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없는 사과문

강선우 사태로 본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실패와 책임 윤리

by 강마레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강선우입니다.

그동안 저로 인해 마음 아프셨을 국민께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를 믿어주시고 기회를 주셨던 이재명 대통령님께도 한없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함께 비를 맞아주었던 사랑하는 우리 민주당에게도 제가 큰 부담을 지어드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진심 한 켠 내어 응원해 주시고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의 마음 마음, 귀하게 간직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모든 것을 쏟아부어 잘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큰 채찍 감사히 받아들여 성찰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죄송했습니다.


— 2025년 7월 21일 강선우 의원 페이스북 입장문 전문


2025년 7월 21일,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그 사과문에는 피해자가 없었다. 피해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강선우 본인 뿐이었다.


이 사과문에는 갑질 피해를 증언한 보좌관도, 무단결강으로 수업권을 침해당한 대학생도, 예산 갑질을 당한 전 여성가족부 장관도, 공식 자격도 없이 주말에 불러낸 공무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피해자를 구체적으로 호출하지 않음으로써, 사과의 책임을 ‘공중 일반’에게 흩뜨리는 전략적 보편화(universalization)라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라는 핵심을 삭제함으로써, 사과의 진정성은 본질적으로 훼손된다. 피해자는 없는데 반해, 대통령에게는 '한없이' 죄송하고, 민주당에는 부담을 지어드렸다고 했다.


기업 PR 현장에서 다양한 위기 커뮤니케이션 사례를 다뤄오면서, 학계에서 정립된 이론들이 실제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지켜봐 왔다. 강선우 후보자의 사과문은 위기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여러 흥미로운 지점들을 제공한다.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사례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PR의 실패일까? 우리 시대 정치 커뮤니케이션이 직면한 윤리적 파산의 징후일까?


이론과 현실의 간극


윌리엄 베노이트(William Benoit)의 이미지 복구 이론을 떠올려보자. 위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전략은 다섯 가지다. 부인하기, 책임 회피하기, 공격성 감소하기, 개선 약속하기, 그리고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 구하기.


현실에서는 보통 이 전략들을 조합해서 쓴다. 완전히 잘못해서 사과해야 한다면, 마지막 두 전략의 조합이 정석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고치겠다고 약속하는 것.


그런데 강선우의 사과문은 어떨까? 표면적으로는 참회(mortification)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 내용을 분석해 보면 책임 회피와 공격성 축소의 요소들이 섞여 있다. "저로 인해 마음 아프셨을"이라는 표현은 이미 책임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리고 "성찰하며 살아가겠다"는 추상적 다짐으로 구체적인 교정 행동 약속은 빠져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정한 사과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Aaron Lazare의 연구를 통해 그 기준점을 확인해 보자.


위기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아론 라자레(Aaron Lazare)의 『사과에 관하여(On Apology)』(2004)는 매사추세츠 대학교 의대 정신과 교수였던 그가 20여 년간 연구한 결과물로, 개인 관계부터 국가 간 외교까지 모든 수준의 사과 연구에서 기준점이 되고 있다.


아론이 제시한 효과적인 사과의 네 가지 구성요소는 다음과 같다.


잘못에 대한 명확한 인정 (Acknowledgment of the offense)

피해자의 감정에 대한 공감 표현 (Explanation and expression of empathy)

책임 수용 (Taking responsibility)

피해 보상 혹은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 (Reparation and promise for change)


강선우의 사과문을 이 기준으로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잘못에 대한 명확한 인정은 "저로 인해 마음 아프셨을"이라는 모호한 표현에 그쳤고,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모든 피해자를 '국민'으로 일반화시켰고, 책임 수용은 "저로 인해"라는 수동적 원인 제시에 머물렀다. 재발 방지 약속은 "성찰하며 살아가겠다"는 추상적 다짐이 전부였다.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사과의 언어를 차용한 책임회피전략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사과문은 이러해야 했다.


여성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강선우입니다.

저의 부적절한 언행과 공직자로서의 미숙한 판단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깊은 실망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무엇보다 제 사적인 업무를 보좌진에게 부당하게 지시한 점, 특히 자택의 쓰레기 분리수거나 비데 수리와 같은 사적인 부탁을 공적 업무로 요구한 것은 명백히 공사를 구별하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더불어, 제 지역구 민원이 관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이셨던 정영애 전 장관께 무리한 요구와 언행을 했고, 결과적으로 관련 예산을 삭감하며 압박했던 점은 저의 지위와 권한을 오남용한 부끄러운 행동이었습니다. 당시 장관님께서 느끼셨을 당혹과 모욕감에 깊이 사과드리며, 늦었지만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또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답변을 드린 부분이 있었고, 청문회 이후 사퇴 여부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가족부 공무원에게 주말에 업무보고를 받는 등 책임 있는 공직후보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이어간 점 역시 깊이 반성합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저의 부족함을 절감하였고, 정치인이자 공직자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과 윤리에 대해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보좌진, 여성가족부 공무원, 그리고 정영애 전 장관님을 포함한 피해자 분들께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리며,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실망하신 국민 여러분께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는 보좌진의 노동권과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더불어 정치인의 사적 영역과 공적 권한이 명확히 분리되도록 당내 윤리 기준 강화와 내부 시스템 개선을 위한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저의 사과는 언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 변화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의 이 진심이 닿기를 바랍니다.


2025년 7월 21일 강선우 드림


자기 연민의 서사


강선우의 사과문은 위기 상황에서 흔히 나타나는 ‘피해자 전이 프레임(victim transference frame)’으로, 사과 주체가 도덕적 수용자처럼 재포지셔닝되는 사례다. "많이 부족하지만, 모든 것을 쏟아부어 잘해보고 싶었습니다"라며 선의를 강조하고, "여기까지였던 것 같습니다"라는 운명론적 체념으로 자신을 상황의 희생자로 만든다. 그리고 "큰 채찍 감사히 받아들이겠다"라는 표현으로, 스스로를 도덕적 수용자로 재위치 시킨다.


이 마지막 표현이 특히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자신이 가한 피해와 자신이 받는 비판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판을 '성장을 위한 교훈'으로 승화시켜 자신을 도덕적 성장의 주인공으로 포지셔닝하며, '감사히 받아들이겠다'는 표현으로 마치 자신이 더 높은 도덕적 경지에 있는 것처럼 연출했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 사용은 진정성의 시뮬라시옹이다. 한마디로, 강선우의 사과문은 ‘내가 피해자였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진짜 피해자가 따로 있는데, 사과문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것처럼, 진정성의 외양은 갖췄지만, 실체는 없다. "거짓말은 진실을 감추지만, 위선은 진실 자체를 왜곡한다." 국민들이 이런 사과에 더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침묵하는 조직, 권력의 언어


사과의 진정성은 개인의 태도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조직의 반응과 태도에도 달려 있다. 이 점에서 민주당의 대응은 더욱 실망스러웠다. 몇몇 당직자들이 강 의원을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프레임으로 해석하려 했고, 일부에서는 "여성 정치인을 향한 과잉 비판"이라는 프레임까지 시도했다.


이는 전형적인 집단사고의 증상이다. 내부 결속을 위해 외부 비판을 일괄 차단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치명적인 리스크를 낳는다. 개인의 문제가 조직 전체의 윤리 문제로 확산되고, 평소 강조하던 가치와 실제 행동 사이의 불일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피해자들에게는 2차 가해까지 가하게 된다.


민주당이 그간 강조해 온 "권력형 비리 척결", "갑질 근절", "피해자 중심주의" 같은 가치들을 생각하면, 이번 대응은 그야말로 실망스러웠다. 브랜드가 추구한다고 말하는 가치와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이 벌어질 때, 신뢰도는 급격히 하락한다. 한번 잃은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강선우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단순한 '소통 부족'이나 '개인적 실수'를 넘어서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소통의 방식이며, PR은 권력을 미화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사용 방식에 윤리를 부여하는 실천이어야 한다. 이는 구조적 권력 불균형의 문제다.


보좌관과 의원, 학생과 교수, 국회의원과 장관, 공무원과 장관 후보. 이 모든 관계에는 절대적인 권력 차이가 존재한다. 이런 관계에서 권력을 가진 쪽의 언어폭력이나 지시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권력의 남용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분석한 상징적 폭력의 개념이 여기서 유용하다. 물리적 강제 없이도 권력관계를 재생산하는 메커니즘 말이다. 강선우가 보좌관에게 한 언어들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권력관계의 확인이자 강화였고, 상대방의 인격적 존재를 부정하며 미래의 저항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징적 폭력의 피해자들은 물리적 상처 없이도 깊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는다. 그리고 이런 피해는 가해자의 '사과'만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정치 문화의 구조적 병리


강선우의 갑질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정치 문화의 구조적 병리를 드러낸다. 여전히 정치권에는 위계주의가 만연하다. 선후배, 상하 관계는 업무 관계를 압도하고, 개인적 충성도가 전문성을 앞선다. 개인적 충성도가 전문성보다 중시되며, 이의 제기나 비판이 '배신'으로 간주되는 문화.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식의 온정주의적 권력 행사가 만연하다. 격한 언사와 감정적 폭발이 '진정성'으로 포장되는 남성중심적 정치 문화. 즉 강선우의 갑질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정치 시스템이 가진 위계 문화의 축소판이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책임 정치'의 부재다. 잘못이 드러나도 실질적 책임을 지는 경우가 드물다. 형식적 사과나 사퇴는 하지만 실질적 변화는 없고, "도의적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며, 시간이 지나면 '정치적 복귀'를 통해 책임을 무력화시킨다.


진정한 PR의 의미


PR(Public Relations)의 본질은 단순한 이미지 관리나 위기 모면이 아니다. 공중과의 진정한 관계 구축을 위한 철학이자 실천이다. 일회성 메시지가 아닌 지속적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실제 행동을 일치시키며, 일방향 설득이 아닌 쌍방향 소통과 이해를 추구하고, 개별 조직의 이익을 넘어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


강선우 사태는 이 모든 영역에서 실패했다. 신뢰는 깨졌고, 가치는 모순됐고, 소통은 일방적이었고, 사회적 책임은 회피했다. 형사법에서 말하는 '복원적 정의' 개념을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적용해 볼 수 있다. 단순한 처벌보다는 관계의 회복과 공동체의 치유에 초점을 맞추는 것. 구체적 피해에 대한 명확한 인정, 변명 없는 전면적 책임 수용,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배상과 치유, 깨진 신뢰 관계의 단계적 복원, 구조적 개선을 통한 재발 방지.


이 사건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개인 차원에서는 자신의 권력과 특권에 대한 성찰,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정한 공감 능력, 실수에 대한 진정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조직 차원에서는 내부 권력관계의 민주화,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시스템 구축, 가치와 행동의 일치를 위한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차원에서는 모든 형태의 권력 남용에 대한 일관된 비판, 피해자 중심의 회복적 정의 추구, 구조적 변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대부분이 그러하나 특히, 정치인의 사과는 언어가 아니라 태도다. 정당의 책임은 논평이 아니라 행동이다. 국민은 완벽한 정치인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실수했을 때 책임지고,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정치인을 원할 뿐이다.


누구를 위한 사과문인가?


우리는 이제 묻는다. "그 사과문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그리고 다시 묻는다. "우리는 그 사과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있었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강선우의 사과문에는 피해자가 없었다. 대신 자기 연민과 정치적 계산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는 사과가 아니라 사과의 언어를 빌린 또 다른 권력 행사였다.


진정성 없는 사과는 관계를 복원하지 못한다. 그것은 또 하나의 실패로 남지만, 동시에 우리가 배워야 할 수많은 질문을 남긴다. 사과란 말이 아니라 책임이다. PR이란 미화가 아니라 윤리인 것처럼. 그리고 진정한 변화는 사과가 끝나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이제 우리는 지켜볼 것이다. 이 사태가 또 하나의 정치적 해프닝으로 잊힐 것인지, 아니면 한국 정치 문화 전반을 바꾸는 계기로 이어질 것인지. 그리고 그 변화의 동력은 정치인의 선의가 아니라, 시민들의 꾸준한 감시와 윤리적 요구에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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