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 말고, 대통령을 찾아서

권력이 아닌 관계를 향한 시선

by 강마레
사진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거짓말쟁이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루이스 하인

요즘 나는 출근을 하면,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찾아 '사진으로 보는 대통령'에 올라온 새로운 사진들을 챙겨본다. 오늘은 또 어떤 '이상한‘ 또는 ’규칙을 어긴' 사진이 올라올까? 때로는 사진 속 대통령이 너무 작아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찾던 그 월리처럼 말이다.


대통령의 얼굴이 화면 한구석에 작게 위치하고, 대신 그가 바라보는 시민의 표정이 화면을 가득 채운 사진. 회의실에서 대통령의 뒤통수만 흐릿하게 보이고, 참석자들의 진지한 표정이 선명하게 잡힌 사진. 커피잔 뒤로 반쯤 가려진 얼굴과 함께 탁자 위 자료들이 더 또렷하게 보이는 사진에 이르기까지. 이 사진들은 내가 지난 20년간 홍보 업무를 담당하며 현장에서 배우고 지켜온 '규칙'들을 무시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자세히 봐야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목과 어깨를 다친 후, 나는 무거운 장비를 들기 힘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작고 가벼운 카메라를 사용하게 됐고, 가까이 다가가기보다는 멀리서 관찰하며 찍게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더 재미있는 사진이 나왔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표정들, 주변 상황과 분위기까지 담아낸 맥락들, 연출되지 않은 진짜 감정들. 한 장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사진은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업 홍보실에서는 CEO가 정면, 중앙, 선명하게 찍혀야 한다는 게 암묵적인 원칙이었다. 학교에서 보도사진론을 배우고, 학보사에서 현장사진을 찍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에는

A컷과 B컷이 존재한다.


홍보실 한 선배는 내가 찍은 CEO의 뒷모습 사진을 보며 "이건 B컷“이라고 말했다. 정면이 아니라서, 중앙에 있지 않아서, 얼굴이 선명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후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면, 정작 인상적인 장면들은 모두 'B컷'이었다. 스토리가 있는 사진이랄까? CEO가 직원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뒷모습, 발표 중 잠깐 물을 마시며 생각에 잠긴 옆얼굴, 행사 준비로 분주한 직원들 사이를 지나가다 행사용 책상을 옮기는 CEO. 이런 사진들이 오히려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여줬다.

Edward Hopper. Rooms by the Sea. 1951. Oil on canvas. 102x74cm, 이 사진은 호퍼의 '바다 옆방'을 연상시킨다

문법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 보도사진에는 오래된 문법이 있다. 미국국립보도사진가협회(NPPA)의 『The Digital Journalist's Handbook』는 이를 윤리적 기준이자 실무 원칙으로 이렇게 정리한다. 사진은 사실을 담되, 주제는 분명해야 하며, 시선의 왜곡 없이 정직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정치인의 사진을 볼 때마다 거의 동일한 구도를 본다. 왼쪽에 국기, 오른쪽에 슬로건, 가운데엔 정면을 응시하는 얼굴. 나 역시 홍보 실무자로서, 늘 이 문법 안에서 사진을 찍고 편집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숨 막히는 반복성을 경험했다. '다르게 찍으면 안 되는' 분위기, 'B컷은 쓸 수 없다'는 암묵적 규율.


새로운 시선이 시작된 곳


그런데 요즘 대통령실 사진은 다르다. 앞서 브런치에서도 소개한 김건희의 심기촬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진들과는 정반대랄까.



05화 렌즈 뒤에 숨은 진실은 무엇인가


이런 사진은 NPPA 기준에서 벗어난다. ‘주제가 명확하지 않다’, ‘감정이 해석되지 않는다’, ‘정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따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엔 정보 대신 감정, 정면 대신 맥락, 권위 대신 친밀함이 있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건, 어쩌면 보도사진이라는 형식 그 자체에 대한 조용한 반란일지도 모른다. 이 변화의 시작에는 강영호 작가가 있다. 그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전속 사진가였던 피트 수자(Pete Souza)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수자의 사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12월 3일 일자리와 경제 성장에 관한 백악관 포럼 개막식이 끝난 후 아이젠하워 행정관 청사에서 청소노동자와 주먹인사를 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직후 청소노동자들과의 만남과 단체 사진은 이 사진을 연상시킨다.

또 하나 인상적인 사진은 오바마가 백악관 직원의 5살 아들이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고 싶어 하자 고개를 숙여주는 장면이다.

미국 국가안보부 직원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작별 사진을 찍기 위해 가족을 집무실로 데려왔다. 그의 아들 제이콥은 대통령에게 오바마 대통령처럼 방금 머리를 깎았다고 말하고, 대통령의 머리가 자신과 같은 느낌인지 느껴볼 수 있는지 물었고 오바마는 제이콥에서 머리를 만져보게 한 것이다.

이 사진에서 대통령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이의 표정이 화면을 지배한다. 강영호 작가는 이 사진을 보고 깨달았다고 했다. "정치사진도 권력의 과시가 아니라 관계의 기록이 될 수 있구나"


관계를 찍는 사람들


강영호 작가는 문재인 대통령 시절부터 이 새로운 문법을 실험했다. 시민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쪼그리고 앉은 뒷모습, 보좌관과 대화하며 진지하게 듣는 옆얼굴, 강아지와의 일상적 순간들. 모든 것이 주인공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사진들이었다.


그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찍는 사람의 '시선'이 만든다고 믿었다. 단지 잘 찍힌 사진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설계하는 일.


그리고 지금, 그 흐름을 위성환 작가가 이어가고 있다. 미술을 전공하고 로마와 파리에서 탱고 사진을 찍던 예술 사진가였던 그가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강영호의 추천으로 정치 현장에 발을 들였다. "정치사진도 예술적 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탱고가 가르쳐준 정치의 리듬


작가는 그 시선을 ‘예술의 감각’으로 확장시킨다. 특히 그가 오래 찍어온 ‘탱고’는 사진 언어의 전환점이 된다. 탱고 사진을 생각해 보자. 두 사람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포착하고, 순간의 감정과 움직임을 중시하며, 완벽한 동작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간다. 관계의 역학을 시각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정치사진에 적용되고 있다. 대통령과 시민 사이의 '관계의 댄스'를 포착하고, 회의실의 '감정적 긴장감'을 시각화하며, 완벽한 포즈보다는 '자연스러운 순간'을 추구한다. 이는 정치를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관계의 예술'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시민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한 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면이 있다. 전통적인 사진이라면 대통령의 경청하는 표정에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실 사진에서는 대통령의 뒷모습과 함께 그가 바라보는 시민의 절절한 표정이 더 크게 담긴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대통령이 국그릇으로 물을 마시는 순간이 포착됐다. 일반적인 정치사진이라면 이런 '격식에 어긋나는' 장면은 절대 공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에서 국그릇은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서민과의 동질감'을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대통령의 얼굴은 그릇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숨어있는 대통령의 힘


요즘 대통령실 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을 숨기는' 기법이다. 뒷모습, 측면, 작은 크기로 배치하거나 아예 보이지 않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더 강한 존재감을 만든다. 마치 영화에서 주인공의 얼굴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아 더 큰 기대감을 조성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궁금증, 시청자가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상상력, 엿보는 듯한 시선으로 인한 친밀감, 과시하지 않는 겸손함에 대한 호감. 이 모든 것이 한 장의 사진에서 일어난다.


전통적 정치사진에서 권력자는 항상 중심에 있었다. 화면의 정중앙, 가장 밝은 조명, 가장 선명한 초점. 하지만 이 새로운 사진들에서 대통령은 종종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대신 시민, 직원, 혹은 상황 자체가 중심을 차지한다.


이건 단순한 구도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자는 '서비스 제공자'이지 '지배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다. 정치의 진짜 주인공은 '시민'이라는 선언이다. 대통령은 시민의 '대표자'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철학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들


이런 변화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의 가족과의 일상, 자신다 아던의 테러 현장에서의 애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군복 차림. 모두 권력의 거리를 좁히고, 시민과의 공감대를 넓히려는 시도들이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전통적인 '권위적 정치이미지'가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완벽함보다는 솔직함을, 권위보다는 친근함을, 연출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일방적 메시지보다는 쌍방향 소통을 원한다.


넷플릭스의 '메이킹 필름', 유튜브의 'Vlog' 문화가 보여주듯, 현대인들은 '뒤편 이야기'에 더 흥미를 느낀다. 완성된 결과물보다는 그 과정에서의 진솔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위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그림자는 있다. 인공지능으로 '가짜 사진'을 만드는 것이 쉬워진 시대에, '진짜 진심'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정치에서 이미지가 너무 중요해지면, 정작 중요한 정책이나 능력은 뒷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튜브 라이브,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정치인의 일상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메타버스에서 정치인과 시민이 만나는 일이 일상화될 수도 있다. 그때는 '사진'이 아니라 '아바타'가 정치 이미지의 핵심이 될 것이다.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신뢰라는 오래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모든 이미지 뒤에는 반드시 현실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사진 너머의 이야기


새로운 정치사진이 아무리 혁신적이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변화는 이미지에서 시작되어 실질적 정책과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사진 속 소통의 모습이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어야 하고, 친근한 이미지가 접근 가능한 정부로 구현되어야 하며, 겸손한 자세가 시민 의견 수렴으로 이어져야 하고, 인간적 모습이 따뜻한 정책으로 나타나야 한다.


나는 오늘도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연다. 어떤 새로운 시선이, 어떤 낯선 구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진들이 단순한 '이미지 소비'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 사진들이 던지는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답할 것인지, 그 이미지가 보여주는 가능성을 어떻게 현실로 만들어갈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관계를 만드는 기술


PR(Public Relations)이란 무엇인가? 단순한 홍보나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를 만드는 기술이다. 조직과 공중 사이에 진정한 이해와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대통령실의 사진은 그런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권력자와 시민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일방적 소통을 쌍방향으로 바꾸며, 형식적 만남을 진정한 만남으로 전환시키는 것.


사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는 그 이미지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이미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진정한 목적은 더 나은 정치, 더 가까운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권위를 깬 어떤 사진을. 그 사진이 보여줄 ‘우리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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