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with 유랑, 강작
그러니까 말이다. 저 다리 너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안다. 가보고 싶다. 용기를 내서 한 걸음 걸어 나갔을 때, 외줄 다리가 바람에 출렁인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 하얗게 질린 입. 아래를 쳐다보면, 너무 무섭다. 울면서 다시 있던 자리로 뛰어온다. 그리고는 또 저 너머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까 말이다. 저 다리 너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안다.
제 1장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나는 때때로 이유 없이 펑펑 울곤 했다. 소리 내서 울 자신도 없으면서 눈물을 흘릴 때가 꽤 많았다. 당신 때문도 아니요, 지금의 이 상황이 절망적이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하염없이 울음이 났다. 그렇게 펑펑 울고 나면 엄마에게 떼쓰며 울다 스스로 지쳐 울음을 멈추는 아이처럼 코가 빨게 진 후에야, "이제 괜찮아졌어-."라고 말하곤 했다.
지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지는 것이 두려웠다.
숨을 돌리면, 나락으로 빠질 것만 같았다. 먹고살 수 없을 것 같았다.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숨기고 싶은 딸이 될 것만 같았다. 사랑받지 못하는 연인이 될 것 같았다. 결국... 내, 스스로가 사랑하지 않는 존재가 돼버릴 것 같았다. 더 바쁘게, 더 열심히, 더 아등바등 사는 것이- 최선의 위로였다. 그러는 사이 나는 내 한정된 궤도 안에서 꽁꽁 묶이고 있었다. 그것도 모른 체 이렇게 나를 꽉 묶는 것이, 죽지 않는 길이라고 살아왔다.
음악이 너무 가슴에 사무쳐 볼륨을 최대한 높여놓고 그 음악에 무릎 꿇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내 영혼의 깃발 위에 백기를 달아 노래 앞에 투항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지지 않으려고 너무 발버둥 치고 살아왔습니다. 너무 긴장하며 살아왔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사랑에 지고 싶습니다. 권력이 아니라 음악에 지고 싶습니다. 돈이 아니라 눈물 나게 아름다운 풍경에 무릎 꿇고 싶습니다. _15p
제 2 장 산도 보고 물도 보는 삶
욕심과 두려움을 모두 내려놓고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삶을 동경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자신이 없어지면 '정말 그것이 내가 원하는 최선일까?'생각하고, 다시 지금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가끔은 힘들지만, 이게 행복한 거라고' 체념하곤 한다. 하지만 산도 보고, 물도 보는 삶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책을 읽으며 '정말 그것이 내가 원하는 최선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과 사랑, 평화 등 추구하는 모든 희망적인 가치는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곳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듯이 말이다.
물은 낮은 곳을 택하여 가지만 결국은 바다에 이릅니다.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삶을 선택했지만 물론 강을 이루어 면면하고 유장하게 흘러갑니다. 높은 곳에 있는 산도 험한 골짜기 가파른 능선을 지닌 산일수록 더 아름답습니다. _64p
제 3장 사람도 저마다 별입니다
어릴 적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나는 늘 저녁을 기다렸다. 풀벌레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짙은 밤이 되면 언니를 이끌고 마루로 나왔다. 밤하늘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여섯 살, 일곱 살 아이들의 눈은 반짝였다. 밤하늘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수한 천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순간이 너무 벅차서-.
유리창 밑에서 잠을 자려고 이불과 요를 들어 옮기노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음력으로 하순을 넘기면서 점점 그믐에 가까워져 가면 저녁에 달이 안 뜨기 때문에 밤하늘에는 별만 총총합니다. 내가 잠을 자려고 이불을 펴는 곳은 한쪽 벽 전부가 곡면 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중략) 오직 별빛만 반짝입니다. 내겐 너무나 과분한 축복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별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깝고 미안하단 생각이 듭니다. _57p
나도, 당신도, 작가도 별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모여 거대하고 찬란한 무리를 만든다. 그런 모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나'라는 별이, 자연의 없어서는 안 될 일부임을 느끼게 된다. 살아가다 보면, 내 의식 속에 갇혀서 내가 바라보고 생각하고 체계화된 의식 속의 세계가 세상의 중심이고 모든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 무리를 바라본다면, 지금 나의 삶이라고 여기는 이 시간이 '나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적당한가를 두고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엔, 그냥 '삶' 자체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나의' 삶이라는 무거운 욕심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제 4장 첫 매화
누구나 숨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의 내가 그랬다. 내가 왜 그랬지.라는 생각이 휘몰아쳐서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든 이러한 생각에서 위로를 받아야만 정상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처음 이런 고통을 느낀 것은 중학생 때쯤이었는데, 연약한 마음을 위로하고자 공책에 이렇게 썼다.
"나는 오늘 신이 주신 특별 수업을 들은 거야. 네 실수는 특별 수업이라고! 왜 신이 나한테 이런 특혜를 주는지 아니? 그건, 내가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야. 너한테만 그런 특별 수업을 준 거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들어야지. 이렇게 울고 있어선 안돼."
지금 생각해도, 기특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마법의 공책 덕분? 이었는지 나는 아주 많은 특별 수업을 들었고, 이렇게까지 성장했으며 아직 훌륭한 사람이 못 된 것을 보니 더 많은 특별 수업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매화나무는 큰 상처를 입은 나무라는 것입니다. 굵은 가지가 여러 군데나 잘려나간 채 덜덜 떨며 겨울을 보낸 나무라 했습니다. 상처받은 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일찍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후배의 편지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처 없이 어찌 봄이 오고,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트겠는지요."_131p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
책은 단순히 구구 산방의 들국화와 어린 벌레들, 하얀 눈 위의 새들의 발자국에 대해서만 담고 있지 않다. 우리가 다른 세계로 건너가 보고 싶은 것들, 찾고 싶은 마음들이 현실 그대로, 혹은 이상적으로 적혀있다. 울음을 멈춘 나는 아직 여기 외줄 다리 너머에서 그곳을 바라본다. 작가는 그곳에서 기다릴 뿐이다. 그 길을 걸어 건너가야 하는 것은, '나'다. 동경하는 삶은 그곳에 있고, 나는 갈 수 있다. 언제나. 갈 수 있다.
2016.05.31
강작
책은 유랑님께 보내어집니다. =)
마음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