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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작 May 29. 2021

뜻밖에 만난 행복

환자들은 알게 된다. 행복은 그저 건강했을 때 내가 가진 소박한 것들 안에도 충분했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방금 회사에서 불합격 소식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남자 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코에 왕뾰루지가 났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이다. 


드디어 엄마가 엊그제 소변줄을 빼셨다. 간병사 여사님(병원에서 간병사분들을 부르는 다른 호칭이다. 전문가분들이기에 아줌마?라고 부를 수 없고, 이모님은 너무 가게 주인 같으며 그렇다고 선생님이라고 부르기엔 의사 선생님들과 겹쳐 정해진 적정 호칭인 듯하다)께서 하필 소변줄을 뺀 날 휴가를 요청하셔서 내가 대신해서 간병을 하게 되었다(제주에서 서울로 전원한 엄마는 히말 딱이 하나 없는 나 대신 든든한 조원군을 곁에 두시기로 하셨었다). 


엄마는 걱정이 많으셨다. 척수 신경 손상으로 마비가 되어 가뜩이나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방광에 엉덩이에 생긴 화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변줄을 한 달 이상 차시게 되셨기 때문이다. 오래 차고 있으면 방광이 제 역할을 잃어버린다는 걱정으로 빼시긴 했는데, 제대로 소변이 나올지 걱정이 릴레이처럼 바통을 넘기고 있었다. 의사는 소변이 잘 나오지 않으면 요로감염에 걸리고 다시 소변줄을 찰 수도 있다며 그녀의 심장에 펌프질을 해댔다. 그날, 우리의 소원은 통일도 아니고- 오직 소변이 잘 나오길 바라는 것이었다. 


화상 상처에 닿으면 안 되니 누워 소변통으로 받아냈는데, 이 과정은 기이 독특하며 굉장하다. 환자는 침대에 누워 다리를 쩍벌로 벌리고 소변을 봐야 하고, 간병인은 밴딩이 되어있는 화상 상처 위에 휴지를 가득 채우고 소변이 나오는 요도에 소변기를 꽉 대고 끝까지 눈을 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누워서 소변을 본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어릴 때야 자면서 실수하곤 했지만- 다 큰 어른이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누워 소변을 봐야 한다니! 


환자들이 대단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해내야 하고 해낸다는 것이다. 옥수수수염차와 식혜를 연속으로 마시도록 한 결과 엄마는 곧 대량의 소변을 보시게 되었다. 나는 넘치려는 소변통을 간신히 들고는 엄마에게 외쳤다. "엄마 멈춰! 빨간 불이야 멈춰!" 그러고 나서 자랑스럽게 소변통을 들어 보이곤 소리쳤다. "엄마!!! 우리가 해냈어!!!"하고. 그녀는 막 세계 최고의 우량아를 순산한 산모처럼 매우 자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이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나는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한다. 무엇이든- 그게 돈이든, 지식이든, 친구든, 남자든 가지려는 욕심이 나를 불행한 표정의 초라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얼마 전에 <유퀴즈>에서 조세호 씨가 한 천사 같은 소녀에게 '만약 신이 네게 한 가지를 안 주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그녀는 '신은 제게 부족함 없이 모두 채워주신 것 같아요.'라고 답하는 걸 보았다. 


맞아. 우린 이미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수많은 기적들을 갖고 있는데- 왜 더 많이 가지지 못해 안달이 나있으며 잃을까 불안해하는 걸까? 돈이 많으면, 예쁘면, 인정받으면- 행복할 기회가 남보다 많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가진 행복들을 소화하는 데만 해도 한평생이 걸릴 거라고'.



글. 강작(@fromkangjak)


추신. 글을 쓰면서 점점 강해지는 나와 만난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이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작가가 되어보는 게 어떻냐고 권유를 한다. <친애하는 오늘에게> 편지를 다시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아직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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