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39. 행복

20170516_pm02:27

by 강민선

은평구의 연관 검색어가 ‘횡령’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얼마 전이었다. 구청 산하 기관의 회계 담당 직원이 3년 동안 3억 2천만 원의 공금을 횡령한 것이 밝혀져 구속된 사건이었다. 공금횡령과 관련된 기사야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같은 구의 공공기관인만큼 산 넘어 불구경만 할 수 없었다. 기사를 찾아보았다. 직원은 스물아홉 살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많이 어린 나이에 놀랐고 3년 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구청 산하 기관인데 감사가 그렇게 허술할 수가 있나? 보조금 단돈 30원만 어긋나도 그걸 맞추기 위해 애를 먹어야 하는 나로선 3억이라는 숫자의 행방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을 영 납득할 수가 없었다. 우리 도서관의 경우 돈과 관련된 모든 업무는 총무과에서 일괄하고 있어 자료실에서 사용하는 예산 내역도 구입 기안부터 영수증, 업무보고서까지 원본은 다 총무과로 넘겨야 한다. 총무과 회계 담당 직원은 도서관에서도 알아주는 엄청 꼼꼼하고 깔끔한 분이다. 사업이 끝났을 때 주최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정산 서류는 백과사전 맘먹는 두께를 자랑하지만 그것까지 손수 완벽하게 준비해주신다. 모든 기관의 회계 담당 직원이 모름지기 그래야 하고 그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걸까?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공금횡령이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단어로만 느껴졌는데 그것도 기관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허술한 틈을 타 야금야금 까먹은 돈으로 그녀는 개인 빚을 갚고 외제차와 고양이를 사고 남자친구와 해외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어떤 그림이 그려졌다. 처음에는 빚을 갚을 생각으로, 딱 빚만 갚고 끝낼 생각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빚을 갚고 나니 다른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났고 횡령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아무도 몰랐다. 긴 기간 동안 횡령을 생활화하다 보니 자기 자신조차도 그것이 횡령이라는 사실을,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보다는 회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본 작가 가쿠다 미쓰요의 『종이달』이 생각났다. 은행 직원이 고객의 돈을 조금씩 착복하다 거액의 횡령으로까지 이어지는 내용의 소설인데 몇 년 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일이 커지기 전까지 그녀는 그저 소박한 꿈을 지닌 평범한 사람이었다. 고객들에게 따뜻하고 신뢰감 있는 은행 직원이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아무도 모르게 변해가는 것이다. 그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을 영화화 한 우리나라 영화 <화차>에서 주인공 김민희의 마지막 대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행복하고 싶어서.” 이 대답은 『종이달』의 주인공에게도 해당되고, 어쩌면 은평구의 그 직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그 직원에게는 외제차와 고양이, 그리고 해외여행이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돈을 지불하면 쉽게 취할 수 있는 작은 행복.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쉽게 부릴 수 없는 사치. 그녀는 정말 행복했을까. 언제 사라질까 불안하진 않았을까. 마침내 모든 게 발각된 순간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스물아홉은 아직 너무나 젊은 나이다. 악몽 같은 현실을 딛고 일어나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기에 충분한 나이. 마침내는 그녀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진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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