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33. 권태

20170428_pm06:07

by 강민선

휴일 아침. 두 군데 일 관련 메일을 보내고 설거지를 하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낮잠을 잤다. 두 시간 넘게 잤다. 꿈을 꾼 것 같기는 한데 (꿈을 안 꿨을 리가 없다.) 강렬하지 않았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사실 낮잠도 졸려서 잤다기보다는 무료해서 잤다. 이틀 연속 휴일이었다. 평일이어서 낮에는 혼자 놀았다. 어제는 노트북에 새로 설치한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독학하는 데에 하루를 다 보냈다. 이곳에 썼던 글들을 텍스트 삼아 이런저런 디자인으로 앉혀 보았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들뜬 마음도 있었는데 이게 과연 정말 책으로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건 그저 일기였다. 개인의 사소한. 왜 요즘엔 이런 것만 쓰고 있는 걸까. 어제도 낮잠을 잤다. 졸려선 잔 게 아니라 그냥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다 깼을 때의 기분은 상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도 낮잠을 자다 눈을 떴을 때 딱 그런 기분이었다. 집은 청소도 안 되어 있고 끼니를 챙겨 먹을 음식은 없다. 나는 내 우울과 침체의 원인을 안다. 지금 내가 쓸 수 있고 쓰고 있는 글보다 더 대단한 것을 쓰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인 것이다. 명쾌하다. 원인을 알고 있으니 절반은 해결된 것 아닌가. 그렇다고 생각하자. 노트북을 싸서 집을 나섰다. 망원역 근처에 살고 있으면서 왜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가. 이 좋은 계절, 이 좋은 날씨에. 집을 나서기 전까지 씻고 머리 말리고 화장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집을 나서면 더 우울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옷을 입는 등 일련의 모든 귀찮은 것들을 하나씩 해치우고 집을 나서면, 역시 집을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도 좋고 발걸음도 가볍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기만 했던 집에서의 나보다 훨씬 더 가볍게 느껴진다. 예쁜 집들, 오후 햇빛이 기대어 앉은 지붕들, 꽃은 다 졌지만 대신 푸르름이 가득한 나무와 풀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글쓰기 좋은 카페들. 비록 무료와 권태에 빠져 귀중한 이틀의 휴일을 날려버렸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글도 쓰지. 내가 그렇게 원하는 글. 대체 그게 뭔지, 언제쯤 눈앞에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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