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작 Jun 15. 2021

사실은 너도 나도 정상

처음부터 앞머리를 (이렇게 거지같이) 자를 생각은 아니었다. 화장대에 앉았고 마음이 뒤숭숭했고 가위가 보였고 그걸 집어 든 후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다. 내 앞머리는 처키도 비웃을 만큼 짧게 잘려 있었다. 언젠가 뷰티 유튜버가 앞머리이란 자고로 눈썹 높이나 그 아래로 자르는 것이 여성스럽다고 했었다. 거울을 빤히 바라봤다. 손에 든 파뿌리 같은 굵직한 머릿 털을 바라봤다. 일은 벌어진 후였다. 

물을 묻혀보고 고데기로 열심히 펴보았지만 앞머리들은 눈썹과 절교라도 한 마냥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고 나는 그들을 화해시킬 수 없었다. 대학교 2학년일 때 눈썹이 진하다고 놀림을 받은 후 눈썹 칼을 들어 자르고 잘라 모나리자를 만들어버렸던 그날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이 생소한 서늘함. 덕분에 화장대에 앉으며 들었던 뒤숭숭한 마음이 잠깐 나갔다 들어왔다. 


남자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가 립스틱을 이에 묻히고 배시시 웃는 것조차 익숙한 남자였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도착 20분 전'이라는 메시지에 입이 바짝 말랐다. 이럴 경우 무조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고무줄을 찾아 길고 꼬불거리는 뒷머리를 정수리 가까이까지 올렸다. 돌돌 말아 보았지만 내 얼굴은 귀엽지 않고 커 보였다. 그래서 내리고 풀고를 반복했다. 지난번 내가 약속시간을 어겼을 때 그는 내게 은근히 압박을 주었기에 이번에는 결코 늦으면 안 되었다. 도착 2분 전 먼저 내려가 있으리라. 


대게의 남자들은 모른다. 그가 여자를 태우러 3시간 이동하는 동안 여자는 꾸무럭거린 것이 아니라 한 10벌 정도의 옷을 갈아입고 5개의 립스틱을 발라보며(중간에 아이라이너 실패해서 다시 그림) 깜빡했던 제모를 하고 앞머리를 처참하게 자른다는 사실을. 이 모든 것이 그에게 잘 보이려는 갖은 노력이라는 거짓 같은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나란 여자는 2분 전에 그를 맞이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남자는 나를 보고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럴 땐 '나 변한 거 없어?'하고 물어보는 게 정상인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은근슬쩍 이 여자가 못생겨졌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국 해서는 안될 질문을 했고 남자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앞머리 잘랐네? 공효진 같아'


나는 이때 깨달았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사고의 태도가 결과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사실 나는 힘들었다. 엄마의 사고 이후 간병을 하며 고작 몇 달 했다고 몸이 많이 지쳤었고 관절이 아팠는데 피검사를 하자고 했다. 결과가 조금 의심스럽게 나왔고 의사는 내게 걱정하지 말라 했지만 '아직'이라는 말을 붙였다. 손가락은 계속 아프고 건강염려증인가 불안증인가 하는 것은 나를 힘들게 했다. 눈썹 위로 실컷 올라간 위태로운 앞머리처럼 나는 비정상인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내게 말했다. 공효진 앞머리를 가진 여자라고. 뽀뽀할 맛이 나겠다고. 그는 어디까지를 정상 앞머리의 범주로 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떤 상황까지 나를 정상으로 취급할 생각인 걸까. 머리카락이 눈썹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나는 비정상인 걸까. 이 정도의 병을 달고 살고, 이 정도의 약점이 있으며, 이 정도로 슬픔을 가진 상태는 비정상일까. 


우리는 정상이다. 나이가 먹다 보면 사고도 나서 다칠 수도 있고, 이곳저곳 병이 들 수도 있고, 인간한테 차일 수도 있고, 약점을 가지고 살 수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고, 많이 슬플 수도 있다. 스러지는 생은 그저 다른 모양일 뿐. 그게 어떤 모양이든- 우리는 모두 정상이다. 정상. 



글. 강작(@fromkangjak)


추신. 그에게 나는 씽긋 웃었다. '이게 새롭게 유행할 작가 스타일 머리라고' 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