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구구절절

44. 전주

20170528_pm01:00

by 강민선

어제는 전주에 가는 KTX를 탔다. 열차 안에서도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었는데 이상하게도 멀미가 나는 것 같아서 덮었다. 책을 읽는 것은 되는데 자판을 치는 것은 어려웠다. 고정된 활자를 보는 것과 움직이는 활자를 보는 것의 차이일까. 노트북을 덮고 커트 보니것의 소설집 『멍청이의 포트폴리오』를 펼쳤다. 원래는 커트 보네거트라고 썼었는데 출판사에서 표기법을 바꾼 모양이다. 첫 번째로 수록된 「‘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라는 단편을 읽었다. 원제로는 「Between ‘timid’ and ‘timbuktu’」인데 영영사전에서 이 두 단어의 사이에 있는 단어는 ‘time’, 그러니까 이 단편은 시간에 대한 소설이 되겠다. 이 주 전에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데이비드는 어느 날 익사 직전의 농부를 구해준다. 데이비드는 죽다 살아난 농부에게 의식이 없던 순간에 무엇을 보았는지 묻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박람회에서 보낸 행복한 시간과, 당시 부모님의 대화 내용(시카고 박람회에서 54달러짜리 테르마 킹 레인지 신제품을 사고도 3달러가 남는다)까지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농부를 보면서, 데이비드는 죽음이란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다시 경험하고 그 안에 영원히 존재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카고 박람회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당시 테르마 킹 레인지 신제품의 가격이 정확히 54달러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데이비드는 이 사실이 자신에게도 해당될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된다. 죽은 아내와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어쩌면 자신도 그 시간에 다시 도착할 수 있다고 확신한 그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다. 죽음을 경험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는 장치와 함께, 미리 연락한 의사가 자신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장치까지 준비해두고는 자신의 혈관에 주사를 투여한다. 이윽고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그가 본 것은? 그리고 과연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다시 살 수 있을까? (영화 예고편 흉내냄) 두 번째 단편을 읽다가 졸려서 눈을 감았고, 깨보니 전주에 거의 다 와 있었다. 전주와 서울은 KTX로 한 시간 반 거리이다. 마음만 먹으면 당일로도 다녀올 수 있지만 전주행은 백 퍼센트 쉬러 오는 것이기에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출발해 월요일에 돌아가는 것으로 계획했다. 2박 3일 동안 천천히 어슬렁거리다 돌아갈 생각이다. 지금 이 글은 한옥마을의 한 갤러리 카페에서 쓰고 있다. 창밖으로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천천히 걷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풍경이다. 전주는 일 년에도 많게는 두세 번씩 오는 곳이라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여행지지만 익숙해서 더 편한 곳이 되었다. 지금은 시시해도 막상 서울로 돌아가면 익숙한 이 길을 느긋하게 걸어다녔던 한낮을 그리워하게 될 것을 안다. 그러니 이 여유를 마음껏 누려야지. 언젠가 나도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때 나는 무엇을 보게 될까.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 대부분의 증언처럼 자신의 전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흐를까. 그때 마주할 장면은 내가 이미 겪은 시간일까 앞으로 겪게 될 시간일까. 죽음을 감수하고서도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 속으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절망적인 순간들은 또 언제쯤 찾아올까.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 희로애락이기에 피할 방법은 없겠지만 ‘누구나 겪는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을 준다. 모두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모두가 자신의 삶을 아끼듯 서로의 삶도 아껴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우리가 최대한으로 살아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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