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35. 재회

20170502_am02:07

by 강민선

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나만 봤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래야 한다. 상대는 나보다 앞서 걷고 있었다. 연남동에서 동교동 쪽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보행 신호를 보고 막 뛰어서 길을 건넜는데 하마터면 상대를 앞지를 뻔했다. 그때까진 내가 아는 그 사람인 줄 몰랐다. 앞서 가던 아이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아이의 아빠와 엄마가 양 옆에 서서 걷고 있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뭐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목소리가 상당히 낯익었다. 옆모습이 살짝 보였다. 살이 많이 빠져서 긴가민가한 상태로 그들 가족은 우측으로 꺾어 들어갔다. 나는 계속 직진해 걸으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고, 혹시라도 저쪽에서 나를 볼까 조심하면서 유심히 가족을 살폈다. 살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았다. 신기하면서도 불편했고 아는 사람은 맞는데 반갑게 인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쓸쓸하기도 했다. 그냥 멀어질 때까지 각자 걸었고 그렇게 끝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십오 년 전, 대학 시절 단짝처럼 다니면서 수업도 같이 듣고 대화도 자주 하고 글 쓰는 이야기도 많이 했던 친구였다. 졸업하고 나서도 몇 번인가 계속해서 연락하고 만났다. 각자 일하는 곳에 대한 이야기,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몇 번인가 나누다가 특별한 계기 없이 멀어졌다. 몇 년이 지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그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이미 결혼을 한 뒤였고 안부를 묻자 민폐가 될 것 같아 연락하지 않았다는 답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것도 이미 수 년 전의 기억이다. 결혼을 해서 낳은 아이가 세발자전거를 스스로 몰 정도로 자란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에겐 그 사이의 교류가 없었으니 마치 시간을 뛰어 넘어 잠시 미래의 모습을 본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저쪽은 나를 볼 수 없다. 나만이 저쪽을 볼 수 있다. 아, 이렇게 변했구나, 이만큼 변했구나, 생각하고 말 일이다. 말을 걸 수도, 알은 체를 할 수도 없다. 이걸 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저쪽이 먼저 나를 봤다면 어땠을까? 먼저 알은 체를 했을까? 알은 체를 한들 우리에게 할 말이 있을까? 바뀐 연락처를 주고받고는 이제부터라도 연락하자고, 또 보자고 할 수 있을까? 전혀 모르던 사람을 만나 친해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시 친해지는 것. 참 이상한 일이다. 사귀다 헤어진 것도 아닌데, 사람 관계라는 게 기간과 깊이를 떠나서 모든 것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혹은 그 시간을 놓치면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버린다. 다가갈 수도, 말을 걸 수도 없게 하는 벽. 언젠가 시간 여행이 가능한 세상이 오더라도 그 벽만은 뚫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건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별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일상사일 뿐인데 말이 길어졌다. 가까운 동네에 사는 것을 알았으니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날지도, 그땐 정말 딱 마주칠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늘과는 반대로 저쪽만 나를 보고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있다. 어쨌거나 밖에 나갈 땐 제발 옷이나 머리에 신경 좀 쓰자. 그리고 언제나 나를 따라오는 가장 무서운 적은 나의 과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착하게 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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