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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Nov 21. 2023

우울증에게 고맙다

나에게 쉼을 주어서

 내가 특별히 힘들었다거나 과한 고난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살이나 자해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모두 심각한 우울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죽을 만큼 힘들 때도 있고, 그 힘듦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당연히 있으니까.


다만 나는 행복의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춘 내가, 힘들만한 외적인 이유가 없는데 힘들어한다는 자체가 고난이었다.

가정도 행복하고 큰 문제도 없는데 왜 나는 슬프고 우울한가. 그런 생각이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하게 했고, 나 자신을 돌볼 기회를 박탈했다.


 그래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기간이 나의 부정적 감정을 받아들이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우울함과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후, 건강하게 우울해하고, 내 슬픔에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우울증이 완전히 낫거나, 갑자기 불안해지는 게 아예 없어진 게 아니지만 그 불완전한 나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불완전한 엄마로서의 나도 견뎌낼 수 있게 했다.


 아 나는 우울하고 비정상적인 인간이구나. 모지란 인간이구나 깨닫고서 나아졌다.

 나는 더는 나아지려고 더 잘하려고, 더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기보다 지금 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즐겁게 하려고 한다.

 노력해서 잘 해내는 것을 바라기보다 그저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한다.


 나에게 쉼을 주고 힘을 주고 여유를 준 우울증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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