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34. 서점

20170501_pm04:36

by 강민선

『탐방서점』이라는 책을 매일 출퇴근길에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지하철에서뿐만 아니라 연신내역에서 도서관까지 걸어 올라가는 십여 분 동안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일단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페이퍼백이었고 인터뷰를 그대로 담아서 지루하지 않았고 그 내용이 서점 운영에 관한 것이어서 남 일 같지 않았다. 서점 운영은 남 일인데 왜 남 일 같지 않았을까. 지금은 매일 도서관으로 근하고 있지만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에 자꾸 들어오는지도 모르겠지만 연신내역에서 도서관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한 달 이상 비어 있는 자리가 있다. 단층이고 핸드폰대리점과 만두 가게 사이인데 7~8평정도 되어 보이는 정방형에 정면은 문까지 포함해서 통유리다. 꽤 괜찮은 자리 같은데 업종이 수시로 바뀌는 건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며 가며 그 자리를 볼 때마다 저기에 서점을 차리면 어떨까 막연히 그려보는 것이다.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바로 옆 만두 가게도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손님이 꽤 드나든다. 값도 적당하고 맛도 좋다. 젊은 주인 한 분이 직원 없이 운영한다. 두 집 건너에는 도서관 직원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작은 카페가 있다. 내가 입사하기 훨씬 전부터 있었고 삼 년이 넘도록 꾸준히 사람이 많다.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자매가 오전과 오후를 번갈아가며 운영하는데 커피를 포함해 모든 음료가 적당히 싸고 다 맛있다. 내가 지금 왜 이런 걸 주저리 적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점은 그 길목이 장사가 영 되지 않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낮에는 햇빛이 잘 들어오고 해질녘에는 단층 건물 뒤편으로 노을이 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그 단층 건물 맞은편에는 대형 교회가 있다. 교회를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그 교회가 연신내의 상권을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대규모 집단, 아니 교인들이 그 앞을 오고간다. 물론 먹고 마시는 것과 책을 사보는 것은 성격이 달라서 같은 잠재 고객으로 생각하긴 어렵겠지만 그 많은 사람 중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0.1% 정도는 있을 수 있으니까. 월세라는 가장 큰 장벽은 고민해볼 만한 문제다. 책을 팔아 매달 꼬박꼬박 내야 하는 월세를 빼고 과연 얼마나 남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남기다니. 적자나 면하면 다행이지. 책을 팔아서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책방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모한 짓인지 『탐방서점』 속 서점 주인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남는 것 없는 장사를 시작할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서점을 차리고 싶은 이유라면 단지 책이 있고 커다란 책상이 있고 햇빛이 한꺼번에 스몄다 천천히 사라지는 통유리창이 있는 공간의 로망 때문인 것을. 쯧쯧, 그래 이건 아무래도 고이 간직해야 할 꿈인 것 같다. 아버지는 삼십 년 장사꾼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나를 키웠지만, 그래서 어쩌면 나도 그 기질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며 유전자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걸어보고도 싶지만. 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 맞은편으로 웅장하고도 우아하게 빛나고 있는 교보문고 입구를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내 기대가 조금 작아지는 것도 같다. 서점에 대해 더 이상 보탤 말이 없어진 느낌이랄까. 합정역에 오픈한 지 이제 열흘밖에 안됐는데 오래전부터 여기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는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존재들이 몇 있긴 하다. 그러니 나처럼 미미한 중생이 무슨 서점을 차리겠다고 이러나 싶은 마음이 드는데, 한편으로는 만약 차린다면 정말 색다르게, 정말 특별하게, 세상 유일하게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해보게 된다. 『탐방서점』 속 서점 주인들이 역시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만약 서점을 차리게 된다면 이름은 어떤 걸로 할까 궁리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책방 그래’였다. ‘그래’라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고 ‘책방 그래’의 띄어쓰기를 달리하면 ‘책 방그래’가 되기도 하니까 귀엽지 않느냐고 남편에게 묻자 ‘예스24’의 우리말 버전 같다는 대답이 날아와서 패스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이름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름이 정말 중요하다. 이름을 정하면 절반은 정한 거다. 좋은 이름이 어서 생각났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내가 점찍어둔 그 자리에는 앞으로 어떤 게 들어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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