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年 11月 24日
광복>강작>노엘>수연>다음은?
요 몇 일 겨울인줄 착각할만큼 추웠습니다. 벗들처럼 소중한 사람들이 감기나 걸리지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아이러니하게 저는 난방시스템을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추울수록 회사의 매출이 올라가죠. 추운 겨울이 좋지는 않지만 한 편으로는 따뜻한 겨울이 싫기도 한 이유입니다.
1. "지구를 지키자!!"
작년부터 지역에서 주민자치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인천시로부터 주민자치예산을 따서 지역을 위한 사업들을 몇 가지 추진했죠.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부분들이 축소되거나 변경되었는데 그래도 몇 가지 진행된 사업 중에 환경강좌가 있었습니다. 저는 소윤이 학교에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하고 이 4주(주 1회) 환경강좌에 소윤이와 참여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LED 스탠드 제작 시간의 모습들입니다.
(*핑크생 상의에 흰색 패딩을 입은 꼬마가 소윤이입니다.) 에너지절약을 위해서 LED 스탠드를 제작하는 것이야 그리 특별할 건 없고, 그 날 만들어 온 스탠드 역시 특별한 건 없었죠. 그런데 어느날 집에 와서 소윤이 컴퓨터 본체 위에 있던 그 스탠드가 좀 달라보였습니다. 글씨가 쓰여있었는데, "지구를 지키자!!" 였습니다. 소윤이가 얼마 전 써놓은 것입니다.
미술을 좋아하는 소윤이는 어렸을 때부터 여백이 있는 곳이면 그림(낙서?)를 그렸습니다. 벽은 말 할 것도 없고 욕실 벽, 제 흰색 지갑, 비치볼의 흰색 면, 흰 가방, 종이의 흰 면 심지어 5살 때는 안경을 쓰고싶었다며 자기 눈 주위에 안경을 직접 그렸습니다. 소윤이의 화가본능은 역시 밋밋한 스탠드는 참지 못했죠. 환경강좌를 수강한 어린이답게 LED 스탠드 몸통 나무에 의미있는 글을 써놓습니다.
"지구를 지키자!!"
느낌표는 두 개였습니다. 나름 강조한 의미인듯..... 지구를 지키는데 오래 눈에 띌 것 같아서 좋습니다. 환경강좌를 듣고 난 후 주말에 분리수거를 할 때면 소윤이는 가위로 PET병에서 비닐 포장을 잘라서 분리합니다. 이만하면 환경강좌를 수강한 훌륭한 2학년 어린이겠죠?
2. 편지
아롤 겨울편은 출발했나요? 출발했다면 적어도 저는 3주 후에 만날 수 있거든요. 벗들의 가을 편지들이 너무 보고싶습니다. 그나마 강작이 브런치에 아주 조금 보여줬습니다. 더 보고싶다는..... 아롤만큼이나 벗들과 주고받는 메일도 큰 기쁨입니다. 메일로 자신의 경험에 투영하며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벗들을 보면서 참 가슴 뜨거웠어요. 자신과 관련해서 솔직하기 힘든 세상 속에 살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씩 보여주면서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는 듯 해서, 벗들에게 편지를 쓸 때면 더욱 겸손해집니다. 직업이 무엇인지,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같은 세상의 기준들은 벗들 앞에서 오히려 부끄러운 순간들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저는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지위도 없고, 경제력도 크지 않습니다. 그냥 벗들에 비해서 좀 더 가진 것이 있다면 나이와 우주 최강의 딸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 정도죠. 어떤 날은 벗들의 메일이 도착하면 하루가 즐거워집니다. 항상 잠들기 전에 읽는 편입니다. 휴대폰에서 메일 알림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다가, 잠들기 전에 가장 흐믓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죠. 꾸밈 없고 담백한, 그리고 공감가는 편지들은 저에게도 큰 위로를 줍니다.
3. 서리
낙엽이 많이 떨어져 가을이 저물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절기로는 입동이 지났지만 제게는 아직 가을입니다. 아직 서리가 오지 않았거든요. 서리가 오면 정말 겨울이 시작된 겁니다. 모든 식물을 초라한 모습으로 고개 숙이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서리가 오기 전인 지금, 저는 가을을 좀 더 부여잡고 있습니다. 서리가 오기 전에 억새들이 있는 숲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가을은 단풍만 있는 게 아니고 바람에도 여럿이 기대어 곧게 서 있는 억새도 운치 있습니다.
4. 지구불시착
노원으로 출장을 가려고 한창 준비중입니다. 택수샘을 만나러 지구불시착에 가려구요.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좀처럼 시간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그곳에 가면 반나절은 충분히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택수샘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유대인들의 라삐(현자)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손사래 치는 모습 상상이 갑니다.)
5. 겨울에 또....
겨울 아롤을 기다리면서 벗들이 보고싶으면 또 편지를 하겠습니다. 이 메일로 편지를 보내는 건 아롤을 기다리는 인내의 동력같은 겁니다. 아롤을 재촉하지는 않습니다. 벗들도 충분히 즐겨야 하고, 그 가운데 또 많은 것들을 담고싶을 테니까요. 부디 겨울 편지를 여러 번 보내기 전에 아롤이 오고, 봄도 왔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가 또 유행을 하네요. 신체적 건강도 걱정이지만 우리의 정신과 상황을 더 힘들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감기도, 코로나19도 조심하세요.
2020. 11. 24.
이른 새벽부터 당신들 생각에
광복
아날로그롤링레터가 겨울에 추울까봐 아롤 겨울 옷을 장인에게 부탁하였습니다. 2주가 걸린다는데, 그 안에 쓰고있는(!) 아롤 윈터레터를 마치고 동백(선경)에게 먼저 제주로 보낼 계획입니다. (12월 둘째주 안으로 출발예정)
소윤이는 정말 귀엽고 순수하네요. 핑크색 상의를 입은 천사같아요. 요즘 노원에 있는 라삐가(택수샘) 예술인챌린지인가? 그런 재미있는 활동을 한다는데 거기에 소윤이도 참가하면 참 좋겠어요. 하하. 라삐에게 문의하십쇼. 저도 지난주에 눈썹이 짙은 남자를 데리고, 지구불시착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가장큰책방 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책만들기 프로젝트에 저도 참가하여 '하루만하루끼'라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안에 '176번지'라는 소설을 썼는데, 누가 말하길 '꽤 멋진 단편영화 같다'라고 하더군요(꿈에서 내가 그랬나?). 지구불시착에서 구매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 라삐는 그 책을 사서 인스타그램에 #세상에서가장큰책방 이라는 태그달기로 홍보를 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하하).
개인적으로는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계획했던 결혼이 파극(ㅋㅋㅋ?)으로 끝났고 저는 눈썹이 짙은 남자와 어찌될 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지는 아롤에서 전하겠습니다. 현자같은 답변들- 부탁드립니다. 물론 지금은 '인생은 지금부터야~알'하면서 강해진 상태죠. 이별도 여러번 해보니까 굳은 살이 생긴건지, 이게 나이를 먹어서인지ㅋ 그다지 감정적인 동요가 되지 않네요... 좋은건가?
어쨌든- 나머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아롤에서 하겠습니다. 광복처럼 저도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고 위로가 됩니다. 우리 편지의 이름은 아날로그이지만 왜 자꾸 현대문명인 디지털이 좋아지는 거죠? 빠르고 좋군요??? 모두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우리의 몸부터 챙깁시다! :-)
사랑을 담아,
당신의 벗
강작.
장인이 보내준 아롤옷 겸본입니다. 벌써부터 아롤이 신나서 궁딩이를 흔들고 있네요.
안녕, 아롤 친구들 - 그리고 새로운 아롤 멤버들- 코로나19로 인해 국경이 닫힌 하노이에서 여전히 생활중인 노엘입니다. 두계절 건너 여름 편지가 강작의 손에 도착했다지만, 두계절 건너도 좋으니 여러분의 손편지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여 오랜만에 이렇게 소식을 전합니다.
베트남은 초반에 강력한 정부의 조치 덕분에 5월부터 모두 다 정상(?)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쓰는 마스크를 제외하고 마스크를 착용해본지 제법 오래되었어요. 감사한 일이지만 국경이 닫히는 바람에 '진짜' 집에 가본지가 1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러고보니 '집'이라는건 참 재밌죠. 저는 여기에도 집이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집'이라고 하면 저는 서울에 있는 우리 집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하노이라는 도시가 참 좋은데도, '집'은 서울이에요.
제목대로 하노이는 드디어(?) 20도 아래로 날씨가 내려왔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패딩을 입기 시작했어요. 저는 도톰한 후드집업을 꺼냈습니다. 2020년에 자주 하게 되는 말이지만, 진심을 담아 말씀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우리 모두,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도록 해요.
노엘 드림
+
친애하는 강작에게,
안...녕...?!
우리는 몇년동안 서로 알고 지낸 사이니까 오랜만에 이렇게 불쑥 연락을 해도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아주었으면 좋겠어요. 흑. 아니에요 실례는 맞지만 그래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어요. 평소라면 예쁜 편지지를 꺼내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 담았겠지만 도착할 확률이 희미한 베트남 우편을 믿지 못하여 든든한 (?) 이메일로 소식을 전하는 점 또한 이해해주길 바라요.
서른이 넘어가며 참 생각할 일이 많아졌어요. 고민에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얹어 잠을 못 이루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엔 '에라이 모르겠다'라고 결정을 내리곤 했거든요. 근데 서른이 넘어가면서 더 이상 그러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에라이' 마음은 여전하지만 '모르겠다'에서 '그나마 이거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결정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머리보다는 마음이 바빠 친애하는 벗에게 한 글자 쓰는게 그리도 힘들었네요.
매주 메일함에 도착하는 강작에 편지를 마치 아껴먹듯 쌓아놓고만 있었어요. 정성들여 쓴 만큼 나도 정성스럽게 읽어야지하는 마음에요. 그러다보니 두어계절이 지나 어느덧 2020년의 끝이 되어버렸네요. 그래서 오늘은 아롤 관련 이메일을 단숨에 읽어내렸어요. 아롤 친구들은 여전히 꿋꿋하게 각자의 일상을 지켜가고 있네요. 참 따뜻해요. 이러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준 강작이 정말 고마워요.
오늘 참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요즘 고등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문득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나서 이런 저런 사진과 글을 찾아보다가 고등학교 때 만났던 친구의 근황이 궁금해졌어요. TMI지만 저는 고등학교 3년이 참 힘들었거든요. 경쟁이 굉장히 심했던 학교 환경에 어려웠던 친구 관계에 꿈보다는 학업목표를 달성해야 했던 강박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누군지 잘 마주하기 힘들었던 모난 마음 때문에 3년 내내 많이 힘들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아 고등학교 때가 좋았지!'라는 말에 공감해본적이 없어요. 그래도 풋풋한 마음에 사랑스럽고 동시에 사춘기의 소용돌이 속 만났던 그 친구 덕분에 1년동안은 참 행복했답니다! 하하하.
아무튼간에. 그래서 15년 가까이 이야기 조차 안 해본 - 심지어 졸업식날에도 스치지 않았던 - 그 친구의 근황이 궁금하여 찾아보니 그는 무려 사진작가가 되어 있었답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도 예쁘게 가꾸어 기록을 남기고 있어서 읽어보니 올해 퇴사를 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글과 사진을 보니 오늘날 만난다면 우리는 제법 좋은 친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메세지를 쓰려고 했지만 어이쿠. 그 친구는 저를 기억은 할련지, 기억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기억할련지. 그리고 15년이 지났는데 구질구질하게 연락하는걸로 생각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사실 저는 정말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하는건데 -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랐던 때이지만, 그 누구만큼은 진지하고 진심이었던 꼬마들이 세월이 흘러 취향과 관심이 비슷한 성인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연락을 하고 싶은건데!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인줄 몰랐네요!
바다 건너 산 넘어 있는 강작이 이 메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요. 하지만 우린 어쩌면 가까운 친구 사이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주고 받은 사이니까.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반갑게 받아줄거라 생각해요. 저는 오늘 식탁에 앉아 한참을 혼자 웃었어요. 그땐 그랬었지...를 되뇌이며 말이에요.
강작, 어느덧 12월이에요.
2020년 남은 31일동안 씩씩하고 행복하게 무엇보다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길 바라요. :)
오랜만이라 미안한 노엘이 하노이에서.
소식 전해주시고 궁금해해주셔서 모두 감사드려요! 저는 12월 성수동 북쪽에, 가게를 열려고 준비중이에요.
채식 (비건) 간식거리와 커피, 차가 있는 곳이에요. 한달 전에 계약했는데 이것 저것 미뤄지고 결정하다 보니 이번주에야 공사를 제대로 시작했어요! 아직 안한 것들 투성이라서.. 아마 담주쯤 공사가 끝나면, 크리스마스 전에 여는 것을 소망! 하고있어요!
공사 준비하며 다시 코로나가 엄청 심해졌어요. 매일 다니면서 저도 주변도 걱정되고, 이 시기에 가게를 열어도 되는가도 걱정이에요..매일 하는 말이지만 모두들 조심하세요! ㅠㅠ 세상이 이래서 그런지 요새는 머리가 뒤죽박죽 어렵네요. 하는 건 없는데 뭔가 ? 바쁘고 미루게 되네요. 다들 잘 지내셔서 다행이에요!
아날로그 롤링레터 저도 뒷번호인데, 얼른 보고싶어요! 저는 공사 끝나면 미뤄둔 것들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은행 병원 핸드폰 바꾸기 정산 등등이용 ㅠㅠ (강작님께 드릴 답장이 백만년째 가방에 ...)
하노이는 비교적 평화롭다고 하시지만, 집에 오시기 어려워지셨다는 게 속상하네요. 이 사태가 언제 끝이 날까요? 이번 해에 연말에, 만날 수 있을까요? 재미있는 생각들이 떠올랐었는데, 불확실해서 아쉽습니다. ㅠㅠ
느린 인연이지만 짧게나마 디지털로 소식을 전해요! 개업 준비가 끝나면 다시 소식 전하고 싶어요! (홍보는 아닙니당!) 다들, 건강하세요!!
2018년 가을에 시작한 [아날로그롤링레터: analog rolling letter]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과 계절마다 우편 편지를 롤링하며, 마음의 친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날로그롤링레터 참여를 문의해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계절마다 롤링되는 편지라 참여 인원을 제한하고 있으나, 가족이 되길 원한다면 참여 희망 메일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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