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 4
방콕의 중심부에 서 있는 왓 사켓을 멀리서 보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평화로운 사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언덕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내게는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찾아와 마음을 내려놓았던, 특별한 장소다.
태국에 살기 시작한 지 10년 전, 처음 이곳을 올랐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鮮明하다.
방콕은 평평한 도시라 산이 거의 없다. 그래서 건물이 아닌 ‘높은 곳’을 찾자면 이 인공산, 황금산이 유일했다.
인공산이라 해도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특별했고, 무엇보다 언덕 위에서 맞이한 고요함은 잊을 수 없었다.
마음이 힘들거나 안정을 찾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이곳을 찾았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작은 종들의 맑은 소리가 사방을 채우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무게가 가볍게 내려앉는 듯했다.
그 평안함을 나 혼자만 느끼기엔 아쉬워, 스냅사진 작가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손님들과 함께 이곳을 찾기도 했다.
렌즈 너머로 담기는 황금탑과 그 아래 사람들의 표정 속에 내가 느꼈던 위안과 따뜻함을 전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한국인 가운데 이 사원을 가장 많이 찾은 사람 중 한 명일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오르내린 덕분에 사원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내 얼굴을 기억할 정도였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황금산은 나에게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예전에는 단순히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곳으로만 여겼지만, 이번에는 태국의 공간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역사적 배경을 더 깊이 파고들게 되었다. 라마 3세 시대에 처음 불탑 건설이 시도되었다가 방콕의 무른 땅이 무너져 흙더미만 남았고, 라마 5세 시대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황금 불탑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편에 숨은 이야기, 19세기 콜레라 유행으로 수천 명의 시신이 이 언덕 아래에서 화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사원의 출구는 두 곳이다. 나는 늘 밝은 분위기의 출구로만 다녔다.
다른 한쪽, 독수리 형상이 새겨진 출구는 어쩐지 음산하고 무서워서 피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찾으며 알게 되었다.
그 형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19세기 방콕을 휩쓸었던 콜레라 전염병으로 죽어간 수많은 시신을 실제로 쪼아 먹던 독수리들의 풍경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그저 두려움으로만 느껴졌던 조각상이, 이제는 한 시대가 겪은 고통과 상실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내가 멀리했던 출구가, 방콕의 아픈 기억을 증언하는 또 다른 문이었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빠뚜피(귀신의 문)’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성벽이 사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그 문을 통해 죽은 자들이 도시 밖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바로 이곳, 왓 사켓이 마지막 종착지였다.
그 옛 성문이 있던 자리는 지금 삼란랏 교차로, 방콕의 분주한 도로 위에 겹쳐 있다.
뜻밖에도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팟타이 맛집인 팁사마이 근처였다.
수많은 여행자가 모여드는 화려한 장소 바로 곁이, 과거에는 죽음을 향한 길목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깊이 놀랐다.
어두운 역사를 품은 이 언덕은 오늘날 누구보다 밝게 빛나고 있다.
‘푸 카오 통 축제’ 때 수천 개의 등불이 정상에 오르는 장관은 죽음을 품은 공간이 어떻게 삶의 희망으로 바뀌었는지를 웅변한다. 나는 여전히 이곳을 오를 때면 마음이 정리되고 안정된다.
그 사실 자체가 내겐 기적 같다.
왓 사켓은 방콕의 역사와 아픔을 담고 있는 동시에, 내 삶의 기억과 위안을 간직한 곳이다.
죽음의 문에서 시작해 황금빛 정상에 이른 이 언덕은 도시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