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고맙지만, 제 인생은 제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의 추천에 약하다. 식사를 하러 가서 메뉴를 고를 때 마음속에 분명 먹고 싶은 것은 쌀국수인데 친구가 돈가스가 맛있어 보인다고 하면- 그래? 하고 돈가스를 주문한다. 옷을 사러 가서도 비슷하다. 나는 분명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섹시한 스웨터를 사고 싶었는데 남편이 역시 여보는 셔츠가 어울려 하면 그래? 하고 어느새 셔츠를 계산하고 있다. 웃긴 것은 혼자 있어도 점원이 '저기.. 이게 맛있어요.' 하면 역시 점원의 의견이 최고지-하고 굳게 믿어버린다. 그러고 나서 만족하면 좋은데, 늘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아.. 쌀국수도 맛있었을 텐데. 섹시한 스웨터를 한번 입어보고 싶었는데.'하고 말이다.
'저는 이거요!'하고 당당하게 외치며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이 부럽다. 또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내 또래 그러니까 서른 중반 이상의 여성들보다 현재 이십 대들이 좀 더 그렇다. 우리는 학교에서 단체로 추천을 귀담아들으라는 교육을 받았던 것일까?
실은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부끄럽다. 소위 작가라면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도 잘 표현할 줄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에 못 미치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어 수정하고 싶은 부분을 알고, 수정해 나가는 이! 그런 사람이야 말로 성장하는 사람이 아닐까. 어제 일은 확실히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보안 안경을 맞추러 남편과 함께 안경점에 갔다. 안경점 외벽엔 신학기 반값 할인!이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안경점 문을 열었다. 수많은 안경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 점원이 내게 와 무엇을 하시려고 하냐 묻길래, 보안 안경을 찾고 있고 되도록이면 부담되지 않은 가격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점원은 나와 남편을 문 앞 쪽으로 데려가 1~4만 원짜리 안경테 중에 고르라고 권해주었다. 그리곤 요즘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테라며 투명색 뿔테를 내게 바로 써보라고 했다. 나는 홀린 듯 그 테를 받아 써보았다. 거울 속 나를 보니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색한 것 같기도 했다. 남편에게 보여주니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점원에게 얼굴을 돌리니 점원은 활짝 웃으며 자신의 추천에 흡족해했다. 하지만 나라는 여자는 그 안경테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 후로 약 스무 개 정도의 안경테를 쓰고 벗고 쓰고 벗고 했다. "눈매가 예쁘셔서 둥근 테가 어울리는 것 같아요.", "투명색이 역시 깔끔하고 예쁘신데요." 점원은 고르기 힘들어하는 내게 다시 한번 베스트 테를 권했다. 남편은 이미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고, 점원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대략 1분 정도인 것 같았다. 50초.. '역시 점원이 추천해 준 걸로 해야 후회하지 않을까?' 40초.. '미안한데 그냥 아무거나 살까?' 30초.. 투명색 베스트테 다시 껴봄 20초 마지막으로 두 개만 더 껴보며 점원 눈치 봄 10초 결정함!
그렇게 나는 내 마음에 드는 회색 뿔테를 결제했다. "저는 이게 마음에 드는 것 것 같아요." 하고 싱긋 웃으며. 실은 처음부터 회색 뿔테가 사고 싶었지만 점원의 적극 추천으로 흔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추천을 마다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지켜냈다. 아쉬움이 없었다. 홀가분하고 좋았다. 다른 사람들이 추천하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추천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안경 하나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른 것이지만, 내게는 작고 확실한 반항이었다. 물론 점원이 추천해 준 투명색 베스트 테가 내가 고른 회색 뿔테보다 내 얼굴을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고른 회색 뿔테를 볼 때마다 나에게 만족스러울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나의 삶이 만족스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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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7
작지만 확실한 반항일지
글 강작 insta. @anyway.kkj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