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에게
연달아 편지를 쓴다고 귀찮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심란할 때 글을 쓰는 건 어쩔 수 없는 작가들의 천성이니까요. 부탁하건대 그냥 읽어주세요. 아마 제 심란의 크기가 깊다면, 좋은 글이 나올 거예요.
어제부터 keshi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어요. 전주가 크리스마스와 어울린다고 느껴지고 그의 겨울바람 같은 목소리가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아요. 신지의 음악 취향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Olivia Dean의 Dive도 좋네요. 어쿠스틱 버전은 라이브 공연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요.
어머나, 벌써 크리스마스네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이 동화 같은 기념일이 저에겐 너무나 특별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퇴색이 되어버렸네요. 차라리 지난번처럼 눈이 엄청 많이 내렸으면 좋겠어요. 하늘에서라도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올해 내가 무슨 일을 잘했나 생각해 봤어요. 이쯤 되면 다들 생각해 보잖아요. 워워- '잘했나'라는 기준은 '스스로가 원하는 삶'에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 절대 '잘했나'의 기준이 '현 세상이 정해놓은 올바른 삶'이 아니라는 거예요! 정확하게 다시 물을 게요. "올해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했나요?" 신지도 생각해 보세요.
현 세상이 정해놓은 올바른 삶에 기준을 맞추면, 저의 24년은 완전 별로였어요.
- 우선 결혼 생활이 엉망이었어요. 저는 남편의 단점을 포용하지 못하고 지쳐버렸어요. 그러므로 현 세상이 칭찬하는 마음이 넓은 사람도, 착한 아내도, 걱정 안 주고 사는 효녀도 되지 못했어요.
- 우울과 슬픔에 잠식되어 게을러졌고, 멋진 일들을 더 많이 만들지 못했어요.
- 저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계속해서 미워했어요. 미워한다는 건 가장 어리석은 감정이라고들 하죠.
- 재산을 원하는 정도까지 만들지 못했어요. 부정적인 기분을 탓하며 의지 박약한 모습을 보였죠.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건 데 저는 '올바른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리고 '원하는 삶'이 '올바른 삶'이 되도록 만들고 싶어요.
스스로가 원하는 삶에 기준을 맞추면, 저의 24년은 최고는 아니지만 칭찬을 받을 만해요.
- 우선 결혼 생활에 있어서 저는 더 이상 울고 있는 저에게 '사랑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 '제가 한 선택에 대해 노력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더 이상 울고 있는 저에게 잘못을 반성하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라고 겁을 주지도 않아요. 미래가 어떻든 현재의 제가 울지 않고 부담도 느끼지 않고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사랑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 '제가 한 선택에 대해 노력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보다 더 원하는 삶이에요. 이기적이라고요? 제가 울지 않고 부담도 느끼지 않고 편하게 사는 삶이 왜 이기적인 것일까요.
- 저는 우울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제 꿈을 위해 조금의 일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정말 행복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계획했고요.
- 미움이 가장 어리석은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미움은 내가 상처받아 아파하는 비명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나의 미움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용기를 내기로 했어요.
무엇보다 잘한 일. 집에서 많이 울었던 일. 우느라고 더 멋진 일을 하지 못했지만, 정말 많이 우울해했고 울었기 때문에 저는 깨달았어요. 더 이상 저를 울게 하면 안 되겠다는 사실을요. 반성하고 성장하고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좋은 일이고 다 알고 있지만, 저는 어처구니없는 어린 울보가 된 게 아니에요. 우리는 알아야 해요. 모든 걸 다 떠나서 계속 눈물이 나는 건, 자신이 모르는 자신이 너무나 힘들다는 사실을요. 다 필요 없고 우리가 우리를 구해야 해요. 그게 가장 옳은 일이고, 그게 가장 큰 재산이에요.
작가의 인생이 순탄치 않다는 건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죠. 저는 아직까지 불량 작가라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저도 아마 꽤 괜찮은 작가가 되려나 봐요. 많은 글을 쓰고 싶어요.
Merry Christmas.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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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벗
강작.
2024.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