 즐거웠어요. 뭐랄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근자감'같은 게 생긴 건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이상하리만치 줄었답니다(웃음). 

이두근 힘줄염을 앓고 있었던 팔도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대학 병원 선생님께 제가 '아이를 안다가 이렇게 됐어요.' 하니까 '아이요? 본인 아이요?!'하고 놀라서 '아니요! 제 아이는 아니에요!'하고 말했더니 역시 그렇구나 하는 눈빛을 보냈답니다. (그 젊은 남자) 선생님은 나를 어린 학생으로 본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무척 기뻐서 아픈 팔을 신나게 흔들고 왔답니다(웃음). 그랬더니 이상하리만치(!) 팔이 나은 것 같아요. 

이제 저는 곧 서른셋이 된답니다. 엄연히 말하면 서른 넷인데, 빠른 생일을 치지 않고 있어요. 어쨌든 33이라는 나이는 꽤 성숙해 보이는데 내년엔 제 나이에 맞는 성숙함과 섹시함을 가진 작가가 되고 싶어요(왜 작가가 섹시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뭐랄까 그 안에서 예술성이랄까..?)


오늘은 제가 사랑하는 저희 동네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이랍니다. 이사 준비로 정신없어서 작별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제 마을을 세계의 어느 멋진 명소들보다 더 사랑했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올려다본 하늘이라던가, 버들나무 밑에서 엄마와 먹는 김밥, 풀 냄새가 나는 집 앞까지 바래다준 남자들(?)의 뒷모습. 그 모든 자취들을요. 마음 안에 오래오래 살아주길. 


나이를 계절의 수로 세서, 새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이 말은 꼭 해드리고 싶어요. 남은 2020년- 행복하세요. 네, 곧 <친애하는 오늘에게> 편지가 예쁜 이야기를 싣고 찾아갈 거고 <아날로그롤링레터>도 제주를 떠나 당신께 가는 중일 테니까요. 


고마운 강작, 

당신의 강작.


두 번째 편지

다인


제주에서 오는 레터, 받아보려면 아직 한참 남았겠지만 벌써 기대가 되어요. 수연님이 연 케이크 가게에 저도 가보고 싶네요.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가게 되어도 저라는 것을 알릴 순 없겠지만요...ㅋㅋㅋ


저는 요즘 매일 밤에 등산을 가요. 밤 8시가 되면 아빠와 따뜻한 차를 보온병에 넣고 동네 뒷산을 올라갑니다. 얕은 산이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산속으로 들어가면 깊은 산 속에 온 기분이 듭니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아빠의 발걸음만을 좇으며 앞으로 걷는거죠. 조명이 없는 어둠을 헤매며 가다보면 달빛을 느낄 수 있어요. 그게 너무 신기하면서도 좋습니다. 여러분도 밤에 한번 산에 가보세요. 생각보다 상쾌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강작님 이사를 무사히 마쳤길 바래요. 저도 강작님처럼 집을 구해 이제 이사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번에 가는 곳은 아예 살림집이라 옵션이 한개도 없는 집입니다. 가스레인지부터 냉장고, 세탁기 모두 발품팔아 사야해요. 그전에 사두었던 것들도 떠돌다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더라고요. 막막하면서도 새로운 시작이 설레고, 그렇지만 또 두렵고 그러네요. 


막연하게 올해가 되면 코로나가 잠잠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생각이 무색하게 똑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네요. 다들 몸 조심하시고 올해는 모두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해피뉴이어!


세 번째 편지

수연


성수에 구수하당 이라는 곳입니다. 광복님, 강작님, 택수사장님! 께서 소중한 것들을 선물해주시고 방문해주셨는데, 너무 감사하고 감동함 이상으로 제가 너무 부족한것이 송구하여..� 방문해주시라고는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들 연말과 새해 첫날은 어떻게 보내셨을까요? 저는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끝과 초 모두 가게에서 보냈습니다. 미숙하고 부족한 것이 많아서 후회와 앞으로의 두려움도 크지만, 그보다는 정말 행복합니다. 제가 갈 곳이 있다는 것과 하면 할수록 더 즐거운 일을 한다는 것이 행복해요. 작년 말-초에도 아날로그롤링레터로 우리가 인사를 전했더라구요. 저는 작년 말에, 카운트다운 직전에 우당탕탕 케이크를 만들어 가족과 초를 켰고, 1일 새벽에는 남한산성에 일출을 보러 갔었어요. 그때는 흐려서 해가 뜨지 않았어요. 해에는 관심 없지만, 가족과 많은 사람들과 같은 목적으로 꼭두새벽부터 산에 방문했다는 벅참 동시에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무언가 못끝냈다는 느낌, 할일이 가득 찬 느낌으로 깔끔한 시작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어제는 가족들과 버킷리스트를 썼어요. 작년에도 썼었는데요, 작년에는 아쉬운 만큼 좀 비장했고, 그만큼 거의 이루지 못했었거든요. 이번에 가족들과 쓸 때는, 쓸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별로 이루고 싶은 것이 없고, 해보고 싶은 것도 없더라구요. 머리를 쥐어짜며 몇 가지 생각해내긴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저는 이미 충분한 것 같습니다. 자리에서 조금 능숙해지고 더 좋아지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많은 분들께 응원을 받고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저만 더 잘하면 되겠지요.


저는 이제 25살이 되었습니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과 알지 못하는 일들로 가득찬 날이 앞에 펼쳐지겠지만, 마음은 쉽습니다. 그렇게 잘 될거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못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구요, 광복님이 좋은 책과 함께, 언제나 자기 감정에 휘말리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말을 새기구요. 올해는 더 중립적으로 지내려고 합니다.


가족들과 쓴 버킷리스트를 귀여워서 잠깐 보여드립니다. 내용은 비밀이에요! 다들 해보세요, 재미있었습니다. 고작 30분 정도의 대화와 행동이었는데,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연초에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참 감사했고, 올해도 또 감사합니다. 안전하고 편안한 시작을 함께 해요!



네 번째 편지

광복_ 강작에게


2020년 마지막 날까지 야근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정말 너무 바빠서 점심을 제대로 챙겨서 먹은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였어요. 이 코로나 시국에 바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거라고 말들 하지만 피로도가 너무 쌓여서 힘들었어요. 새 해 부터는 조금씩 조율이 가능해질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2020년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어떻게 기억될지 정말 상상이 가지를 않습니다. 예년과 다르게 2020년 말부터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도 하죠. 이래 저래 움직이기 힘든 시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벗들이 있죠. 강작과 수연.


수연은 메일로 교통하면서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 강작의 말대로 수연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씨 강하고 용기있는 친구라는 생각을 저도 했습니다. 소윤이와 응원하러 다녀오고 나서 이 친구가 앞으로 정말 잘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기더라구요.


수연보다 강작은 더욱 잘 해 나갈 거라고 믿어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들을 하려고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것이라서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강작을 알고 지낸 시간들이 점점 길어지면서 강작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서신으로 벗들의 변화되는 삶들을 보면서 강작이 시작한 아날로그 소통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었는지 문득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저를 포함한 벗들의 삶에 강작 던진 그 화두와 소통법은 그 안에 있는 우리들과 우리의 교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고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강작은 이미 위대한 작가로 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에게만 교통하는 작가였으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더 많은 독자들에게 강작의 감수성과 정서 그리고 경험들을 공유하는 것이 옳은 길이겠죠.


우연히 그리고 가볍게 강작과 맺게 된 인연은 제 삶에서도 큰 의미들을 주고 있어요. 그래서 많이 고마워요.


이사는 잘 했는지, 독자들을 위한 글을 쓰느라 새로운 곳에서의 정리는 아직일 것 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가 궁금하고 걱정도 됩니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연말에 만나서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떨었을텐데 많이 아쉽네요. 올 해의 끝자락에는 커피를 한 잔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작의 건강과 강작의 글들을 염려하며, 그리고 강작의 삶에 기쁨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2021. 01. 03.

당신의 벗

광복


네 번째 편지

택수


이번에는 뭔가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는데 뭐가 달랐냐면, 연말을 보내는 방법이 예전 심심함보다 더 심심해졌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예전의 막막함보다 더 구체적으로 막막해졌습니다. 1일 쉬고, 2일부터 출근했어요. 너무나 조용히 시간이 흘러가서 한편으론 좋았습니다. 그러나 두 번의 허기는 꼭 찾아옵니다, 아내는 왜 꼬박 도시락 두 끼와 간식을 챙겨주는지, 그 도시락을 비워가는 시간은 왜 슬픈지, 모르는 척할 수가 없습니다. 가게 문을 내리는 순간까지 말 한마디를 안 했다는 것과 먹는 것으로나마 존재의 의미를 알렸다는 주둥이의 구차한 변명이 싫어 마스크로 입을 묻어버립니다. 그러니 나에게 마스크는 코로나 이외의 역할도 있습니다. 유독 나의 마스크가 금방 더러워지는 이유가 그거였나 봅니다.


살다 보니 새해라는 것은 없애버리고 싶은 것 중 하나입니다. 보이는 것으론 외모가 점점 낯설어지고 보이지 않는 것으론 다짐을 안 하게 된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한발 물러서 보면 하루하루가 시작이고 끝인데 뭐 그리 대단하다고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좀 더 신박한 새해 인사를 생각해 보내려고 했었는데 올해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장 건조하게 인사치레를 했습니다. 여러 번 성의 없게.


오늘은 벌써 5일이나 지났으니 부진한 새해 기분은 안제 그만 내고 새로운 할 일을 찾아 화이팅 해볼랍니다. <지구불시착 그림그리기팁 초간단편>과 <하루만 하루끼> 추가 주문이 들어와서 택배를 보낼 예정입니다. 책방은 책 파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책이 팔리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아직도 지구불시착은 책이 팔리면 어깨춤을 춥니다. 요 며칠 판매가 죽을 썼으니 이번 주는 체감온도 영하 20도가 오든, 코로나 19가 1,000명을 웃돌든, 진도 7.5의 지진이 있어도 책은 팔릴 듯 합니다. 왜냐하면 책 판매의 평균 법칙을 책방은 기가 막히게 알고 있거든요. 이 법칙이 지구불시착에만 해당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못 팔았다고 슬퍼할 일도 없고, 많이 팔았다고 좋아할 것도 없다며 지난 몇 년을 버텨온 동네 책방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 판매의 평균 법칙을 입버릇처럼 말해 왔습니다. 책을 팔면 어깨춤을 춘다 하고 도시락만 먹고 갔다고 자학하던 지구불시착이 책 판매의 평균 법칙을 논하는 건 앞뒤가 안 맞지 않는다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불시착입니다. 초지일관 논리의 부실함이 지구불시착이죠.


지구불시착은 구멍이 너무 많죠. 언제나 그 구멍을 메워준 사람들이 지구불시착 관계자들이었습니다. 지구불시착 관계자가 누구냐면 지구불시착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바로 당신!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 나도 잘 해줄게!!!




2018년 가을에 시작한 [아날로그롤링레터: analog rolling letter]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과 계절마다 우편 편지를 롤링하며, 마음의 친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날로그롤링레터 참여를 문의해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계절마다 롤링되는 편지라 참여 인원을 제한하고 있으나, 가족이 되길 원한다면 참여 희망 메일을 보내주세요!


mail. fromkangjak@naver.com

insta. @fromkang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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