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대선 후보들의 사진으로 보는 시각적 설득의 전략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 〈관상〉에서 이정재가 던진 이 한 줄의 질문이 수많은 관객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얼굴에서 운명을 읽어내는 관상의 고풍스러운 원리는, 오늘날 정치 무대에서 이미지의 절대적 권력을 이해하는 완벽한 은유가 된다. 2025년 대선에서 우리는 다시 그 얼굴들 앞에 서서, 조용히 묻는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될 상인가?"
포스터는 언어보다 먼저 우리에게 속삭인다. 정책의 무게보다, 슬로건의 울림보다, 그 얼굴의 인상이 먼저 마음에 스며든다. 선거라는 무대에서 이미지는 첫 번째 언어가 되고, 신뢰와 비전을 눈으로 보이는 형태로 번역해 낸다.
프린스턴 대학 알렉산더 토도로프 교수의 2005년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치인의 얼굴을 보고 0.1초 만에 능력을 판단한다. 실제 미국 상원의원 선거 사진 쌍을 무작위로 보여주고 유권자가 "누가 더 유능해 보이는가" 선택하게 했을 때, 그 선택이 실제 선거 당선자와 70% 이상 일치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호감도 문제가 아니다. 우리 뇌는 얼굴에서 '이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을까'를 무의식적으로 계산한다. 포스터 속 얼굴은 바로 이 무의식적 판단에 직접 개입하는 첫 번째 전략 도구다.
진심은 연출될 수 없지만, 연출은 진심처럼 보일 수 있다
이재명 후보의 포스터에서 가장 주목할 요소는 완벽한 정면 응시다. 하지만 여기에는 미묘한 전략이 숨어있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카메라 렌즈가 아닌, 렌즈 약간 위쪽을 향한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시선이 렌즈보다 살짝 위로 향할 때 관찰자는 무의식적으로 '우러러보는' 심리상태가 된다. 반대로 시선이 아래로 향하면 '내려다보는' 느낌을 받는다.
이재명 후보는 포스터에서 카메라를 정면 응시하지만, 시선은 렌즈보다 살짝 위를 향하고 있다. 이 약간의 각도는 관찰자로 하여금 그를 ‘우러러보는’ 시각적 효과를 유도한다. 이 영화, 광고, 사진 등 시각매체에서 권위·신뢰·존경을 부여하는 대표적인 연출법으로, 심리학적으로도 위쪽을 바라보는 인물에게 ‘비전이 있다’, ‘신념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재명의 시선 처리는 권위를 인정받되 위압적이지 않은, 절묘한 심리적 균형점을 노린다.
알렉산더 토도로프 교수의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위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미소 짓는 후보보다 진지한 표정의 후보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이재명 포스터의 무표정은 이런 심리를 겨냥한 전략이다.
'진짜'라는 슬로건과 조응하는 이 무표정은 "나는 웃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현실 인식을 전달한다. 이는 계엄 이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는 맥락에서 매우 전략적인 선택이다.
이재명이 선택한 파란색은 단순한 신뢰의 색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서 파란색은 '진보'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보수적 안정감도 내포한다. 이는 색채 심리학에서 말하는 '의미의 이중성'을 활용한 전략이다.
더 정교한 것은 색상의 채도 조절이다. 선명한 파란색이 아닌 약간 회색빛이 도는 네이비를 선택함으로써, 이념적 편향성을 줄이고 중도층까지 포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이재명의 정면 응시 전략은 오바마의 2012년 재선 캠페인과 구조적 유사성을 보인다. 두 포스터 모두 '직접적 소통'과 '투명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오바마가 미소로 '희망'을 강조했다면, 이재명은 무표정으로 '진정성'을 어필한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과 계엄 이후의 한국이라는 서로 다른 정치적 맥락을 반영한다.
김문수의 포스터는 전통적 남성 리더십의 시각적 구현이다. 진지한 표정, 곧은 자세, 절제된 감정 표현은 모두 '강한 아버지' 원형을 따른다.
김문수가 선택한 회색은 색채심리학에서 '중립성'과 '권위'를 동시에 상징한다. 화려한 색상을 피하고 절제된 톤을 선택함으로써 '소박한 권위'를 연출한다.
이는 계엄 이후 화려함이나 과시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을 의식한 전략으로 보인다. 권위는 인정받되, 위압적이지 않은 선을 노린다.
김문수의 이미지 전략은 마이크 펜스 같은 미국 보수 정치인들의 시각적 코드와 유사하다. 밝은 배경, 정장 차림, 진지한 표정은 '안정'과 '책임'이라는 보수 정치의 보편적 가치를 시각화한다.
펜스가 "Steady Leadership"을 강조했다면, 김문수는 "정정당당"을 내세운다. 하지만 "새롭게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은 전통적 보수 이미지에 변화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 글로벌 보수 정치 코드의 한국적 현지화 사례다.
김문수의 표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눈가 주름이다. 진지한 표정이지만 눈가에 미세한 웃음 주름이 남아있어, 완전한 무표정보다는 '절제된 온화함'을 전달한다. 이는 얼굴 근육의 미세한 조절을 통해 '엄하지만 따뜻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구현하려는 시도다. 표정 정치의 미시 영역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준석의 포스터는 '비정치인 이미지'를 표방하는 전략의 정점이다. 딱딱한 포즈 대신 자연스러운 자세, 권위적 표정 대신 친근한 미소까지. 모든 것이 기존 정치 이미지의 안티테제다.
한국 정치의 색상 체계는 오랫동안 빨강-파랑의 이분법이었다. 이준석의 오렌지색은 이 기존 프레임 자체를 파괴하려는 시도다. 오렌지는 빨강도 파랑도 아닌 '제3의 길'을 시각적으로 선언한다. 마케팅에서 이를 '카테고리 킬러(category killer)' 전략이라 한다. 기존 경쟁 구도를 아예 바꿔버림으로써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이다.
이준석의 '혁신가' 포지셔닝은 순수하게 전략적 이미지 측면에서 마크롱의 초기 전략과 유사성을 보인다.
기존 정치권과의 차별화, 젊음과 혁신의 강조, 밝은 색상 사용 등의 시각적 전략 말이다. 마크롱이 "En Marche!"(전진하자)라는 운동성을 강조했다면, 이준석은 "미래를 여는 선택"이라는 미래지향성을 강조한다.
다만 이는 순전히 이미지 포지셔닝 전략의 유사성이며, 정책의 정교함이나 정치적 완성도와는 별개의 차원이다. 젊은 정치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과제—기존 정치와의 시각적 차별화—에 대한 유사한 해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준석의 '자연스러운' 이미지들은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계산이 들어간 결과물이다. 자전거 사진, 정장 대신 후드티셔츠와 같은 캐주얼웨어, 일상적 표정 모두'계산된 자연스러움'의 산물이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통 코드에 정확히 부합한다. 이들은 과도한 권위나 격식을 거부하며, '진짜 같은 가짜'보다 '가짜 같은 진짜'를 선호한다.
권영국 후보의 포스터는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 보기 드문 인지부조화 전략의 완벽한 사례다. '갈아엎자'는 파격적 문구와 환한 미소의 시각적 모순은 철저히 계산된 연출이다.
권영국이 선택한 노란색은 가시 스펙트럼에서 가장 높은 각성도(arousal)를 유발하는 색상이다. 주의집중 효과가 가장 높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증폭시킬 수 있는 위험한 색이기도 하다. 하지만 환한 미소와 결합될 때 노란색의 불안 요소는 상쇄되고, 오히려 에너지와 희망의 메시지로 전환된다. 이는 색채-표정 간 상호보완 전략의 정교한 사례다.
인간의 뇌는 모순된 정보를 받으면 이를 해결하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 과정에서 해당 이미지는 더 깊이, 더 오래 기억된다. 권영국의 포스터는 이런 감정 기억의 이중 저장 효과를 노린다.
미소는 위협을 중화시키고, 급진적 메시지는 기억을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는 "무서워 보이지 않는 변화"라는 모순적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진보의 관점에서 배신자인 국민의 힘 김문수의 엄격한 표정과 대비되면서, 권영국의 밝은 미소는 자신감과 드높은 자존감으로 읽히기도 한다.
권영국의 '웃는 혁명가' 전략은 버니 샌더스의 미국 캠페인과 유사하다. 두 후보 모두 급진적 메시지를 친근한 이미지로 포장한다. 샌더스의 "Feel the Bern"과 권영국의 "갈아엎자"는 모두 강한 동원을 요구하지만, 친근한 시각적 표현으로 그 강도를 조절한다. 이는 진보 정치의 보편적 딜레마인 이념적 명확성과 대중적 접근성 사이의 균형에 대한 공통 해법이다.
나는 한 기업의 홍보실에서 20년간 근무하며 고위공직자, 기업인, 정치인 출신 CEO들의 프로필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해왔다. 촬영 현장에서는 항상 흥미로운 긴장감이 감돈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위 몸이 풀리려면 1시간 정도는 소요된다. 대부분 어색해한다. 그럼에도 이 순간이 본인의 이미지를 만든다는 점을 인식하고 성실하게 임한다.
보통 2종류의 셔츠를 갈아입으며 촬영한다. 푸른색은 더 신뢰감을 주지만, 흰색은 더 친근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넥타이도 마찬가지다. 정치적인 칼라가 있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의힘은 레드, 더불어민주당은 블루를 선택하겠지만, 가치중립을 고민한다면 오히려 그린이나 그레이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 명품 착용을 즐기는 경우엔 화려함이 오히려 부담스러워 보일까 봐, 조명을 은은하게 조정해 과시적인 느낌을 줄이고, 좀 더 평범한 아이템들로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손 위치별로 여러 컷을 촬영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주머니에 넣으면 친근하지만 캐주얼해 보이고, 뒤로 깍지 끼면 권위적이지만 경직되어 보이며, 앞으로 모으면 겸손해 보이지만 소극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 손의 위치 하나만으로도 리더십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최종 선택은 대부분 한 손은 자연스럽게 내리고, 다른 한 손은 가볍게 허리춤에 두는 중립적 포지션이다.
한 CEO는 웃는 표정을 만들기 위해 입 끝을 올렸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눈으로 웃어야 합니다"라고 조언하자, 그는 "어떻게 눈으로 웃죠?"라고 되물었다. 결국 우리는 그에게 귀여운 손자를 떠올리게 했고, 그제야 진짜 미소가 나왔다. 물론 촬영 전 가정사를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잘못된 정보인 경우 표정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것은 그 '진짜 미소'마저 철저한 연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고정하는 스프레이로도 잘 고정이 되지 않아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세우면서 한 컷씩 찍기도 했다. 힘 없이 내려앉는 머리카락이 주는 느낌보다는 스타일링 된 모습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조명의 각도를 거의 1도씩 조정하며 얼굴에 생기는 그림자를 없애려 했고, 안경의 반사까지 완벽하게 통제하기도 한다.
또 다른 CEO는 촬영 전날 수면이 부족해 눈 밑에 그늘이 진 상태였다. 스태프들은 메이크업을 강화했고, 조명을 조절해 그 결점을 가렸다. 촬영 내내 그는 "자연스럽게 보이나요?"라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준비와 조정이 들어간 사진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셔츠의 색, 안경의 반사 각도, 조명의 톤, 미소의 깊이, 머리카락의 방향까지. 우리는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 단 한 장을 남겼다. 그 한 장이 회사 전체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정치인 출신 CEO의 반응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새로 나온 사진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사진으로 선거를 치렀다면 이겼겠네요." 그의 말에는 아쉬움과 깨달음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이미지의 힘을 잘 안다. 카메라 앞에서 만들어진 표정 하나가 수백만 명의 시선을 바꾸고, 투표장의 손끝을 움직인다. 우리는 사진을 찍었지만, 사실은 ‘이미지 정치의 운명을 편집’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진심은 연출될 수 없지만, 연출은 진심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선거 포스터 사진은 그
정점에 있다.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정치인의 사진 한 장 뒤에는 수많은 계산과 세심한 준비가 숨어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인상 관리' 이론이 여기서 적용된다. 우리는 선택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연출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정치 이미지는 이런 인상 관리의 가장 극단적 형태다. 가장 진정성 있게 보이는 순간이 종종 가장 계산된 순간이라는 것. 어쩌면 이것이 현대 정치 이미지의 본질적 모순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특정 후보의 우열을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지'라는 프레임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를 성찰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한 장의 사진 뒤에 숨은 수백 번의 선택과 연출을 이해할 때 비로소 더 나은 판단에 이를 수 있다.
후보들의 공식 포스터는 선거전략의 결정체다. 표정, 자세, 배경, 컬러, 조명까지 계산된 이미지다. 하지만 공식 포스터 너머에는 또 다른 이미지 전략이 있다. 각 후보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대표 장면'들 말이다.
이재명의 소년공 흑백 사진, 김문수의 투사 이미지, 이준석의 일상적 모습, 권영국의 현장 사진들. 이 장면들은 포스터보다 먼저 기억되고, 그 사람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어 정체성의 요약본처럼 기능한다. 이 이미지들은 언뜻 우연히 포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밀하게 계산된 '서사의 시각화' 전략이다.
2025년 대선의 이미지들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계엄 이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각 후보들은 어떤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다가가려 하는가. 완벽하게 포장된 이미지보다는 불완전하더라도 솔직한 모습이 더 신뢰를 받는 시대가 되었다. 과도한 연출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정치 이미지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격적인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정치 주체로 등장하면서 이미지 소비 패턴도 변했다. 이들에게 정치인의 이미지는 더 이상 신문이나 TV를 통해서만 전달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를 통해 더 직접적으로, 더 자주 만난다. 대선 후보들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특히 SNS에서 활발히 공유되는 것도 이런 변화의 반영이다. 젊은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밈'이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때로는 패러디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재생산한다.
결국 포스터는 시작일 뿐이다. 진정한 정치적 소통은 한 장의 사진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결국 이미지는 행동의 시작일 뿐이다. 진정성은 그 이후의 시간 속에서 입증된다.
우리는 0.1초 만에 첫인상을 갖는다. 그러나 진정한 판단은 그 이후에 이루어진다. 포스터가 여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미지는 믿음을 약속할 수는 있지만, 신뢰는 결국 '그 사람의 시간'이 증명한다. "정치적 판단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통찰이 있다. 이미지의 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력을 인식함으로써 더 신중한 판단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2025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가장 멋진 포스터를 만든 후보가 아니라, 가장 진정성 있는 소통을 이어가는 후보일 것이다. 이미지는 관계의 시작일 뿐, 신뢰는 시간과 일관성을 통해서만 구축된다. 6월 3일 투표일까지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다시 그 얼굴들을 마주한다. 포스터 한 장, 현장 스냅 한 장에서 시작된 첫인상이 어떻게 정치적 신뢰로 전환되는지 지켜볼 것이다.
포스터 한 장.
현장 스냅 한 장.
그리고 우리는 어느 순간, 그 얼굴을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그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될 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