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도, 공부도, 꿈도, 삶도 물론 키스도.
착각을 하고 있었다. 훌륭하고 인기 있어지는 것이 특별해지는 거라고. 그런 의미에서 특별해지는 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이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마침내 행복한 거라고.
행복이라는 인생의 최종 목적을 이루려면 '사랑을 많이 받아야' 했다. 타인이 내게 주는 사랑이 많고 적냐, 몇 명의 타인이 주느냐에 따라 내 행복이 결정되었다. 그러니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걸 하는 것이 결국 인기 있고 훌륭해지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특별해져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특별해지는 건 훌륭하고 인기 있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특별하다는 것은 나다워지는 것이었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꽉 채워진 삶을 사는 것. 그런 의미에서 특별해지는 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결국 행복할 수 없는 것인가?
많은 장미가 아니라 오직 하나의 장미만을 가졌던 어린 왕자를 떠올려 본다.
그 맑고 행복한 얼굴을.
어릴 적엔 친구가 많은 인기녀들을 부러워했다. 저 애는 분명 얼굴이 예쁘고 성격이 좋아서 저만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열등감을 느꼈다.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으니까 얼마나 행복할까-. 얼굴도 안 예쁘고 성격도 조용한 내가 행복하지 않은 건 내 업보였다.
하지만 내게도 몇몇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못생겨도 재미가 없어도 내 곁에서 나와 함께 놀았다. 나 또한 그 친구들과 노는 것이 즐거웠다. 인기 있는 친구와 친구가 되지 못해서 그들과 노는 것이 아니라 여러모로 나와 딱 들어맞는 신발 같은 내 친구가 좋았다. 그녀와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지 못했지만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임이 분명했다. 우리는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그럼에도 어린 내가 완벽하게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는- 행복이 깊이가 아니라 양에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인기 있지 않은 나는 늘 행복의 양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열등감을 가진 채 자랐다.
성인이 되었을 때는 가끔 '꿈'과 대중의 관심과 사랑의 양과 연관 지어 생각하곤 했다.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어야만 내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이 문장을 쓰면서 웃긴 건-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작가가 되면 원고료를 좀 더 받을 수 있고, 새 옷을 사 입거나 정말 잘 나가면 차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꽤 멋진 일이지만- 내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왜냐면 적은 내 친구들처럼 내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에 관해 편지를 나누는 독자들이 있고, 그들은 내게 특별하고 그들에겐 내가 특별하며 우린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소중하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당신도 행복한 사람이다.
모든 게 양이 아니라 깊이가 중요하다. 친구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생도 그렇고, 남자도 그렇고, 꿈도 그렇고, 물론 키스도 그렇고. 그러니까 팔로워 수에 신경 쓰지 말고 이 키스에 집중하라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밤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글. 강작(@fromkangjak)
추신. 그런 의미에서 우린 모두- 그 자체로 특별하고- 행복하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