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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다른 태국> 반크루아와 실크왕

방콕 | 2

by 강라마

방콕 중심부, 시끌벅적한 거리를 조금 벗어나면 한적한 운하 옆에 자리한 ‘짐 톰슨 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 세월 사진 촬영을 위해 수없이 오갔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다른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

그동안은 단지 배경으로만 바라봤던 이 집이, 어느 순간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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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톰슨. 태국 실크를 세계 무대에 올린 인물. 동시에 1967년 말레이시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나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더 궁금했던 건, 그가 남긴 공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였다.

집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이야기였다.

아유타야 시대 목조 가옥 여섯 채를 해체해 옮겨온 뒤, 햇빛의 방향과 바람의 흐름을 계산해 다시 조립한 건축물.

디테일 하나하나가 집착에 가까운 미학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원 곳곳에는 열대 식물이 어우러지고, 연못 위로 비치는 빛마저도 그가 의도한 풍경 같았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곳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한 사람이 완벽을 꿈꾸며 빚어낸 또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이 집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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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면, 운하 건너편에 ‘반크루아(Ban Krua)’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18세기 후 아유타야가 무너진 뒤 이주해 온 무슬림 공동체가 정착한 곳으로, 대대로 실크 직조의 맥을 이어온 이들의 삶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직접 수동 베틀 앞에 앉아 실을 짜는 장인을 만났다.

나무 북이 규칙적으로 오가며 만들어내는 소리는 묘하게 음악처럼 들렸다.

빛을 머금은 색실이 날줄과 씨줄로 얽히며 직물이 되어가는 과정은 한 장의 풍경화 같았다.

장인들은 흔쾌히 과정을 보여주며, 오래된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끝에서 짐 톰슨의 성공이 가능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태국 실크의 부흥은 그 한 사람의 성취가 아니라, 이 마을과의 협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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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으로 돌아와 정원 벤치에 앉았을 때, 문득 그의 실종이 떠올랐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한 남자의 흔적. 사고였을까, 음모였을까. 정답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있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이곳에는 여전히 그의 집이 남아 있고, 반크루아의 베틀은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번에야 비로소 이 공간들을 ‘배경’이 아닌 ‘이야기’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방콕의 한켠, 실크의 리듬 속에서 짐 톰슨은 아직도 살아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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