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 19
방콕에서 가장 붐비는 밤의 공간 중 하나가 있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이고 관람차가 돌아가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강을 바라보며 분위기 있게 저녁을 먹는다. 방콕을 찾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방문했거나 이름을 들어봤을 장소.
아시아티크(The Riverfront).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그저 방콕의 유명한 야시장이다.
하지만 이 공간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그 흔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이곳은 처음부터 항구도, 관광지도 아니었다.
이 땅에는 원래 왓 프라야 크라이(Wat Phrayakrai) 라는 사원이 있었다.
1801년 이 사원은 왕실 사원으로 승격되며 이름이 왓 초타나람(Wat Chotanaram) 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사원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이 공간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바로 이 사원이다.
차오프라야 강가에 자리한 사원.
당시 방콕에서 강은 도로이자 시장이자 삶의 중심이었다.
사원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였고
이곳 역시 강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 방콕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방콕의 첫 근대 도로. 짜른끄룽 로드 (Charoenkrung Road).
1861년 태국 최초의 근대 도로가 만들어진다.
당시 사람들은 이 길을 뉴 로드(New Road) 라고 불렀다.
바로 아시아티크 바로 앞 길가도 이 길에 해당이 된다.
서양 상인들과 외국 공관이 늘어나면서 마차가 다닐 수 있는 새로운 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방콕이 운하 중심의 도시에서 근대 도시로 변화하는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이 길은 바로 이 지역을 지나갔다. 사원 주변에는 점점 상점과 창고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884년 덴마크 상인 한스 닐스 안데르센(Hans Niels Andersen)이 방콕에 들어와 회사를 세운다.
이 회사는 이후 덴마크의 유명 무역회사 East Asiatic Company의 일부가 된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이곳의 위치였다.
짜오프라야 강 그리고 새로 만들어진 도로.
이 두 가지가 만나는 곳.
이곳은 항구로 발전하기에 완벽한 장소였고. 그곳은 지금 아시아티크 자리였다.
1894년 방콕 최초의 전기 트램이 운행을 시작한다.
트램은 짜른끄룽 로드를 따라 도시를 연결했다.
이제 사람과 물자가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 강가로 모였다.
사원이 있던 공간은 점점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변해갔다.
1907년 East Asiatic Company는 이곳에 항구와 제재소를 운영할 허가를 받는다.
이 순간부터 이곳은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된다.
강가에는 목재가 쌓이고 거대한 창고들이 세워지고 선박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곧 방콕의 중요한 무역 거점이 된다.
사람들은 이곳을 East Asiatic Wharf라고 불렀다.
지금 아시아티크에 남아 있는 붉은 벽돌 창고들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이곳의 풍경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관람차 대신 크레인이 있었고 레스토랑 대신 목재 더미가 쌓여 있었다.
강가에는 증기선과 화물선이 정박했고 창고에서는 목재와 물자가 끊임없이 이동했다.
이곳은 방콕 경제의 중요한 관문이었다.
그러던 1935년, 이 지역의 또 다른 역사가 조용히 끝을 맞이한다.
한때 이 땅에 있던 왓 프라야 크라이(Wat Phraya Krai) 사원이 폐사되면서 사원에 있던 불상은 차이나타운 근처의 왓 트라이밋(Wat Traimit) 으로 옮겨지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이 불상을 그저 석고로 덮인 평범한 불상으로 생각했다.
불상은 그렇게 새 사원 한쪽에 놓인 채 오랫동안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그리고 20년 뒤인 1955년,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난다.
왓 트라이밋에서 불상을 옮겨 제대로 모시기 위해 크레인을 이용해 들어 올리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밧줄이 끊어지면서 불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놀라 급히 확인했고 충격으로 깨진 석고 틈 사이로 금빛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석고로 덮여 있던 불상 안에는 무게 약 5.5톤의 순금 불상이 숨겨져 있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황금 불상으로 알려진 불상이다.
이 발견은 방콕의 오래된 역사 속에 여전히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다.
일본군은 태국에 진주했고 이 항구 역시 군사적으로 사용된다.
전쟁 시기 이 항구 역시 군수 물자가 오가던 공간이 되었고, 일본군의 물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연합군의 공습 목표가 되기도 했다.
지금 관광객들이 걷고 있는 이 공간 아래에는 당시 사람들이 폭격을 피해 숨었던 방공호가 남아 있다.
야경이 아름다운 이 장소가 한때는 전쟁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항구는 계속 운영되었다.
그러나 세계의 물류 시스템이 변하면서 오래된 항구 시설은 점점 경쟁력을 잃어갔다.
그리고 1984년 East Asiatic Company가 창립 100주년을 맞던 해.
이 항구는 운영을 멈춘다. 80년 가까이 방콕의 무역을 담당했던 항구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순간이었다.
배는 떠났고 창고는 비어갔다. 강가에는 거대한 건물들만 남았다.
버려진 항구 그 후 오랫동안 이곳은 방치된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창고들은 낡아갔고 항구 시설들은 사용되지 않았다.
한때 방콕의 경제를 움직이던 공간이 도시 속에서 잊혀진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2년 이 오래된 항구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Asiatique The Riverfront
옛 창고들은 레스토랑과 상점으로 바뀌고 강가의 부두는 산책로가 된다.
그리고 방콕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거대한 관람차도 세워진다.
한때 무역선이 드나들던 항구는 이제 관광객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다.
사원, 항구, 야시장 이 공간의 역사는 200년 동안 크게 세 번 바뀌었다.
단순히 쇼핑과 먹거리로만 즐기는 곳만이 아닌 이곳을 자세히 보면 옛 흔적들은 아직 남아 있다.
붉은 벽돌 창고, 강가의 크레인, 낡은 철도 레일 그리고 전쟁 시절의 방공호까지.
밤이 되면 이곳은 다시 빛난다.
사람들은 강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고 관람차는 천천히 강 위를 돌고 있다.
하지만 이 공간의 바닥 아래에는 200년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