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인가 무기력인가
어떻게든 안 해도 될 이유를 찾는다.
내가 우울해서인지 무기력해서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없이 침대 속으로 핸드폰과 함께 파묻혀서 의미 없는 손가락 운동만 하고 있다.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겠다고 원격수업으로 학위를 하나 더 따는 것을 신청해 놓고는
출결 채우는 게 힘들어서 화면만 켜놓고 공부는 안 하고 있다.
이건 그냥 자격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면서 열심히 안 해도 될 이유를 찾아낸다.
시험이 객관식이라니 과락은 안 되겠지 생각하면서 스킵한다.
설거지와 빨래를 해야지 생각하고는 새 밤과 새 아침을 맞았다.
태풍도 오니 빨래는 나중에 하고 설거지도 모아서 해도 된다는 이유를 떠올려본다.
엄마의 귀찮음이 한 움큼 묻어난 대충 그 자체의 아침상을 받고, 큰 아이는 한 술도 뜨지 않고 학교에 갔다.
나도 안 먹고 둘째도 안 먹으니 굳이 새로운 메뉴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내 안이한 생각의 결과다.
무기력하게 드러누워 핸드폰만 보고 있는 엄마를 보는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그냥 우울하고 무기력하면 대충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면서 집이라도 돌볼 줄 알았는데, 더더욱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더 이상 누워있기에도 핸드폰 게임도 너무 지루하다.
이것이 아무 의미 없는 일임을 알고
사고를 정지시키는 행동임을 안다.
그래도 하고 있다. 의미 없이 손가락을 놀린다. 한없이 연약해진 의지가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속삭인다.
'이제 그만하자. 의미 없다.'
그래도 그냥 그대로 있다. 오늘 외출해야 될 일이 있음을 알고 겨우 몸을 일으킨다.
이토록 무기력하고 이토록 정신은 정리되어 있지 않다.
거실의 난잡함이, 식탁 위의 어지러움이 내 머릿속 그대로다.
그렇지만 밖에서 일을 해낼 땐 그래도 해낸다. 물론 집에 와선 미룰 수 있는 대로 미뤄논다.
나의 우울과 무기력은 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아니면 그 정도는 아닌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