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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노벨상’을 받으려면

by 고똘

얼마 전 ’구글 리서치‘의 행사에 다녀왔어요. 구글 리서치는 ‘0에서 1을 만드는 연구’에 집중하는 연구기관입니다. AI 자체 개발보다도 AI를 과학이나 의학같은 분야에 적용하는 일, 양자컴퓨터같은 미래과학을 것을 연구합니다. 부정기적이지만 거의 매년 장소를 바꿔가면서 여는 행사인데, 기분 탓이었을까요 이날 행사장은 유독 활기가 넘치고, 의욕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도 단단하고 무심해보이는 것이 멋졌어요.


최근에 구글 리서치가 눈부신 성과를 많이 냈기 때문입니다. 이날 구글 리서치는 ‘구글 어스(Earth) AI’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놨습니다. 과거에도 ‘구글 어스’로 전 세계를 온라인 탐방할 수 있었는데, 이를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지도 위성 등 다양한 데이터와 AI를 합쳐 이제는 자연재해도 예측해주고, 어디에서 어떤 사고가 났고 피해규모가 어떤지도 예측해 준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에있는 데이터센터를 다 찾아줘”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너무 쉽지요. 며칠 전엔 양자컴퓨터에 관한 새로운 발표도 있었습니다. 약 한 달 전엔 암을 연구하는 AI 딥소메틱도 발표했지요. 내용은 어려우니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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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좋은 소식은 노벨상 수상이었습니다. 지난 10월 분야별 노벨상 수상자가 연달아 발표됐는데, ‘구글러’ 2명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어요. 양자컴퓨터 연구 덕입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수상이고, 이제 구글은 기초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무려 5명이나 배출한 기업이 됐습니다.


구글 리서치 총 책임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눈부신 성과를 내는 묘책, 노벨상 수상자를 자꾸 배출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오래 여러 말을 했지만, 기억에 남는 몇 마디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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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상자들은1980년대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40여년 전 그들의 연구 위에 지금 우리의 연구가 있습니다"

"구글은 단기 성과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래 연구해야 성과가 나는 일을 더 좋아합니다"

짧게 요약하면 시간의 축적입니다. 그냥 묵묵히 시간을 들여 실패하고 다시하고 발전시키면된다는 것. ‘비결’을 물어보러 갔는데, 비결같은건 없다는 대답을 들은 셈입니다. 공부 잘하는 비결이 뭐에요? 오래 공부하세요! 하는 맥빠지는 답. 예상은 했지만 그의 답변은 진부하고 흔했습니다.


기시감을 더 느꼈던 이유는 비슷한 시기 비슷한 얘기를 다른 데서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 인근의 UC버클리대는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 중 하나입니다. UC버클리는 실패하기 쉬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를 적극 지원합니다. 이런 연구를 위한 장학금과 펀딩이 따로 있고, 미 국립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해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최신 장비와 연구 인프라를 사용합니다.


그 결과는요, 올해만 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버클리 구성원 중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이제 28명, 동문까지 합치면 60명이라고 합니다. 학교가 좁고 언덕에 위치한 탓에 주차난이 심해 일종의 특혜로 ‘노벨상 수상자 주차장‘이 따로 있는데, 노벨상 수상자가 너무 많아서 노벨상 수상자 주차난이 생길 지경이라고 구성원들은 행복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고속성장의 신화를 가진 한국은 시간의 힘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진부할만큼 성공을 이루기위한 정답임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면 성공하더라도 ‘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한번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과 9수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 사회는 후자는 덜한 성공, 오랜 수험생활에 베베꼬였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나름의 경험과 시간알 쌓고있었을텐도 말이죠. 수 십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연구를 하고 있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은 “무모하다”고 비웃음을 살 각오를 해야합니다. 정권마다 ‘유행하는 과학’이 바뀝니다. 유행하는 과학이라니, 정말 형용모순같은 말입니다. 스타트업 지원금이든 장학금이든 연구기금이든 성과로 당장 증명해내지 못하면 돈이 끊깁니다. 그리고 이런 세태와 한국의 기초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0명이라는 사실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https://www.chosun.com/opinion/correspondent_column/2025/10/13/EPAV2EHSWBFCXMNVABOQNQ2GYU/

한국사회까지 갈 필요도 없이, 나부터도 시간의 힘을 경시함을 반성합니다. 즉답적인 사람이라, 늘 무조건 빨리, 눈앞에 당장 결과가 나오길 바라왔어요. 그런 조급함이 발전하는 원동력도 됐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에 ‘진짜’ 자신감과 여유가 생겼을 때엔 늘 시간이 축적이 있었습니다. 실패와 뻘짓의 경험이 돌고 돌아 자산이 됐다고 느낀 적이 있지않나요. 너무 얻어내고 싶었던 어떤 능력이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얻어지는 경험을 하지않았나요.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의미를 알 수 있는 일들도 많습니다. 365일 중 365일 얼굴을 맞대더라도 1년지기 친구는, 1년에 두번 겨~우 만나 서로 폰만 보다 헤어지는 17년지기 친구를 결코 이기지 못할 겁니다. 시간이 쌓인다는 것은 그런 것 같습니다.


‘줌아웃’해 크게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있는 유럽이 그들이 쌓아온 레거시로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엄청난 규모의 경제로 다른나라의 10년에 할 기술개발을 1년이면 해버리는 중국이 그래도 아직까지 2인자인 점도 시간의 축적과 관련 있습니다.



IMG_7112.jpg 떨어져있지만 그녀와도 시간을 쌓고 있다 나혼자

처음 미국에 와서도 조급함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빨리 적응해 성과내고 싶었기에, 당시 일기를 보면 정말 정신사나워요. 그래서 빨리 적응했나요? 그랬다고 믿고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결국 시간을 성실히 쌓은 뒤 임기의 4분의 1 지점을 앞둔 지금에서야 또 새로이 보이는 것들이 있기에.


그러니 이제 의식적으로 그러지말기로 합니다. 빠른 성공보단 더 크고 견고한 성공을 위해 그냥 시간을 축적하기로 합니다.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이 비결도 묘책도 지름길도 없다고 하잖아요? 일단 열심히 해야겠지만, 릴스보는 헛짓거리하는 실패한 시간조차도 내안에 무언가를 쌓고 있다고 여기며 불안해하지 않겠습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일들을 묵묵히. 미결 상태도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견디며. 그렇게 쌓인 시간은 반드시 나에게도 상을 주겠죠?��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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