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에 다시 시작하는 책육아
네 생일이니까 책 한 권 골라.
아이들을 책과 친하게 만드는 우리 집의 규칙 1
지난 화요일은 우리 집 귀요미 4학년 예지의 생일이었다.
예지가 생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 가족 모두는 주변 쇼핑몰로 향했다.
밥만 먹기 아쉽다기에 볼거리도 있는 쇼핑몰로 간 것이다.
같이 구경할만한 문구 소품류 가게 artbox에 들러서 작은 장난감들을 하나씩 사주고 식당으로 갔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집에 가기 전에, ‘서점은 꼭 들러야지.’ 모두를 데리고 서점으로 갔다.
다들 크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사실 나는 일부러 서점이 함께 있는 쇼핑몰로 식사 장소를 정했다!
아이들은 서점에 들어가자 이것저것 둘러본다.
“네 생일이니까 책 한 권 골라. 엄마가 사줄게.”
아이들에게 서점을 마음껏 구경하게 하고,
남편과 나는 책 제목들을 보며 ‘[똑똑하게 화 다스리는 법] 이건 너한테 필요한 책이네, 이거 너 꼭 읽어라.‘ 하면서 구경도 하고 새로 나온 신간도 살펴보았다.
역시나 서점에 오자마자 큰 딸은 이미 집에 여러 개 있는 IVE앨범을 사겠다고 조른다. 요즘 아이돌들은 한 가지 앨범을 왜 이렇게 여러 버전으로 만드는지, 다양한 포토카드와 굿즈들을 모으고 싶은 딸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번 앨범은 이미 많으므로 안된다고 거절한다.
5학년인 큰 딸 지민이는 그 바람에 아주 화가 많이 났다. 책도 안 사겠단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고, 작은 딸은 만화책을 골라도 되냐고 묻는다.
“물론 되지. 생일이니까 네가 원하는 책을 골라.”
작은 딸은 새로 나온 백앤아 만화책을 고른다. 결제하고 나서도 어린이 신간 구역을 구경하며 아이들과 어떤 책이 나왔는지 살펴본다.
생일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선물은 따로 주고, 책도 꼭 사준다. 책을 사줄 때도 서점에 들러서 사주는 걸 좋아한다.
굳이 책을 사겠다고 하지 않더라도, 읽을 마음이 없어 보여도, 이런 특별한 날 서점에 들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아이들을 책과 친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서점을 자주 들르고 새로운 책들을 구경하고, 내가 봤던 책, 요즘 유행하는 책들을 보는 것은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과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다. 요즘 아이들은 관심을 빼앗길 만한 요소가 너무 많다. 유튜브도 그러하고 핸드폰 게임도 그렇고, 웬만한 티브이 프로그램도 본방을 못 봐도 언제든지 몰아 보기 쉽다. 심심해서 책을 읽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다. 이제 그림책을 졸업한 아이들이 책과 멀어지지 않게 하려면 부단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그러기 위해서 특별한 날에는 서점으로 향한다. 어차피 하는 외출에 서점을 끼워 넣으면 아이들은 책구경 가는 것을 외출 중의 한 루틴으로 생각할 것이고, 서점과 책과 마음의 벽을 허물 것이다.
(책을 안 사도 요즘 대형 서점에는 구경할 게 아주 많다.)
그리고,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가기 위해서다.
이제 4, 5학년인 두 딸은 벌써 사춘기 증상(?)을 보인다. 아직 아기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부쩍 반항심이 생겨났다. 스스로 결정해서 하고 싶고, 엄마의 결정이 마음에 안 들거나 자기 논리에 맞지 않다고 반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아이들과 사춘기가 한창일 때도 우리를 연결시켜 줄 무엇이 필요하다. 특별한 날에는 서점에서 같이 책을 골라 사는 우리 가족만의 규칙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물론 모든 날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중에 어느 날을 우리 아이들은 기억할 것이다.
엄마랑 지지고 볶고 싸워서 냉전 중이더라도 이 날에는 엄마를 따라나설 것이다. 엄마가 슬쩍 내미는 책 제목이 [그래도 사랑해] (내가 급 지은 가제) 같은 제목이라면 웃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에 책이 첨가된다면 두말 나위 할 것 없이 좋을 것이다.
또, 책은 좋은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우리는 좋은 경험을 할 때 같이 있던 것들을 좋게 인식한다. 예를 들어 나에게 따뜻한 할머니였다면 할머니의 담요, 할머니의 냄새를 좋은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친구와 같이 강릉에서 너무 즐거운 여행을 했다면 강릉이라는 지역이 좋게 인식될 것이고 그때 입었던 옷을 보면서도 좋은 기억이 떠오를 수 있다. 그래서 생일은 아이들이 이미 좋은 것으로 인식하므로, 생일에 책을 연관시켜 주려는 것이다. 생일이나 특별한 좋은 날에 꼭 책을 사는 경험을 해서 책 사는 경험이 좋은 경험임을 자신도 모르게 인식되도록 한다. 그래서 고르도록 할 때도 ‘좋은 날이니까 네 마음대로 책을 골라라.’하고 붙여서 말해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책을 마음껏 골라 사는 일이 특별하고 좋은 경험이라고 인식할 것이다.
특별한 날(좋은 경험) ->> 특별한 날 + 서점에서 같이 책 사기 (좋은 경험) ->> 서점에서 책 사기 (좋은 경험)
그렇게 아이들은 엄마의 큰 그림 속에 있다. 핫핫핫.
오늘의 시도는 절반의 성공이다. 아이들이 사달라는 것이 있었는데 못 샀기 때문에 완전히 즐거운 경험으로 끝나지 않아서다.
그러나 항상 개선의 여지는 남아있다.
다음에 서점으로 출발할 때부터, ‘네가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용돈을 챙겨, 엄마는 네 생일이니까 책 한 권을 사줄 거야. 다른 건 못 사줘.’ 하고 미리 약속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오늘도 다 큰 아이들을 위한 책육아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