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다른 태국> 마지막 결심

논타부리 | 5

by 강라마

나는 이곳을 그냥 지나칠 뻔했다. 강가에 있는 평범한 사원 하나.

특별할 것 없어 보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됐다.

이곳이 한 나라의 체제가 바뀌기 직전에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모였던 장소라는 것을.

왓 캐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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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캐 녹 | 2026.03 | Thailand_Nonthaburi | Copyright © llama.foto

이 사원의 오래된 우보솟 앞, 거대한 보리수 나무 아래. 이곳에는 한때 사람들이 모였다.

조용하게, 아무도 모르게. 그들은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었다.

그들은 “왕이 아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체제”를 처음으로 현실로 만들려던 사람들이었다.

카나 랏사돈.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인물, 프라야 파혼 폰파유하세나.

스크린샷 2026-03-20 오전 12.30.48.png 프라야 파혼 폰파유하세나 | 출처: 위키 백과
프라야 파혼 폰파유하세나(พระยาพหลพลพยุหเสนา)는
1932년 시암 혁명을 이끈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자, 태국의 제2대 총리.

절대왕정 체제가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소수의 인물 중 하나.
1932년, 그는 카나 랏사돈의 군부 핵심으로서 혁명을 실질적으로 실행에 옮긴 인물이었고
이후 정권 내부 갈등 속에서 권력을 잡으며 태국의 방향을 직접 이끌게 된다

방콕의 주요 도로인 “파혼 요틴 로드(Phahon Yothin Road)”
그리고 MRT “파혼 요틴 역” 역시 모두 그의 이름에서 유래

그는 유럽식 군사 교육을 받은 장교이자, 절대왕정 체제가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인물이었다.

그와 동료들은 이곳에 모여 단순한 쿠데타가 아닌, “체제 자체를 바꾸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이곳에서, 서원한다.

“우리가 성공한다면, 이곳을 잊지 않겠다.”

1932년 6월 24일. 그날, 총 한 발의 대규모 충돌 없이 태국의 체제는 바뀐다.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그리고 약속은 지켜졌다.

사원에는 그가 직접 세운 종탑이 남아 있고, 그의 유골이 지금도 이곳에 머물고 있다.

이곳은 태국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직전”, 사람들이 모여 마지막 결정을 준비하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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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캐 녹 | 2026.03 | Thailand_Nonthaburi | Copyright © llama.f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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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캐 녹 | 2026.03 | Thailand_Nonthaburi | Copyright © llama.foto

사원 앞에 펼쳐진 차오프라야 강.

지금은 느리고 평온하다. 하지만 한때 이곳은 하늘과 연결된 공간이었다.

이 지역의 이름, “사남빈 남” 직역하면 “물 위의 비행장”

1930년대 초, 태국은 이미 수상비행기를 운용하고 있었다.

당시 비행기는 아직 인프라가 부족했고, 넓고 직선적인 강은 가장 현실적인 활주로였다.

그리고 이곳, 논타부리 강 구간은 그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장소였다.

그래서 이 강 위에는 실제로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1940년대. 전쟁의 시대. 일본군이 태국에 진입하고, 돈무앙 공항이 군사적으로 사용되던 시기.

이곳 “사남빈 남”은 기존에 존재하던 수상 비행장으로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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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캐 녹 | 2026.03 | Thailand_Nonthaburi | Copyright © llama.f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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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캐 녹 | 2026.03 | Thailand_Nonthaburi | Copyright © llama.foto

지금의 왓 캐 녹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살아있는 공작새가 실제 사원에서 길러지고 있고, 바람은 느리고, 시간은 부드럽게 흐른다.

이름처럼 ‘새’를 뜻하는 공간 안에서, 생명은 평화롭게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알고 나면, 이 평온함은 다르게 느껴진다.

이곳은 한때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가장 큰 변화를 준비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의 태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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