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고 보면 다른 태국> 다문화의 항구

방콕 | 1

by 강라마

강은 도시를 지탱하는 뼈대이자, 이야기를 품은 책장 같다.

방콕을 가로지르는 차오프라야 강도 그렇다.

1767년, 아유타야가 불타 무너졌을 때, 수백 년의 영광은 잿더미가 되었지만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강은 새로운 나라의 숨을 다시 불어넣는 그릇이 되었다. 그 시작이 바로 톤부리였다.

P1000253.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탁신과 강변의 도시

아유타야가 무너진 지 1년 뒤, 탁신왕은 강변의 톤부리를 새 수도로 삼았다. 혼란을 수습하고 나라의 기틀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왓 아룬을 중심으로 한 강변의 사원과 마을을 걷다 보면, 그 시절 이곳이 다시 태어난 수도였음을 체감할 수 있다.

왓 홍랏따나람은 그 흔적 중 하나다. 아유타야 말기, 중국계 상인 홍이 세운 사원은 톤부리 시대로 넘어오며 탁신왕의 후원을 받았다. 사원 안에는 지금도 탁신왕을 기리는 사당이 남아 있다. 전쟁터로 나가기 전, 몸을 정화했다는 성스러운 연못도 함께. 도시의 흥망성쇠와 함께 이 강변의 사찰은 여전히 주민들의 신앙과 일상의 중심에 서 있다.

P1000159.jpg
P1000173.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177.JPG
P1000178.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181.JPG
P1000190.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196.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201.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198.JPG
P1000208.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216.jpg
P1000205.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219.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강변의 다문화 풍경

그러나 톤부리의 이야기는 탁신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훨씬 이전부터 이곳은 강을 따라 모여든 수많은 공동체들의 집합지였다.

16세기 초, 포르투갈이 아유타야 왕국과 최초로 교역을 시작하면서 서양식 무기와 항해술, 종교가 강을 타고 들어왔다. 그 흔적은 지금도 산타크루스 성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붉은 돔이 인상적인 이 성당은 250년 전, 톤부리 재건과 함께 세워진 포르투갈 공동체의 상징이다.

강변의 작은 마을 쿠디찐은 그 다층적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름부터 불교 승방 ‘쿠디’와 중국인을 뜻하는 ‘찐’에서 비롯되었고, 여기에 포르투갈인과 태국인까지 더해져 다문화 공동체로 발전했다. 지금 이곳을 걷다 보면, 태국식 가옥과 포르투갈식 벽돌 건물이 나란히 서 있고, 골목 어귀에서는 수탉 장식이 과거의 흔적을 이야기한다.

250년 동안 이 마을 사람들은 언어와 혈통이 섞였지만, 신앙과 전통을 지켜왔다. 지금도 가톨릭 축일에는 마을 전체가 작은 축제처럼 들썩이고, 후손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쿠디찐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마을의 디저트, 카놈 화랑 쿠디찐은 포르투갈의 레시피와 태국의 재료가 섞여 만들어진, 그들의 정체성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맛이다.

P1000195.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336.jpg
P1000326.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307.jpg
P1000309.jpg
P1000308.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310.jpg
P1000300.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278.jpg
P1000279.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292.jpg
P1000290.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중국 사당과 영국인의 흔적

강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후이난 출신 화교 공동체가 세운 산차오 끼안 언 깽 사당이 있다. 이름 그대로 ‘평안을 세운 사당’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200년 넘게 이 지역 중국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금박 장식의 관음보살상과 『삼국지』 벽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 강과 함께 이주한 이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서려 있다.

그리고 강가에는 Baan Windsor라는 오래된 저택이 서 있다. 19세기, 영국 상인 루이스 윈저가 살던 집을 복원한 것이다. 지금은 비어 있지만, 그저 건축 양식만으로도 이곳이 한때 포르투갈, 중국, 태국, 영국인이 공존하던 무역항이었음을 보여준다. 강변에 멈춰 선 이 건물은, 어쩌면 미완의 유산이자 공존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P1000243.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246.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264.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266.jpg
P1000267.jpg
P1000273.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강의 기억

톤부리를 걷다 보면, 단순한 도시의 골목이 아니라 강이 품은 기억을 걷는 듯하다.
왓 아룬의 찬란한 탑, 왓 홍랏따나람의 고즈넉한 사당, 산타크루스의 붉은 돔, 쿠디찐의 좁은 골목과 디저트 가게, 산차오 끼안 언 깽의 향 냄새, 그리고 Baan Windsor의 빈 건물까지.

이 모든 것들이 흘러가면서도 남아 있는 이유는 하나다.
강이 흐르고, 사람들은 그 강을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1768년, 탁신왕이 이 강변에서 나라를 다시 세운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톤부리는 늘 강의 도시였고, 그 기억은 지금도 강변의 공기 속에 남아 있다.

P1000304.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340.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354.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350.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225.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228.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P1000357.jpg 2025.08 | Thailand_Bangkok(Thon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keyword
이전 24화〈알고 보면 다른 태국> 섬의 문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