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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다른 태국> 붉은 그네

방콕 | 3

by 강라마

방콕에 오래 머물러도, 늘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 풍경이 있다.

내게 사오 칭차, 흔히들 자이언트 스윙이라 불리는 ‘거대한 붉은 그네’는 그런 풍경이었다.

차를 타고 올드타운을 달리다 보면 언제나 시야에 들어왔지만, 그저 “크구나” 하고 넘기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해질 무렵, 석양이 올드타운의 지붕들을 붉게 물들이던 순간, 나는 처음으로 그 아래에 서 보았다.

멀리서 보던 그것은 단순한 구조물 같았다.

그러나 발밑에서 올려다본 두 기둥은 마치 하늘로 뻗은 문 같았다.

20미터가 넘는 높이를 따라 고개를 젖히자, 순간 내가 땅 위에 서 있다는 감각이 사라졌다.

기념물이라기보다, 인간이 감히 신에게 닿고자 세운 도전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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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1784년, 라마 1세 시대에 세워진 이 붉은 그네는 원래 힌두 브라만 의식의 무대였다.

젊은 사제들이 이곳에 매달린 거대한 그네에 올라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매달린 금주머니를 손에 넣으면 그 해의 풍년이 약속되었고, 실패하면 공동체 전체가 불안에 휩싸였다.

신의 축복을 끌어내기 위해 목숨을 건 도약.

그 시대 농업이 곧 생존이었던 만큼, 의식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목숨을 건 행위는 언제나 위험을 불렀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추락했고, 어떤 이는 돌아오지 못했다.

1935년,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의식은 결국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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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남은 것은 붉은 기둥뿐, 신에게 몸을 던지던 그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래서 그 아래에 서서 하늘 끝까지 치솟은 기둥을 올려다보니 등골이 서늘했다.

“이 높이에서 그네를 타고 금주머니를 붙잡았다니.”

상상만으로도 아찔했지만, 동시에 그 절박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굶주림과 풍년이 삶과 죽음을 가르던 시대, 사람들은 두려움보다 간절함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순간 붉은 기둥 사이로 석양이 스며들었다.

하늘은 보랏빛과 주홍빛으로 물들고, 멀리 왕궁의 실루엣이 겹쳐졌다.

죽음을 무릅쓰던 의식의 현장과, 지금의 평화로운 저녁 풍경이 한 화면에 포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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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 | Thailand_Bangkok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오늘날 사오 칭차는 관광객들의 사진 배경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그 역사를 알고 다시 보니,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었다.

삶과 죽음을 걸고 신에게 닿으려 했던 인간의 흔적, 그리고 시대 변화 속에서 사라진 의식의 유물.

붉은 기둥은 여전히 하늘로 곧게 뻗어 있다. 그 아래를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그곳에서 과거의 간절함이 아직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방콕 올드타운 중심에서 만난 사오 칭차.

내겐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신앙과 두려움, 풍요와 희망이 켜켜이 남은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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