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을 향한 PR전문가의 고백
자격증을 따기 위한 도전이었지만, 사실은 좀 두렵기도 했다.
20년간 어른들과만 일해온 내가 정말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그리고 자격증 공부가 부담스러운 나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25년 가을, 40대 후반의 나는 다시 학생처럼 시험지를 마주했다.
"세상을 더 알고,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싶다."
그 막연한 열망으로 시작된 나의 커뮤니케이션 공부가, 20여 년 후 '미디어교육사'라는 제도 앞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1990년대 말, 나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그 시절엔 '커뮤니케이션학과'라는 이름조차 낯설었고,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은 더더욱 생경했다.
매체명이 학과이름인 것도 흥미롭다. 서울대 신문학과는 언론정보학과로, 고려대는 신문방송학과에서 미디어학과로, 이화여대에서는 신문방송학과에서 언론홍보영상(언혼영)을 거쳐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 미디어학부(커미부)로 바뀌었다. 학문 명칭의 변화는 곧, 미디어라는 개념이 사회 속에서 자리를 옮겨온 흔적이었다.
당시엔 신문, 방송, 광고, 홍보가 모두 한 학과 안에 뒤섞여 있었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진로를 꿈꾸면서도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다. 기자가 되고 싶은 학생, PD를 꿈꾸는 학생, 광고 기획자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함께 '매스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외우고 '미디어와 사회' 과제를 썼다.
그러다 보니 졸업 후 동창회 운영이 어려웠다. 청년의 열정을 한껏 뿜어내던 한 교수님께서는 늘 안타까워하셨는데, "수학과는 학원 강사라는 단일한 직업과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동창회가 활성화되는데, 우리 신문방송학과는 세부 직업이 너무 다양해서 실제로 모임이 어렵다"라고 한탄하셨다.
하지만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건 명확한 직업적 비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막연하지만 강렬한 감각 하나였다. "세상을 더 알고,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싶다"는 것.
돌이켜보면, 그 막연함이야말로 소중한 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사회를 어떻게 읽고 그것을 표현하고 전달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다.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들 앞에서 머뭇거리며, 그 머뭇거림 자체를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명확한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는 능력이, 정형화된 매뉴얼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 ‘미디어 교육’은 국가가 인증하는 자격으로 제도화되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미디어교육사 자격시험(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은 누가 아이들에게 미디어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시험·연수·자격으로 판별한다.
미디어교육사 제도의 등장은 분명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더 이상 대학에서 기자나 광고 기획자나 PR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디어에 대해 공부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인 아이들이 미디어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가짜뉴스와 미디어 조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교육적 과제다.
하지만 나는 시험을 준비하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호기심과 설렘, 그리고 동시에 묘한 불안감이 뒤섞인 마음이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20년간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일해온 사람으로서, 내 경험과 지식이 정말 아이들의 미디어 교육에도 유효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한 PR연구소에서 기업과 기관의 홍보팀 신입사원과 순환근무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광고 및 홍보물 제작 실무',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트렌드', '대학생 인플루언스와의 협업' 같은 주제였다.
내 강의는 현장의 맥락에서 시작되어, 구체적인 결과를 상상하게 하고, 당장 내일부터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을 제시했다. 상대는 동료였고, 어른이었고, 실무자였다. 그들은 내 말을 듣고 바로 질문했고, 반박했고, 자신들의 경험과 비교해서 이야기했다.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말 걸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것은 단순히 대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말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어른들에게는 "여러분도 경험해 보셨겠지만"이라고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너희들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 작은 차이가 만드는 관계의 결이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의 기사 자격증은 필기를 합격한 뒤에 실기시험을 치르지만, 미디어 교육사는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한날 시험을 치른다. 먼저 필기시험은 세 과목으로 구성된다. '미디어의 이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이해', '미디어 교육방법 및 사례'. 각 과목마다 40문항, 총 120문항을 2시간 안에 풀어야 한다.
내용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미디어 교육의 철학적 배경부터 구체적인 수업 설계 방법론까지, 방대한 범위를 다뤘다. 학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최근 언론홍보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했지만, 정작 교육학적 접근법은 완전히 새로운 언어였다. 미디어에 대해서는 만점이라고 예상했다가 95점을 받았지만, 미디어 리터러시와 교육학은 공부한 깊이나 이해에 비해 잘 받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단순한 암기보다는 수능 국어나 사회 과목의 출제방식과 유사한 만큼 통합적, 통찰적 사고를 필요로 했다.
실기시험은 서술형으로 실제 강의계획안을 1시간 동안 작성하는 시험이었다. 올해 시험에는 노인과 장애인들의 디지털 소외를 주제로 중학생들에게 필요한 강의계획안을 작성하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필기와 실기 모두를 통과해야만 자격증을 받기 위한 12시간의 연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10월 중순 주말에 줌으로 진행하는 연수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다. 이 교육까지 수료해야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이후 100시간 강의를 진행한 경력을 바탕으로 실전 수업을 평가해 1급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미디어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나는 단순히 '할 수 있음'의 증명이 아니라, '해야 할 이유'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질문을 더 정밀하게 다듬어가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아이들 앞에 서게 될 그 순간을 위해, 나는 오늘도 듣는 연습을 한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말보다는, 그들이 진짜로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 본다. 정답을 가르치는 교실이 아니라, 함께 질문하는 교실을 꿈꾼다.
나는 자격증을 얻었지만,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이 자격증은 나에게 가르칠 권리를 준 것이 아니라, 다시 배울 자세를 가르쳐주었다는 것도 깨닫는 중이다. 정답을 전달하는 교사가 아니라, 함께 질문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교실에서 찾아야 할 PR의 새로운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