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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다른 태국> 악어의 바다

나콘사완 | 1

by 강라마

태국 중부, 나콘사완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들은 이름은 ‘부앙 보라펫’이었다.

지도 위에 드넓게 펼쳐진 호수는 마치 바다처럼 보였다.

현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악어의 바다’라 불러왔다.


호수의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탁 트인 풍경은 일상의 소란을 잊게 한다.

바람은 수면을 스치며 작은 물결을 만들고, 철새들의 울음이 멀리서 이어진다.

처음 이곳을 마주했을 때, 나는 호수 자체보다도 그 안에 겹겹이 쌓여 있는 이야기에 더 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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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앙 보라펫은 한때 수천 마리의 샴악어가 서식하던 곳이었다.

공룡 시대부터 살아남아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이 파충류는 태국의 강과 호수를 지배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야생 개체 수는 급격히 줄었고, 결국 부앙 보라펫에서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전설처럼 악어의 호수를 기억하게 되었지만, 실제 모습은 더 이상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태국은 이 호수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려 했다.

사육장에서 번식한 샴악어를 부앙 보라펫에 방류하는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악어의 바다’라는 이름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미래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런데 내게는 단순한 전설로만 남지 않았다.
호수 주변 다리 밑을 걷던 순간, 저 멀리 수면 위에 낯선 형체가 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아닐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마음 한쪽은 두근거렸다. 기대와 의심이 뒤섞인 채 조금씩 다가가자, 물 위로 얼굴만 내민 채 고요히 숨을 고르고 있는 한 마리의 악어가 또렷이 보였다.

순간, 숨이 막히는 듯했다.
내 눈앞에 살아 있는 야생 샴악어가 있었다.

오래전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존재가 여전히 이 호수 어딘가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 짧은 마주침은 부앙 보라펫이라는 이름을 내 마음 깊숙이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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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의 부앙 보라펫은 악어보다 철새와 물고기의 천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철새 도래지로 지정된 이곳에는 계절마다 수천 마리의 새가 모여든다.

호수 주변의 마을은 새를 구경하려는 이들로 활기를 띠고,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삶도 호수와 맞닿아 있다.

나는 호숫가에 앉아 한동안 수면을 바라보았다.

철새가 날아오르고 바람이 호수를 건너는 사이, 다리 밑에서 보았던 그 한 마리 악어의 실루엣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부앙 보라펫은 단순한 호수가 아니라, 태국의 자연이 품은 기억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인간이 파괴한 흔적과 되살리려는 노력이 교차하는 곳, 그리고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침묵을 간직한 호수.

부앙 보라펫은 그렇게 나를 붙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수면 위에서 나는 태국이 지닌 가장 원초적인 얼굴을 만난 듯했다.

‘악어의 바다’라는 이름은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형의 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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