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流配)

조국을 설계한 사람들이 조국 밖에서 늙어간 자리

by 강라마
32257730_2055317201176200_8744262443506597888_n.jpg 푸어이(좌) 프리디(우) | 출처: 탐마삿 기념관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캠퍼스 한쪽, 특별할 것 없는 야외 벤치다.
학생들이 오가고, 계절은 흘러가고, 이곳은 태국이 아니다.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프리디 바놈용.

태국 입헌혁명의 핵심 인물이자 탐마삿 대학교를 세운 사람이다.
왼쪽에 앉은 사람은 푸어이 웅파껀.
프리디의 제자였고, 훗날 탐마삿 대학교 총장이 된다.


이 사진은 망명 중이던 프리디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건너와 이미 영국에 머물고 있던 제자 푸어이를 만나러 온 날 찍혔다.

장소는 영국의 한 대학교 캠퍼스 벤치.

태국 민주주의를 설계한 두 사람의 만남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한 배경이다.

이들은 태국인이다.
태국의 미래를 고민했고, 태국의 제도를 만들었고, 태국 사회의 방향을 두고 싸웠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사진 속 어디에도 태국은 없다.
국기 대신 잔디가 있고, 연단 대신 벤치가 있고, 군중 대신 공기가 있다.


프리디는 1932년 혁명 이후 왕정 중심 국가를 입헌군주제로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정치적 격랑 속에서 끝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푸어이는 민주주의와 학문의 독립을 지키려다 1976년 이후 태국을 떠나야 했다.

두 사람 모두 태국을 위해 싸웠고 태국에 남지 못했다.


나는 태국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태국에서 살고 있다.

이 사진을 보며 이상한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
이방인인 나는 이 땅에 있고, 이 땅의 사람이었던 그들은 이곳에 없다.

이 벤치 위에서 국적은 아무 의미가 없고 공적은 설명되지 않으며 역사는 잠시 말을 멈춘다.

남아 있는 건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고 앉아 있다는 사실뿐이다.

태국 민주주의의 시작은 연설대도, 기념비도 아닌 이렇게 조용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캠퍼스 벤치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노년을 확인하고 각자의 끝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사진이 오래 남는 이유는 비극적이어서도, 위대해서도 아니다.

누구는 이방인으로 살고 누구는 이방인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조용히 같은 프레임 안에 놓였기 때문이다.

태국 민주주의의 얼굴은 지금도 종종 기념물로 남아 있지만 그 시작과 끝은 늘 이런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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